역사학자가 된, 황제의 딸…그녀가 아버지를 위해 집필한 역사서 『알렉시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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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가 된, 황제의 딸…그녀가 아버지를 위해 집필한 역사서 『알렉시아드』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4.02.25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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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시아드: 황제의 딸이 남긴 위대하고 매혹적인 중세의 일대기 | 안나 콤니니 지음 | 장인식·여지현·유동수·김연수 옮김 | 히스토리퀸 | 544쪽

 

1118년 후대에 비잔티움(byzantium) 제국으로 알려진, 동로마 제국의 황제 알렉시오스 1세의 장녀 안나 콤니니는 동생 요안니스 2세의 명령으로 수도원에 유폐되었다. 아버지가 안나의 남편 대신 동생을 후계자로 선택했고, 안나가 이에 불만을 품고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제국에 충성을 바치기로 결심한 남편의 반대로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안나는 아버지가 평생 몰락하던 제국을 부흥시키기 위해 평생 몸 바친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수도원에서 아버지의 일대기를 편찬하니, 이것이 바로 『알렉시아드』였다. 알렉시오스 1세는 쿠데타를 일으켜 황제가 된 후, 노르만족, 페체네그족, 튀르크인 등 사방을 둘러싼 적과 전쟁을 치르다가 서방 로마의 교황에게 용병을 요청하여, 중세 유럽 역사의 한 획을 그은 1차 십자군의 신호탄을 울렸다.

『알렉시아드』는 한 황제의 통치 시기를 무려 15권에 걸쳐 서술한 역사서로서, 저자가 살았던 동로마 제국을 넘어 중세 유럽의 전쟁, 무기, 전술 등을 풍부하고 세세하게 알 수 있는 귀중한 작품이다. 그뿐만 아니라 고전과 성경 등을 풍부하게 인용하여 문학적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평가받는다.

몰락하던 동로마 제국에 희망의 빛이 보이던 1083년, 황후 전용의 자줏빛 산실에서 한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그녀의 이름은 안나 콤니니로, 알렉시오스 1세 콤니노스와 이리니 두케나가 황제와 황후가 된 지 2년 만에 태어난 장녀였다. 그녀의 탄생은 새로 개창한 콤니노스 황조와 이전에 제국을 지배했던 두카스 황조의 결합을 상징하기도 했다.

안나는 황제와 황후의 장녀이자, 황위 계승 서열 1위로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 군주의 아내, 딸, 누이로서 내조에 충실하고 육아와 살림, 사교 활동에 집중했던 중세의 공주들과 달리 안나는 제국에서 이름을 날리던 학자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 덕에 사과(四科; 기하학, 음악, 천문학, 산술학으로 중세 기초 학문 네 가지)뿐 아니라 수사학,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문과 플라톤의 대화록을 독파하였다.

화려했던 안나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순간이 있었으니, 이는 바로 쿠데타였다. 안나와 그녀의 남편은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황위 계승 서열 1위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알렉시오스는 죽기 직전 동생 요안니스를 황제로 임명했다. 안나는 이에 불만을 품고 남편을 황제로 만들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하지만 제국에 충성을 바치기로 결심한 남편의 반대로 실패했다.

1118년, 요안니스 2세의 명령으로 안나는 케하리토메네 수도원으로 추방당했다. 이제 그녀는 화려했던 자주색 베일을 벗고 검은 베일을 쓴 죄인일 뿐이었으나, 황녀 시절에 쌓았던 지식은 살아있었다. 아버지가 자신을 선택하지 않았지만, 평생 제국에 몸 바친 사실을 알고 있었던 안나는 아버지를 존경하고 있었다. 그녀는 죽은 남편이 남긴 초안을 보았고, 이를 토대로 아버지의 일대기를 15권에 걸쳐 편찬하니, 이것이 바로 『알렉시아드』였다.

476년에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수백 년간 동로마 제국은 몰락과 부흥을 반복했다. 11세기에 알렉시오스가 황제가 되기 직전, 동로마 제국은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불가리아를 정복한 바실리오스 2세를 배출한 마케도니아 황조가 막을 내린 뒤, 무능한 황제들이 장난처럼 제관을 주고받으면서 제국의 앞길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만지케르트 전투 때 황제가 포로로 잡힌 와중에 내분을 벌이고 물가가 폭락했으며 제국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이 와중, 여러 전공을 세우며 이름을 날리던 장군 알렉시오스가 혜성처럼 떠올랐다. 그는 쿠데타를 일으켜 황제가 된 후 노르만족, 페체네그족, 튀르크인 등 사방을 둘러싼 적과 전쟁을 치러서 국경을 안정화했다. 그다음 새로운 화폐를 만들어 물가를 안정시켰으나, 동맹을 맺었던 쿠만족이 침공을 하자 서방 로마의 교황에게 용병을 요청해 1차 십자군의 신호탄을 울렸다. 서유럽 영주들은 동로마 황실에 발을 디뎠다. 알렉시오스 1세는 이들과 분쟁을 한 뒤 충성 서약을 받아내었다. 이후 세 영주를 중심으로 한 ‘성전’이 시작되었고, 알렉시오스는 ‘성전’을 이용해 적을 물리치고 안티오히아 등의 영토를 확보해 무너졌던 동로마 제국의 위상을 회복한다.

안나 콤니니는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정치에 개입했기에 당대의 관료나 공문서에 접근할 수 있었다. 또한 참전했던 사람들과 인맥이 있었고, 그들의 증언을 토대로 『알렉시아드』를 집필한 덕택에 동시대의 다른 역사서와 맞먹는 신빙성을 확보하였다. 안나의 남편 소(小) 니키포로스 브리엔니오스는 로마노스 4세 디오예니스 황제부터 시작해 알렉시오스 1세까지 다루려고 했으나 1137년 사망하여 니키포로스 3세 보타니아티스 시기까지밖에 집필할 수 없었다. 이에 안나는 보타니아티스의 뒤를 이은 아버지 알렉시오스 1세의 일대기를 집필한 뒤,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역사서의 이름을 『알렉시아드』로 정했다.

한 황제의 통치 시기를 15권에 걸쳐 서술한 『알렉시아드』는 안나가 살았던 동로마 제국의 역사뿐 아니라 중세 유럽의 전쟁, 무기, 전술 등을 세세하게 알려준다. 이를 통해 동로마 제국의 상류층이 십자군 전쟁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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