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합의인가? 사회적 강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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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합의인가? 사회적 강요인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4.04.27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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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중의 광기: 젠더, 인종, 정체성 그 뜨거운 논쟁의 중심에서 | 더글러스 머리 지음 | 유강은 옮김 | 열린책들 | 440쪽

 

이 책은 대립이 첨예화되고 있는 젠더, 인종, 정체성 운동의 이면을 낱낱이 분석한다. 저자 머리는 사람들이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질문들에 대해 너무 빨리 해법에 도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어쩌면 격변하는 정세를 아랑곳하지 않은 채, 사회적 합의를 마치기도 전에 사회적 강요만이 난무하는 혼탁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때 개선과 평등을 달성하려는 본래의 목적은 결국 잊히기 마련이다. 민감한 문제들을 분별력 있게 바라보려는 시도를 배척하고 무조건적인 수용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군중은 결국 광기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이제는 지배적인 견해에 맞서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그것을 심층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이 책이 바로 그 출발점이다.

전 세계 곳곳에서 평평한 경기장을 만든다는 미명 아래 수많은 희생이 발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불평등이 등장하고 있다. 특히 젠더, 인종, 정체성과 관련된 사안들은 급진적으로 바뀌는 데 만족하느라 정작 중대한 내용은 외면되고 있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하여 이 책에서는 거대한 혼란과 모순으로부터 빠져나가기 위해 실제 사례와 통계, 연구 자료 등을 기반으로 집요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저자가 보기에, 우리 주변에는 계속해서 의아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중 하나는, 한 집단은 또 다른 집단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우리가 맞닥뜨린 갈등을 시정하는 최선의 수단으로 인정받게 된 점이다. 다시 말해 〈남성은 여성만큼 똑똑하지 않고, 백인은 흑인보다 폄하되어야 하며, 이성애는 동성애에 비해 그저 약간 따분하고 당혹스럽다〉는 데 동조해야만 환영받을 수 있다. 

한편에서는 사회 전체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효하다고 인식되던 관습들을 잊어버리거나 완전히 지워 버리기로 마음먹은 듯하다. 예를 들어 젠더나 인종이 단지 타고난 것이 아니라 대개 사회적 구성물이라고 여기는 오늘날의 규범은 사실상 이제 막 생겨난 개념에 지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작은 의문을 표하기만 해도 〈사회 정의〉를 방해하고 〈사회 불의〉를 일으킨다는 딱지가 붙어 버린다.

이뿐만이 아니다. 채용 시에는 동등한 기회와 다양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요구에 집착하느라 의도적으로 일부 부류에 이익을 부여하고 다른 부류에 불이익을 입히는 경우도 예삿일이다. 또 〈트랜스 혐오자〉가 되지 않으려면 스스로를 트랜스젠더라고 밝히는 사람 앞에서 오로지 고개를 끄덕여야만 한다. 명확한 판단 기준이나 제재 수단이 부재한 탓에, 오로지 당사자의 진술에만 의존해 의학적 개입이 이루어진 다음에 행여 후회한다고 해도 돌이킬 방도가 없다는 사실에는 눈을 감아야 한다. 

매체와 소셜 미디어에서 전개되는 일종의 검증 행위, 즉 조리돌림도 큰 난제이다. 사람들은 〈그릇된 사고〉를 하고 있다고 비난할 만한 대상을 찾아내고 그 대상의 과거를 모조리 들추며 공격을 가한다. 이 과정을 통해 애초의 의도나 내용은 부차적인 것이 되고 오히려 발언자의 특성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결국 개인의 젠더, 인종, 정체성이 다시 주요한 의제가 되는 것이다. 〈올바른〉 견해가 이미 정해져 있는 사회에서 제일 안전한 선택지는 침묵이다. 그러나 자명하게도 침묵은 상황을 점차 악화시키기만 한다.

한 개인이 지닌 고유한 특징을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제지를 당하지 않는 사회를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삼을 수 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인종이나 성별, 성적 지향이 방해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차이를 최소화하는 것은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 척하는 것과 동일하지 않다. 성별과 섹슈얼리티, 피부색이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면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들이 모든 것을 의미한다고 가정한다면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는 천편일률적인 목소리만 존재하는 오늘날의 세태에서 반드시 귀 기울여야 하는 경고이다. 

정체성 정치가 야기한 극단적인 분열에 대한 해결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사실은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더 늦기 전에 비난과 복수의 정신에서 벗어나 관용과 용서의 단계로 진입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냉정한 판단과 자유로운 토론이 필요하다. 그 누구도 선뜻 언급하지 못한 사안들을 예리하고도 파격적인 관점으로 파헤친 저자의 논평은 우리 사회가 처한 곤경을 헤쳐 나가는 방법을 찾는 데 보탬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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