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2024 –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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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2024 –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으며
  • 조원형 편집기획위원/서울대·언어학
  • 승인 2024.04.16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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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형 칼럼]

2024년 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꼭 열 돌이 되는 날이다. 앞으로 더 오랜 세월이 지나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잊혀지지 않을 이 역사적 참사의 기억을 10년째 마주하면서 ‘책임’이라는 말의 뜻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한국어 ‘책임’은 한자어로서, 한자로는 ‘責任’이라고 쓴다. 여기서 ‘책(責)’은 ‘꾸짖을 책’이라는 새김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본래 ‘빚’을 뜻한다. 반면 영어와 독일어 등 서구 언어에서 ‘책임’을 뜻하는 말은 대개 ‘대답’과 관련이 있다. 영어 ‘responsibility’, 독일어 ‘Verantwortung’ 등이 이에 해당하는데, ‘대답’을 뜻하는 ‘response’와 ‘Antwort’에서 각각 파생되었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어휘들은 모두 ‘(짐을) 지다, 떠맡다’라는 뜻을 가진 말과 함께 어울려 쓰이곤 한다. 한국어에서는 빚을 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책임도 ‘진다고’ 하며, 영어와 독일어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take responsibility’, ‘Verantwortung tragen’ 등의 표현을 사용한다. (독일어 ‘tragen’은 ‘나르다, 지다’ 등으로 해석된다.) 결국 책임이란 ‘빚’이 되었든 ‘대답’이 되었든 누군가가 부담으로 떠안아야 하는 것임을 어휘 표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난 10년 동안 세월호 사건에 관해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그동안 어떤 빚을 갚았는지, 그리고 어떤 대답을 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세월호 사건이 다른 국가적 재난과 크게 달랐던 점 가운데 하나는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구할 책임을 저버린’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당시 대통령 직위에 있었던 박근혜는 사건 발생 후 한 달이 지나서야 첫 대국민 담화를 했고, 그 담화에서 자신은 마치 실질적인 책임이 없다는 듯이 실무진들을 비난하고 질책하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이에 대해서는 필자가 지난 2023년 2월 5일 이 칼럼에 게재한 글 “대국민 담화문의 무게”에서도 이미 지적했고, 그 이전에 학술지 <텍스트언어학>을 통해 발표한 논문 “재난 관련 대국민 담화문의 텍스트 구조 및 화행 방식 대조 분석”에서도 상세하게 논한 바 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시행한 실질적인 재난 수습 업무 또한 국정 책임자인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방식이 아니라 ‘국민안전처’라는 것을 만들어서 처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물론 이 정부 조직은 그 다음 정부 들어 폐지되고 대통령이 재난 안전의 총괄 책임자로 다시 나서게 되었으나, 또 그 다음 정부에서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고 그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국회에서 의결한 법률안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재난 안전의 총괄 책임자는 대통령’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만들어 버렸다. 세월호 참사 당시의 대통령 박근혜와 이태원 참사 당시의 대통령 윤석열은 대국민 담화를 무책임한 태도로 했다는 공통점 또한 지니고 있다. (이 또한 필자가 이전 칼럼에서 한 차례 지적한 사실이다.)

한마디로 그동안 대한민국에서 책임, 즉 ‘대답할 부담’을 진 사람들은 국가적 재난 앞에서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대답을 회피하고 거부했다. 제대로 된 대답은커녕 애초에 대답 자체를 내놓지 않았다는 뜻이다. ‘대답’이라는 빚을 지금껏 하나도 갚지 못했을뿐더러 갚으라는 요청을 듣고도 고개를 돌려 버린 것이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할 책임을 국가의 최고위직 공무원이 이처럼 회피하고 있는데 그 누가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고 빚을 제대로 갚을 수 있겠는가.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자는 것은 이 국가적 재난에 대한 제대로 된 대답을 국가에게 반드시 들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대답은 앞으로도 언제나 국가가 국민 앞에 제대로 응답하는 자세를 지닐 때, 그리고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구할 책임을 끝까지 저버리지 않을 때 비로소 만족할 만한 수준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은 오늘, 온 국민이 한마음이 되어 국가에 외친다. “응답하라 2024!”

 

조원형 편집기획위원/서울대·언어학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에서 언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만하임 라이프니츠 독일어연구원 방문학자,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등을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로 일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천주가사에 대한 텍스트언어학적 연구”, “텍스트언어학에 기반한 ‘쉬운 언어(Leichte Sprache)’ 텍스트 구성 시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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