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바로 편견과 오해를 넘어 중동 이슬람 지역을 마주할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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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바로 편견과 오해를 넘어 중동 이슬람 지역을 마주할 시기이다
  • 엄익란 단국대·중동학
  • 승인 2024.04.14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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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중동 이슬람 문화여행: 편견과 오해를 넘어』 (엄익란 지음, 한울아카데미, 264쪽, 2024.03)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중동과 이슬람 지역 관련 저서의 출간 빈도수가 잦아졌다. 학계뿐만 아니라 언론인과 기업인들이 저자로 동참하면서 이 지역을 바라보는 관점도 다양해지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의 중동국가와 이슬람문화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언론에서도 ‘제2의 중동붐’이라는 단어로 중동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중동국가도 변화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는 고집스럽게 고수해 왔던 강경 이슬람의 옷을 벗어 던지고 2017년부터 온건 이슬람이라는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개방개혁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포스트오일 시대를 맞이하여 탈(脫)석유경제·입(入)산업다변화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석유는 한 방울도 나지 않지만 경제 강국이 된 우리로부터 성공 팁을 배우고자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그 결과 우리와 중동국가와의 교류는 석유와 건설이라는 전통적인 교류 방정식에서 벗어나 이제 모빌리티, 엔터테인먼트, 게임산업 등 다차원에서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지금이 바로 중동 이슬람 지역과 마주할 적기이다. 중동은 미국과 중국 의존도가 높은 우리에게 새로운 길로 안내할 매력적인 카운터파트이기 때문이다. 시기는 이렇게 무르익었으나 우리에게는 이들과 진정한 교류를 가로막는 장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안의 밑바닥에서 작동하는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있다. 이를 다른 말로 프레임이라 할 수 있다. 프레임은 세상을 바라보는 ‘생각의 틀’을 의미한다. 우리가 바라보는 중동 이슬람에 대한 프레임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본 저서는 이 부분을 주목하였다. 책에서 인용된 사례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 안에서 작동하는 중동 이슬람에 대한 프레임

몇 년 전 한국 사회에서 화두가 되었던 두 부류의 난민이 있었다. 한 부류는 예멘전으로 고향을 떠나 말레이시아를 거쳐 2018년 제주도로 들어온 예멘인 난민이다. 당시 반이슬람 캐치프레이즈 하에 시민 단체, 여성 단체, 종교 단체가 연대하였고, 이들을 중심으로 무슬림 난민 수용을 거부하는 운동이 거칠게 전개되어 한동안 우리 사회가 시끄러웠다. 이후 3년이 지난 2021년 여름, 또 다른 무슬림 난민이 한국으로 들어왔다. 이들은 미군 철수 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전복하고 정권을 잡으면서 난민 신세가 된 아프간인들이었다. 예멘인 난민과 달리 이들 아프간 난민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반감은 크지 않았다. 

왜 같은 무슬림 난민인데 전자는 안 되고, 후자는 되는가? 
난민에 작동하는 프레임이 달랐기 때문이다. 두 부류의 난민 모두 내전으로 ‘어쩔 수 없이’ 고국을 떠난 사람들이다. 그러나 전자인 예멘인에게는 난민보다는 무슬림이라는 프레임이 작동한 결과 이들을 수용하는 데 사회적 거부감이 심했다. 이들 무리 중에 혹시 테러리스트라도 섞여 들어오면 한국은 이슬람교의 테러 위협에 빠질 것이고, 한국 여성들은 무슬림 남성의 폭력과 강간으로 위험에 처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작동하였다. 그래서 예멘인 난민은 위험한 사람들이자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반면 아프간 난민은 가혹하고 잔인한 탈레반의 억압을 피해 ‘어쩔 수 없이’ 고국을 탈출한 피해자라는 프레임에서 접근되었으며, 한국 대사관이나 한국 기업에 종사했던 인연으로 ‘특별 기여자’ 신분으로 들어왔다. 위의 두 사례는 프레임이 다르게 작동할 경우 결과도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해서는 ‘닥치고 경계부터’ 하게 되었나? 이 책에서는 이를 우리의 시선이 아닌 서구의 시선에서 이슬람을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서구와 이슬람의 관계를 들여다보면 정치적·경제적 목적 때문에 서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 속에서 이어져 왔다. 여기에 아브라함이라는 조상에서 파생하여 이웃사촌인 세 종교(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종교 정체성이 충돌하면서 서로 간 감정의 빚이 켜켜이 쌓여 왔다. 특히 근대 중동 이슬람 지역을 정복의 대상으로 여겼던 서구는 식민지배라는 정치적 목적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 지역을 미개하고 비과학적이며 비문명적인 지역으로 프레임하였다. 그리고 그 원인을 이슬람으로 지목하였다. 그와 함께 서구는 정복지에서 문명국인 서구를 따라 근대화할 것을 강요하면서 식민통치를 계몽과 발전을 위한 길이라고 포장하였다. 

한편 서구와 달리 우리와 중동 이슬람 지역은 서로에게 얽힌 감정의 빚은 별로 없다. 그리고 사실 중동 이슬람을 진솔하게 마주할 기회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중동 이슬람에 대한 편견이 작동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서구와 같은 안경을 끼고 중동 이슬람 지역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유대인이 장악하고 있는 할리우드 영화나 이슬람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서구 미디어 매체를 통해 중동 이슬람 지역을 주로 접해 왔다. 중동과 이슬람은 어느새 악마화되었고, 세계 질서를 어지럽히는 악당이 되었으며,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대상이 되어 버렸다. 이 책은 이 부분에서 누가 악당을 탄생시켰나를 묻는다.


악당은 누가 탄생시켰나

탈레반 사례를 들어보자. 우리 사회에 탈레반의 존재가 널리 알려진 계기는 2001년 9.11사태와 관련된다. 테러 이후 주범인 알카에다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은 아프가니스탄으로 숨어들어 탈레반의 보호하에 있었다. 테러리스트를 잡기 위해 다른 국가를 침공하기 어려웠던 미국은 전쟁을 일으킬 명분이 필요했다. 그래서 당시 아프간 통치세력인 탈레반을 타깃으로 삼았고, 이들을 악마화하였다. 특히 탈레반 통치하에 고통받는 아프간 여성들을 주목하였다. 아프간 여성들의 전통의상인 부르카를 벗겨 고통받는 무슬림 여성에 진정한 자유를 가져다줘야 한다고 사람들을 설득하였다. 악당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미국은 영국과 함께 악당을 처단하여 정의를 실현하고 세계 평화를 달성한다는 명분으로 작전명 ‘항구적 자유’와 함께 아프간 전쟁을 일으켰다. 미국은 전쟁에서 승리하였고, 탈레반 악당도 잠시 소멸하였다. 여기까지가 표면적인 아프간 전쟁의 그림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한층 더 들어가 탈레반이 자생적으로 탄생한 악당이 아니라는 점을 소개하고 있다. 탈레반은 1979년 냉전시대 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하면서 발생한 난민에서 출발하였다. 미국은 소련의 공산주의 이념이 남하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이슬람 원리주의 성향을 추구하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인도와 경쟁관계에 있던 파키스탄과 공조하였다. 이 과정에서 사우디가 지원했던 난민촌 이슬람 학교(마드라사)에서 원리주의 사상 교육이 이루어졌고, 그곳에서 수학하던 학생(아랍어로 ‘탈립’)들이 오늘날 탈레반의 모태가 된 것이다. 당시 사우디와의 협력이 필요했던 미국은 원리주의 교육에 눈을 감았다. 즉 탈레반은 어느 날 갑자기 출현한 세력이 아니라 미소 갈등이 탄생시킨 결과물이다. 어찌 보면 중동과 이슬람지역도 피해자인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부분이 생략되어 전달되기 때문에 당연히 편견과 오해가 쌓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질문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과연 편견이란 나쁜 것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편견이란 우리가 접해보지 못했던 것, 알지 못했던 것에 대해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우리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작동하는 보호 시스템이라고 본다. 편견을 갖고 있었다고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문제는 편견이 있다는 것을 자각한 이후의 태도이다. 편견을 인지하면서도 균형을 바로 잡지 않을 때 편견은 혐오로 진화하여 ‘서로 다른 것’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고 갈등을 유발한다. 이에 본 저서는 중동 이슬람 지역에 대한 편견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고 이를 어떻게 해체하고 재구성해야 할지 제시하고 있다. 


책의 구성

본 저서의 <제1부>에서는 우리 안의 이슬람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소개하고, 이러한 인식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해체하였다. <제2부>에서는 인류가 이슬람 문명에 많은 빚을 졌으나 근대 서구 중심 역사에서 축소되거나 삭제되고 또 왜곡되었던 이슬람과 이슬람 문명을 들여다보았다. <제3부>에서는 그들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중동 이슬람 지역에 일상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소개하였고, 마지막으로 <제4부>에서는 우리가 중동 이슬람 지역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 왔는지, 그리고 현재는 어떻게 맺고 있는지 한류를 사례로 소개함과 동시에 향후 방향성도 제시하였다. 본 저서를 통해 독자들이 우리 안의 그들에 대한 혐오와 편견은 왜 작동하는지, 우리는 어떻게 그러한 사조에 동참해 왔는지, 어떻게 하면 뿌리 깊게 박힌 고정관념을 하나하나 해체하여 재구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엄익란 단국대·중동학

단국대학교 자유교양대학에 소속되어 있으며, 이슬람과 소비문화, 무슬림 젊은 세대, 걸프 지역과 중동 지역, 아랍의 여성 문제 등을 연구 및 강의하고 있다. 영국 엑서터 대학(University of Exeter)에서 중동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동 지역의 정치, 경제, 사회문제를 문화의 틀에서 분석하고 있으며, 다양한 강연을 통해 연구 성과의 대중화에도 힘쓰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 『걸프를 알다: 변화하는 아랍의 라이프 스타일과 부상하는 우먼 파워』(2018), 『금기, 무슬림 여성을 엿보다』(2015), 『이슬람 마케팅과 할랄 비즈니스』(2014), 『할랄, 신이 허락한 음식만 먹는다』(2011), 『무슬림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을까』(2009), 『이슬람 결혼문화와 젠더』(2007)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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