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의 시대를 거머쥔 마지막 천하인天下人의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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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의 시대를 거머쥔 마지막 천하인天下人의 일대기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4.02.25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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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어떻게 난세의 승자가 되었는가 | 아베 류타로 지음 | 고선윤 옮김 | 페이퍼로드 | 212쪽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고,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며, 아들이 어머니를 배신해야 했던 일본 전국시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패륜과 하극상이 난무하던 폭력의 굴레를 부순 최후의 승자였다. 세계는 흔들리고 만인의 일상이 요동치던 시기, 기구한 운명의 나이 어린 인질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어떻게 시대의 주인이 됐을까?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태어나고 바로 그다음 해, 일본 열도에 ‘대항해시대’가 해일처럼 몰려왔다. 신식 무기로 무장한 서양 상인과 예수회 선교사는 일본 전국시대의 판도를 흔들었고, 그로 인한 ‘문화 충격’은 전국시대 다이묘들의 생존 전략을 송두리째 뒤바꾸었다. 이에야스는 변혁의 시대가 도래한 바로 그 시점에 태어났고, 일찍이 새로운 문물의 필요성을 느끼며 자신의 전략·전술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에야스의 일생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건 다름 아닌 ‘바다 너머 세상’이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철저한 현실주의자였고, 동시에 천하통일의 대업을 끝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난세의 낭만가였다. 그는 오다 노부나가와의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 가족을 살해하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가문과 휘하 부하들을 지키기 위해 다른 이에게 머리 숙이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꿈을 위해 단호하게 행동했던 처절한 정치가였고, 칼의 시대를 끝내라는 사명에 응답한 마지막 호걸이었다.

이 책은 그의 생애를 추적하며 최후의 승자가 된 비결이 무엇인지 말한다. 나이 어린 인질 시절에 기른 인내심, 오다 노부나가의 동맹 시절에 익힌 통솔력, 세계의 변화를 감지하는 기민함, 적과 싸우며 터득한 외교술, 판세를 읽고 적절히 행동하는 유연한 처세술, 끝까지 방심하지 않는 신중함. 이 모든 것이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시대의 주인으로 만든 원동력이었다.

전쟁과 폭력의 세상이었던 일본에 ‘대항해시대’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가? 이 책은 일본으로 유입된 서양 문명과 그로 인한 충격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생애 전반에 걸쳐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강조하고, 이를 통해 일본 전국시대의 새로운 면모를 부각한다. 그런즉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크게 세 가지라 할 수 있다.

첫째, 일본 전국시대는 아시아와 서양이 일본을 축으로 연결된 시기이다. 일본 전국시대에 서양식 철포(화승총)가 유입된 이후 대외무역의 범위가 크게 확장된다. 최신 연구에 따르면 철포와 탄환 제작에 쓰이는 광석 재료는 일본 밖, 특히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수입됐고 그 값을 치르기 위해 쓰인 대가가 바로 일본 이와미 광산에서 채굴한 은이었음이 밝혀졌다. 이렇듯 일본 전국시대는 대항해시대라는 물결과 함께 교역망이 확대되는 시기였다.

둘째, 예수회 선교사들은 단순한 바다 너머의 이방인이 아니라 전국시대의 판도를 뒤흔든 커다란 변수였다. 일본에 가톨릭 신앙을 전파하고자 찾아온 포르투갈·스페인 선교사들은 외교관의 업무까지 담당했다. 무기를 어느 다이묘에게 납품할지, 무기 제작에 쓰일 재료를 얼마나 제공할지를 결정하는 주체가 바로 예수회 선교사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명을 관철하고자 종교를 전파하는 한편, 당대의 실력자들과 협상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확보했다.

셋째, 위의 두 가지 이유로 일본 전국시대는 다채로운 집단과 인물들이 상호 작용하던, 말 그대로 ‘다각적인 격변기’였다. 흔히 일본 전국시대를 특출난 장수들의 힘겨루기가 팽배했던 시기 정도로 이해하나 실은 다이묘, 천황과 조정, 막부, 예수회 선교사, 불교 문도 등 다양한 세력이 끊임없이 동맹과 배신을 반복하던 역동적인 시기였다. 그리고 이러한 역동성과 입체성은 바로 대항해시대가 일본에 해일처럼 몰려들며 나타난 결과였다. 따라서 이 책은 그간 일본 전국시대를 둘러싼 편협한 오해를 타파하고, 나아가 세계사의 관점에서 동아시아의 역사를 알아볼 수 있도록 지평을 넓혀줄 수 있다는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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