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뽕 한 그릇에 8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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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뽕 한 그릇에 80원
  •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 승인 2024.02.24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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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명 교수의 〈생활에세이〉

 

최근의 보도다. 누군가 바다에서 쓰레기를 건져 올렸는데, 아이들 과자 봉지였다. 과자 이름은 ‘자야’였고 1974년 연도가 찍혀 있었다. 그리고 값은 20원이었다. 20원이라는 돈은 1972년 내가 재수할 때 광화문에서 대조동 집까지 가는 버스 삯이었다. 안 궁금하겠지만, 재수생도 학생 할인을 받았다. 광화문에 있는 대성학원을 다녔는데, 월 수업료가 만 원이었다. 시험 잘 보면 일정한 할인을 받았는데, 나는 언제나 3300원 면제를 받았다. 수학을 잘한 내 동무는 언제나 6700원을 면제받았다. 억울했다. 영어보다는 수학이 높은 점수 받기가 쉬워서 수학 잘하는 친구가 언제나 유리했다. 할인받은 3300원은 언제나 부모님 몰래 유흥비(?)로 썼다.

1967년 중학교 2학년 때 부산 동명극장 앞에서 도로 가드레일을 멋있게 뛰어넘으려다가 걸려서 철퍼덕 엎어졌는데 아무도 안 봤겠지 하면서 모른 척 걸어갔다. 그때였는지 다른 때였는지 그 무렵 영화 한 편 관람료가 80원이었다. 극장 아저씨한테 내심 학생 할인을 기대하고 “내 얼맙니꺼?” 하고 물었더니 80원이란다. 엄청난 실망감과 부당한 느낌으로 돌아섰다. 

그 무렵 집에 처음으로 전화기가 설치되어 중국집에 장난 전화를 했다. “짜장면 한 그릇 얼맙니까?” 왕서방임이 분명한 주인아저씨가 “35원!”하면서 전화기를 내동댕이쳤다. 소리가 그랬다. 1972년 공릉동에서 서울대 1학년 교양과정부를 다녔는데 그때 짜장면 한 그릇에 60원, 짬뽕 한 그릇에 80원 그랬다. 당시 심리학 개론을 가르치던 젊은 장현갑 교수께서 혼자 짬뽕을 드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1986년에 서울 월계동 아파트에서 테니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그때 천하의 무능하고 사람 좋은 코치 아저씨와 함께 동대문 운동장 옆 운동구점에서 라켓을 샀는데, 주인은 25만 원짜리를 24만 원에 준다고 생색을 내었다. 혹 23만 원짜리가 아니었을까? 프린스 그라파이트 라켓이었는데 최근까지 생산된 좋은 라켓이었다. 당시 프린스 보론 라켓은 45만 원이었다. 지금보다 가격이 더 높았다. 

비슷한 시기 월계동의 짜장면 한 그릇은 900원으로 올라 있었고, 바나나 한 묶음 아니고 한 개에 천 원이었다. 이건 내 기억이 잘못되었기를 바란다. 춘천으로 이사 간 1991년쯤에 대여섯 살 먹은 아들을 데리고 이발소에 갔다가 기다리기 싫어서 그냥 나왔다. 이발비는 4000원이었다.

1985년, 이른 나이에 한림대학교 교수가 되었는데, 첫 월급으로 90만 원 정도 받은 것 같다. 이것저것 제하고 80만 원대를 수령하였다. 그 봉급은 대기업보다도 많았고 아마도 전국 대학 최고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초창기에 호기롭게 시작했던 한림대학교는 갈수록 봉급 수준이 떨어져서 내가 33년 근무하고 명예퇴직할 무렵 연봉이 세전 1억 조금 넘는 정도였다. 대학 중에서도 하위였을 것이다. 딸이 취업 면접을 볼 때 아빠가 교수 외벌이라고 하니 어떻게 자식 두 명을 다 키웠냐고 회사 대표가 묻더란다. 흠, 재미있는 녀석이로군.

젊은 교수 시절, 1980년대 후반에 경희대 앞, 지금은 찾기 쉽지 않은 경양식집에서 돈가스를 4000원에 먹었다. 그 한두 해 전 부산 여자와 결혼하고 부평동 처가 앞 ‘구포집’에서 냉동 복국을 사 먹으면 또 4000원을 달라 하였다. 그런데 그 냉동 복국은 맛이 있었다. 춘천으로 이사 간 뒤 서울로 운전해 가다 청평 근처 휴게소에서 도토리묵을 먹었는데 깜빡 잊고 돈을 안 내고 그냥 갔다. 그 도토리묵 가격도 4000원이었다. 나와 유별난 인연의 4000원. 

1990년대 초반 정도, 춘천에서 닭백숙하고 동동주서껀 회식을 하고 모아서 돈을 내면 두당 대략 6000원 정도가 나왔다. 한림대학교 앞에 ‘섬’이라는 레스토랑이 제법 유명했는데, 거기서 함박스텍을 먹어도 그 정도 나왔다.

아득한 시절의 아득한 기억이다. 이런 글을 쓰는 나는 이제 죽을 때가 다 되었나 보다.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림대학교 정치행정학과 명예교수로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 도쿄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한글문화연대 대표 등을 지냈으며, 한국정치학회 학술상, 외솔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 『담론에서 실천으로: 한국적 정치학의 모색』, 『단일 사회 한국: 그 빛과 그림자』, 『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 한국 불교, 이것이 문제다』, 『대한민국 정치사』, 『한국 정치의 성격』, 『정치란 무엇인가: 김영명 교수가 들려주는 정치 이야기』 등 다수가 있다. 수필집 『봄날은 간다』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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