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와 편견에 가려진 진짜 이슬람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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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와 편견에 가려진 진짜 이슬람을 만나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4.02.20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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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 친절한 이슬람 역사 | 존 톨란 지음 | 박효은 옮김 | 미래의창 | 392쪽

 

되풀이 되는 전쟁과 테러, 내전 등 중동의 비극적이고 참담한 모습들은 이슬람을 향한 부정적이고 편향적인 인식들을 강화하고, 우리의 윤리적 감정은 점차 무뎌지기 시작한다. 반복이 만들어내는 무감각을 탓할 수도 있겠지만, 명쾌하게 해답을 내릴 수 없는 중동 문제의 복잡함과 이슬람을 향한 우리의 흐릿한 인식과 무관심도 그 원인 중 하나다. 또한 중동 문제에서 선과 악은 명백히 구분되지 않는다. 이슬람의 분열과 과격화에는 이해관계에 따른 복잡한 국제관계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동 문제를 적절히 이해하려면 역사적 흐름 속에서 이슬람을 이해하고, 극단주의가 탄생한 배경과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 과정에서 독재와 폭력의 이면에 존재하는, 이슬람을 근대화하고 재해석하고자 하는 내부의 개혁적 움직임 또한 함께 평가해야 한다.

이 책은 1400년 이슬람 역사의 전체 흐름을 다루면서, 오늘날 중동 문제의 역사적 기원과 전개 과정을 풀어내고 이슬람의 풍성하고 다양한 면면들을 제시한다.

오늘날의 공포스러운 모습과 달리 이슬람은 본래 합리적이고 윤리적이었다. 코란에서 인간은 모두 동등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슬람은 노예석방을 지향하고 여성의 지위 및 권리를 보장하는 등 악습을 단절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또한 이슬람은 가난한 자들과 여행자, 포로들을 위해서 세금과 기금을 모았으며, 다른 언어와 인종을 포용하고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할 만큼 관용적이었다.

학문과 예술을 장려한 이슬람은 장대한 지식과 문화의 보고이기도 했다.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학문적 결실을 계승한 이슬람은, 특히 철학과 의학 연구를 선도했다. 유럽이 외면했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코란의 이성주의 해석의 핵심이었는데, 추후 유럽에 역으로 전해지면서 기독교 교리와 철학에 영향을 미쳤다. 이슬람 대학자 이븐 시나가 집필한 《의학전범》은 인도와 옥스퍼드 의대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의학 교재였으며, 근대 의학의 탄생과 발전을 주도했다.

이처럼 이슬람의 찬란한 역사와 문화, 학문적 결실은 우리의 오해와 편견을 무너뜨리고, 이슬람의 합리적이고 위대한 측면들을 확인시켜준다. 이러한 이슬람은 주변국과의 교류와 전쟁 등을 통해 광범위하게 전파되면서, 세계 곳곳의 역사, 문화, 종교에 스며들게 되었다.

중동 너머로 확장된 이슬람은 광대한 지역을 종교적, 문화적, 역사적으로 연결한다. 유럽으로는 이베리아반도의 스페인과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있었던 그리스가 이슬람의 영향권이었으며, 아프리카의 송가이 제국과 이집트는 이슬람 국가였다. 아시아에서는 몽골과 인도, 인도네시아, 중국 등이 이슬람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전 대륙으로 팽창한 이슬람은 각 지역의 토착적 관습과 정치적 상황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변화했다.

엄격한 금욕주의를 강조하며 감시와 통제를 일삼는 이슬람이 있었던 반면, 포도주를 마시는 것을 허용하고 남녀 간의 친밀한 관계를 용인하는 이슬람도 있었다. 신비주의를 지향하고 성인의 영묘에 참배하는 이슬람과 이를 우상 숭배로 규정하며 배격하는 사상도 있었다. 그 밖에도 이슬람은 여성의 베일 착용, 기독교 문화의 용인, 코란 해석 등 수많은 분야에서 제각각으로 실현되었다.

이처럼 단일한 방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슬람의 다양한 면면들은 이슬람을 이해하는 어려움 중 하나다. 이는 오늘날의 중동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와도 맞닿아있다. 중동과 이슬람을 둘러싼 논쟁과 갈등의 뿌리가 복잡다단한 이슬람의 역사와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해관계에 따른 서양의 국제관계가 얽히면서 그 복잡함은 더욱 가중되었다. 이를 풀어내는 방법은 결국 역사적 맥락을 파악하는 것뿐이다.

전쟁과 테러 등 언론과 미디어를 달구는 이슬람 무장단체들의 폭력적인 모습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이슬람의 한 단면이다. 그러나 중동 문제의 원인과 배경을 살펴본다면, 악의 원인을 이슬람 자체로만 몰아가는 편향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는 없을 것이다.

유럽은 세계 대전의 승리를 위해 이슬람의 분열을 조장했고, 영국과 UN이 승인한 이스라엘 건국은 팔레스타인 분쟁의 원인이 되었다. 미국과 영국 등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오사마 빈 라덴이 참여하고 있던 아프간 반군에 자금과 병참을 지원했다. 유럽연합은 리비아 난민 유입을 막기 위해, 고문과 착취, 살인 등 비인도적 행위를 하는 리비아 정부를 지원하며, 강제 송환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정치적 쟁투와 암울한 색채로 뒤덮인 이슬람의 오늘에도 희망의 빛은 존재한다. 실패로 돌아갔지만 ‘재스민 혁명’과 ‘아랍의 봄’같이 중동과 이슬람의 폭력과 독재에 항거하는 거대한 민중 운동이 있었는가 하면, 과격한 이슬람 무장단체에 대한 내부적 비판도 있었다. 코란과 이슬람의 현대적 재해석을 통해 이슬람을 개혁하고자 하는 주장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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