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ing for Creativity: 창의성 신화 벗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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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rching for Creativity: 창의성 신화 벗기기
  • 장재윤 서강대·조직심리학
  • 승인 2024.02.18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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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창의성의 심리학』 (장재윤 지음, 아카넷, 1048쪽, 2024.01)

 

창의성은 인류 문화의 형성 및 발전 과정에서 가장 두드러진 인간의 역량이다. 인류의 눈부신 문화는 ‘지능’의 승리라기보다는 ‘창의성’의 승리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의 창의성은 예나 지금이나 수수께끼 같은 신화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플라톤이 “시인은 신성한 존재로, 영감을 받아 정신이 나가고 이성을 잃기 전까지는 시를 지을 수 없다. 시인이 시를 지을 수 있는 것은 신의 권능 덕분”이라고 한 것처럼, 오랫동안 창의성의 근원은 인간이 아닌 신에게 있다고 여겨져 왔다. 그래서 고대 기록에는 ‘create’는 항상 수동태로 표현되어 있으며, 창조는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로 본다. 이는 신의 세계에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준(즉, 예술과 과학의 기본 개념을 인간에게 가르쳐준) 프로메테우스가 쇠사슬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고통을 겪는 것에서 잘 나타난다. 이것은 위대한 창조자일수록 불행한 운명의 주인공이 되거나 사회로부터 이탈한 광인이 되기 쉽다는 믿음으로 이어졌다.

창의성의 주체를 신에서 인간으로 돌리게 된 계기는 르네상스이다. 이후 신이 아닌 ‘천재’에 주목하게 되는 관점 전환은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시기에 완성되었다. 또한, ‘create’가 오늘날과 같은 현재 시제의 능동형 동사로 사용된 것도 15세기부터이며, 인간과 연계하여 ‘creativity’라는 단어의 최초 기록은 Ward가 1875년 책에서 ‘셰익스피어의 시적 창의성(poetic creativity)’이라고 표현한 것이라고 하니, 인간의 창의성이 공개적으로 인정되기 시작한 것은 놀랍게도 고작 150년밖에 되지 않는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과 같은 사회적 대변혁을 거쳐 1950년대가 되어서야 창의성이라는 단어가 인구에 널리 회자되었다(당시 미소 간 경쟁에서 앞서기 위한 핵심 역량으로 창의성에 주목한 것이 계기였다).

따라서 창의성 개념은 다음과 같은 세 단계를 거쳤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고대부터 르네상스까지의 형이상학의 시기로, 신의 영감을 받은 자들이 무(nothing)에서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것으로 보던 시대이다. 둘째는 르네상스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귀족의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일부 카리스마 있는 천재들이 무엇인가(something)로부터 창조를 하는 것으로 생각하던 시대이다. 셋째는 20세기 중반부터 지금까지의 민주적 시기로, 누구나 어떤 것(anything)에서든지 무엇인가를 창조할 수 있다고 믿는 시대이다.

창의성은 놀랍고도 신비로운 현상이면서도, 오늘날과 같은 무한 경쟁 시대이자 난제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더욱 그 중요성이 강조되는 인간의 역량이다. 우리는 위대한 인물들의 역사적 창의성(Big-C)뿐만 아니라, 일상적 창의성(little-c) 사례들에서도 독창성과 놀라움을 경험할 수 있다. 요즘 유튜브와 같은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조금만 살펴보아도 일상적 창의성의 수많은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더 나아가 점점 더 많은 일을 로봇과 기계가 대체함으로 인해 인간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성하고 적용하는 능력이 필수적인 지식 노동자가 되어 가고 있다(심지어 인공지능이 인간의 창의성을 뛰어넘으려 하고 있다!). 피터 드러커는 21세기 조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자산은 지식 노동자와 그들의 생산성일 것으로 보았다.

지식 노동자들에게 그리고 그들의 생산성에 가장 중요한 역량이 창의성이기에 이에 관심을 두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매우 복잡다단한 현상으로서의 창의성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보다는 더 많은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아내야 하는 연구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즉, 창의성 연구 영역은 꽃들이 만발하고 풍성하게 잘 가꾸어진 정원이라기보다는 듬성듬성 꽃이 피어 있고 아직 여러 곳에 잡초나 거친 흙이 드러나 있는, 더 다듬고 가꾸어야 할 정원으로 비유될 수 있다.

다만, 21세기에 들어 조직이나 비즈니스 영역에서 혁신이 강조되면서 창의성 연구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었다. 즉, 창의성이 ‘혁신’과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면서, 전통적인 예술과 과학 영역에 이어 제3의 영역으로 비즈니스와 산업에서의 창의성이 주목받게 된 것이다. 이런 변화로 인해 창의성 연구에서의 관점, 주제, 연구방법, 범위 등이 매우 다양해지고 확장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가드너가 창의성은 ‘분명 특정 한 분야 내에서만 설명될 수 없는 종류의 문제’라고 언급했듯이, 창의성은 심리학이나 교육학적 접근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참여가 필요한 학제적 연구 영역이 되고 있다. 예술과 과학 영역에서의 창의성 연구가 주를 이룰 때에는 창의성 연구자의 수도 제한적이었지만, 지금은 기업조직과 비즈니스 영역까지 확장되면서 여러 학문 영역의 연구자들로 그 수가 급증하였다.

사실 창의성은 다양한 요소들의 복합적인 상호작용으로 발현되며 그 과정도 여러 단계를 순환적으로 복잡한 현상이기에 이러한 관점, 주제, 연구방법의 다양화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최근 창의성 연구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주요 변화를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창의성 연구에서는 창의성이 정의되고 측정되는 방식에 따라 서로 다른 결론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1950년대 길포드의 제안에 따라 창의성을 ‘확산적 사고’로 정의하면서 오랫동안 대안 용도 과제와 같은 검사로 창의성을 평가하였으나, 최근에는 일상생활에서의 창의적 활동 혹은 생애 동안의 창의적 성취를 평가하는 방식이나, 특정 영역의 창작물을 만들어내도록 하고 전문가들의 합의로 평가하는 방식 등 창의성의 정의 및 측정 방식에서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둘째, 이전에는 역사적 창의성 관점(Big-C)의 창의적 산물(outcome)에 주목하는 연구와 일상적 창의성(little-c) 관점의 창의적 잠재력(potential)에 초점을 두는 연구 간에 어느 정도 간극이 존재했다면, 이제는 실제 현장에서의 Pro-c 수준의 ‘창의적 작업(creative work)의 구체적 과정’에 초점을 두면서 이러한 간극이 점차 좁혀지고 있다.

셋째, 이전에는 창의성을 ‘종속변수’로 간주하여 창의적 성취에 이르게 하는 선행 변수로 개인 특성이나 환경 요소에 주로 관심을 두었다면, 최근에는 창의성을 ‘독립변수’로 보고 창의적인 생각이나 행동이 이후 개인이나 조직에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에도 관심을 둔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창의성을 발휘한 경험이 이후 규범을 이탈하는 정도에 미치는 영향이나, 조직 내 특정 구성원의 창의적 행동이 이후 동료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것이다.

넷째, 오랫동안 창의성 연구는 창의적 과정 중에서 선행 단계인 ‘아이디어 생성’에 주로 관심을 가졌지만, 지금은 ‘아이디어 평가나 선택’과 같은 이후의 수렴적 과정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크라우드소싱 등의 방법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는 많이 생성할 수 있지만, 그들 중 가장 성공적일 수 있는 아이디어를 선택하는 과정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 따라서 창의성을 제한적으로 보지 않고 창의적 성공에 이르는 전 과정에 두루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확대되었다.

마지막으로, 이전에는 다루어지지 않았던 새로운 주제들로는 정서와 창의성 간의 관계나 창의성의 신경심리학적 기반에 관한 연구와 더불어, 창의성과 인공지능 간의 관계, 창의성 개념에 대한 동서양 간의 차이, 창의성을 나쁜 목적에 발휘하는 악의적 창의성 등 관심 범위가 더욱 넓어지고 있다.

4부, 15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이러한 창의성 연구의 변화 흐름에 따라 창의성에 관한 주요 심리학적 연구들을 주제별로 개관하였으며, 관련 경험적 연구들과 실제 사례들을 풍부하게 제시함으로써 창의성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이 창의성에 대한 신화적 믿음에서 벗어나 증거 기반의 과학적인 이해가 가능하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또한, 심리학적 관점에서의 연구를 주로 다루었으나 그것에만 한정되지 않고 창의성을 여러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관점의 내용을 주제별로 구성하였다. 

이 책은 일반인을 위한 가벼운 대중서나 창의성 발휘에 도움이 되는 자기개발서라기보다는, 천 페이지가 넘는 분량에서 알 수 있듯이 학술서에 가깝다. 따라서 창의성에 대해 좀 더 심도 있는 내용을 학습하고자 하는 학부생이나 대학원생에게 유용하기를 바라며, 창의성에 관심을 가진 일반인들에게도 지적 흥미를 충족할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장재윤 서강대·조직심리학

서강대학교 심리학과 조직심리학 전공 교수. 서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에서 조직심리학 전공으로 석사와 박사를 마쳤다. 주요 학술 활동으로 한국산업및조직심리학회 학회장 및 《한국심리학회지: 산업 및 조직》의 편집장, 한국심리학회 기관지 《한국심리학회지: 일반》의 편집장으로 일했다. 한국갤럽 학술논문상을 2회 수상했다. 저서로 <창의성의 심리학>, <문화적 다양성과 창의성: 심리학적 접근>, <내 모자 밑에 숨어 있는 창의성의 심리학> 등이 있다. 2021년 한국연구재단 우수학자로 선정되어 ‘사회조사 및 심리측정에서의 반응 편향의 탐지, 제어, 예방 및 대안적 방법 모색 연구’(5년 과제)를 수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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