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 다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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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 다시 읽기
  • 박아르마 서평위원/건양대·프랑스문학
  • 승인 2024.02.18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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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르타스]

 

무인도에 대한 서구인들의 관심은 유별나다. 1719년 다니엘 데포가 『로빈슨 크루소』를 세상에 내놓은 이후 300년이 넘는 시간 동안에 무인도와 섬, 난파자에 관한 이야기가 시대와 장소, 인물을 변주해가며 반복되어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미국 작가 페니모어 쿠퍼의 『분화구』부터 프랑스 소설가 쥘 베른의 『2년 동안의 휴가』와 미셸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에 이르기까지 무인도와 로빈슨은 저마다의 시대와 사회적 가치를 반영하며 다시 태어나고 있다. 특히 데포의 후손답게 무인도 이야기인 『파리대왕』을 쓴 월리엄 골딩과 『포Foe』의 남아공 작가 쿠체가 각각 노벨문학상을 받았으니 서구인들의 무인도에 관한 관심은 충분히 입증된 셈이다.

난파와 무인도 체류, 생존을 위한 투쟁, 구원의 필연성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로빈슨류 소설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명제를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이야기이다. 수많은 로빈슨 크루소는 고립과 고독에 놓이게 되고 농사와 사냥 같은 섬 체류를 위한 방안을 찾아내지만 결국 자신이 떠나온 문명 세계로 돌아갈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무인도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가 반복되는 것은 ‘인간은 과연 혼자 살 수 있을까?’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무인도는 절대적 고립이라는 극한 상황에 놓인 인간의 삶을 관찰할 수 있는 하나의 실험실이 되기 때문이다.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1954)은 로빈슨류 소설의 계보에 속해 있으면서도 전통적인 모험소설의 문법을 파괴하고 고립과 고독에 따른 정신적 고뇌가 별반 드러나 있지 않다는 측면에서 구별되는 작품이다.

William Gerald Golding (19 September 1911 – 19 June 1993)

『파리대왕』은 핵전쟁 이후 영국 소년들을 후송하기 위한 작전 중 비행기가 무인도에 추락한 뒤 5세에서 12세 소년들이 두 패로 나뉘어 투쟁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대장 랠프로 대표되는 집단은 불을 지펴 봉화를 올려야 구조를 받을 수 있다며 불의 가치를 우선시한다. 반면에 잭으로 대표되는 사냥꾼 집단은 식량을 얻기 위한 사냥을, 때로는 살육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사냥에 빠져든다. 대표를 뽑고 소라를 든 사람에게만 발언권을 준다는 규칙은 영국 소년들답게 민주적 절차를 중시하는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 섬에 충분한 식량이 있음에도 식량 고갈에 대한 걱정과 존재하지 않은 괴물에 대한, 이른바 숨은 공포에 대한 두려움은 로빈슨류 소설의 연장선에 있다. 다만 문명의 이기가 전혀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생존을 위한 집짓기와 농사, 사육, 섬의 지리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와 같은 전통적인 모험소설의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물론 소년들의 나이를 고려하면 생존을 위한 투쟁은 제한적일 수 있지만 골딩은 무인도를 모험이 일어나는 장소이기보다는 “인간 본성의 어둠을 파악”하고 관찰하기 위한 일종의 실험실로 삼았다. 소년들은 독자 혹은 작가가 들여다보는 관찰 카메라 아래서 문명과 야만이라는 가치를 대립시키며 생존이 목적이 아닌 증오에서 비롯된 살육에 빠져든다.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은 외부 세계로부터 차단된 무인도라는 고립된 공간을 배경 삼아 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악하다면 그 기원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 이유에서와 같이 그의 소설이 “사실적인 설화 예술의 명쾌함과 현대의 인간 조건을 신비스럽게 조명…”한 것은 틀림없다. 그럼에도 몇 가지 비판적 질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쥘 베른의 『2년 동안의 휴가』(15 소년 표류기)가 출간되고 7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한 ‘소년들만의 섬’은 ‘인간의 총체성에 대한 왜곡’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문명과 야만의 대립, 사냥, 소라, 안경, 불 등의 사물이 만들어내는 과도한 상징성 역시 이야기 자체의 자연스러운 전개보다는 주제를 뒷받침하기 위한 목적에 매몰되어 있다. 고독의 소멸도 아쉬운 대목이다.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에 대한 성찰은 아니더라도 아직 유년기에 가까운 소년들이 가족과 떠나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거의 드러내고 있지 않으니 말이다.

현대의 로빈슨류 소설에서 가장 큰 전환점을 만들어낸 작품은 골딩과 투르니에의 소설이다. 한 사람은 ‘인간 본성의 어둠과 결함’에 따른 파국적 결말을 만들어냈고, 다른 한 사람은 주인 로빈슨과 노예 프라이데이의 관계를 전도시키며 로빈슨을 섬의 영원한 체류자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발견할 수 있는 미지의 땅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고독사가 일반화된 오늘날 작가에게 ‘섬’은 그 자체로서의 목적이 아닌 이야기의 구실 혹은 실험실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어려워졌을 것이다.

 

박아르마 서평위원/건양대·프랑스문학

건양대학교 휴머니티칼리지 교수. 서울대 대학원에서 프랑스 현대문학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양대 휴머니티칼리지 브리꼴레르 학부 학부장과 박범신 문학콘텐츠 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지은 책으로 『글쓰기란 무엇인가』, 『투르니에 소설의 사실과 신화』가 있고, 번역한 책으로 『살로메』, 『춤추는 휠체어』, 『까미유의 동물 블로그』, 『축구화를 신은 소크라테스』, 『칸트 교수의 정신없는 하루-칸트 편』, 『데카르트의 사악한 정령-데카르트 편』, 『녹색 광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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