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갈등은 행복지수를 어떻게 저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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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갈등은 행복지수를 어떻게 저해할까?
  • 양해림 충남대·철학
  • 승인 2024.02.18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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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지난 1997년 이후 대한민국의 연령분포를 보면, 경제활동 인구에 속하는 40, 50대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한국에서 소위 베이비붐 세대는 이미 은퇴를 했거나 은퇴를 앞두고 있는데 그들의 귀향으로 인한 지역사회의 변화가 다소 요동칠 수 있음을 예측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귀촌·귀농이 농촌사회의 적정 인구 수가 유지되게 함으로써 농촌의 지속성은 물론 부족한 인적자원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역할을 하리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귀농·귀촌인은 한편으로는 농촌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사회 내 갈등과 같은 부정적인 측면을 유발하는 측면도 있기에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OECD 평균에 비해 대한민국 사회는 2000년 이후 지속적으로 삶의 만족도(27위)가 낮고 행복도(34위) 역시 최하위권이다. 그리고 자살률 1위, 합계 출산율 34위라는 부정적 수치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거의 모든 국민이 초·중·고 학창시절부터 대학진학을 위해 쉬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고 직장에서 오랜 시간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정작 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10년 넘게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위험수위를 치닫는 사회갈등 지수와 관련이 매우 깊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2016)에 따르면, OECD 가입국 30개 나라 가운데 한국은 세 번째로 갈등 지수가 높다. 한국은 정치갈등 4위, 경제갈등 3위, 사회갈등 2위로 종합 3위의 심각한 상황이다. 「세계 행복 보고서 2020」에서도 조사 대상 국가 153개국 중 61위로 행복 점수가 매우 낮고 OECD 가입국 가운데도 현저하게 낮았다. 실제로 「한국 사회갈등 해소 센터」가 한국리서치를 통해 수행한 『2022 제10차 한국인의 공공갈등 의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9명이 우리 사회의 갈등이 매우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도 ‘갈등 공화국’으로 부를 만큼 한국의 사회갈등 수준은 아주 높다. 이념갈등 – 계층갈등(빈부갈등/노사갈등) – 젠더갈등 – 세대갈등 – 지역갈등 순으로 갈등 수준이 위험 수위를 치닫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우리 사회의 갈등이 단순히 부정적인 것만은 아닐 수 있다. 정부나 지자체가 ‘균형되고 일관성 있는 사회갈등의 조정자’로서 모든 소임을 다한다면, 사회갈등은 오히려 우리 사회 발전의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왜냐하면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는다고 하듯이, 사회갈등이 사회 발전의 강력한 에너지로 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회갈등이 전면화했을 때 공동체 구성원들이나 이해당사자들이 갈등의 구조적 원인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사회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장기간 지속할 경우, 갈등 조정자로서, 그리고 갈등 관리자로서 정부 및 자자체에 대한 신뢰는 추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욱이 ‘공익’을 표방하는 정부나 지자체의 정책 집행력조차 그 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 사회갈등은 정치, 사회불안을 초래하여 정부 신뢰도를 실추시키고 국가 경제활동을 위축시킨다. 실제로 장기간 지속한 사회갈등은 경제활동을 위축시켜 결과적으로 GDP를 감소시킨다는 보고가 있다. 또한 정부나 지자체가 갈등 관리자로서 정치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국면에 접어들면, 국가정책조차 강력한 이익집단의 집단행동에 가로막혀 좌절할 수도 있다.

첨예한 사회갈등 상황에서 정부나 지자체가 ‘갈등 조정의 균형자’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을 때 정부에 대한 신뢰도와 행복지수는 크게 오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인 시민의식이 고양되고 민주사회로 더욱 성숙해 나갈 수 있다. 왜냐하면 사회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숙의 민주주의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소통과 대화, 숙의, 합의가 자리 잡고 상대방의 생각을 이해하며 서로 존중하는 태도를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가장 좋은 목적을 행복”이라 보고 그의 철학 중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로 내세웠다. 이를테면 그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목적이란 무엇일까?”라는 문제를 갖고 한평생을 씨름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국가는 선(善)을 목적으로 하는 공동체다. 국가의 선(善)이란 단순하게 생존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국가는 모든 국민의 선을 추구해야 한다. 국민의 선을 추구한다는 것은 인간으로 누려야 할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현대적인 의미에서 국가라는 공동체는 일부 권력자나 통치자들만을 위한 소수의 복지가 아니라 모든 국민의 복지를 목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개인의 이익을 목적으로 통치하는 국가는 올바르지 못한 정부라고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모든 학문과 기술에서 하는 것은 선이다. 모든 기술과 학문 가운데 가장 권위있는 것, 즉 정치학의 기술과 학문에서 목적으로 하는 선이 가장 좋은 선이다. 정치학 분야에서 선은 정의(正義)이며, 정의는 공익을 증진하는 데 있다.”

예나 지금이나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는 정의롭지 못한 불의한 정치‧사회 현실에 저항할 줄 아는 시민들에 의해서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공화국 시민으로서 공동체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을 아울러 요구한다. 따라서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는 ‘비판하는 시민의식’을 필요로 하며, 자신의 안목으로 정치‧사회 현상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행복한 사회란 과연 어디로 가야 하는지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자세를 필요로 한다.

 

양해림 충남대·철학

충남대학교 인문대학 철학과 교수. 독일 훔볼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해석학회장, 한국니체학회장, 한국환경철학회장, 한국역사철학회장,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공동의장 등을 역임했다. ‘2022년 대한민국 인권상(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을 받았다. 저서로 『스물에 만나는 현대해석학의 거장들』, 『딜타이와 해석학적 사회체계』, 『인권과 사회』, 『현대인을 위한 서양철학사』, 『한스 요나스의 생태학적 사유읽기』, 『철학자의 시사산책』, 『시사프리즘, 철학으로 한국사회를 읽다』, 『니체와 그리스 비극』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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