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뜸은 어디까지 … 〈한일고금비교론〉 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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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뜸은 어디까지 … 〈한일고금비교론〉 ⑮
  •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 승인 2024.02.11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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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일 칼럼]

일본에서 강연하면서 악인의 비행을 들어 서로 나무라지 말아야 한다. 으뜸인 것을 찾아 칭송하면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차리고, 얻는 바가 있어 이중으로 좋다. 이것을 말머리로 삼고 화제를 바꾼다.

일본 문화 창조물 가운데 어느 것을 일본에서 으뜸이라고 여기는가? 무엇을 세계에서 가장 높이 평가하는가? 이 두 질문에 대한 대답은 能(노우)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다. 能는 오랜 내력을 가지고 지금도 공연하고 있는 일본 특유의 假面舞劇(가면무극)이다.

假面을 보면 품격이 뛰어난 미술품이다. 舞는 고도로 세련되고 정제된 동작을 보여준다. 劇을 이루는 대본은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한 깊은 성찰을 말한다. 반주 음악의 울림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 모두가 어울려 幽玄(유겐)이라고 일컬어지는 그윽하기 이를 데 없는 미의식을 빚어내며, 이에 관한 이론도 수준이 아주 높다.

그 유래와 변천이 잘 밝혀져 있다. 모체라고 추정되는 田樂(덴가쿠)는 신체를 활달하게 움직이는 놀이였다. 이것을 대본이 있는 연극으로 만든 제1대 명인 觀阿彌(칸아미, 1333-1384)의 뒤를 이어, 아들인 제2대의 명인 世阿彌(제아미, 1363?-1443?)도 젊어서 활달하게 놀다가 나중에는 몸을 천천히 움직이는 연기를 했다. 

전쟁에서 비참하게 죽은 무사의 혼령이 나타나 고뇌를 하소연하다가 神佛(신불) 도움으로 편안해지는 내용의 대본을 여럿 지어 공연해, 국권을 장악한 무사 계급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내면의 고민을 해소해 안정을 찾고, 상층으로 올라서서 얻은 정신적 우위를 입증하는 두 가지 기능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무사 계급은 창작 능력이 없어, 이런 能을 자기네 예술로 삼고 적극 지원했다.  

世阿彌는 공연에서뿐만 아니라 이론에서도 能의 품격을 한껏 높여 무사들의 기대에 더 잘 부응하려고, <風姿花傳>(후우시카덴) 등의 저술을 했다. 연기는 꽃과 같아 온갖 정성을 다 기울여 키워내야 하고 절정에 이르렀다가 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말은 불교에서 가져온 유식한 한자어로 서술해 두고두고 높이 평가된다.

일본에도 田樂를 바로 이은 지방 하층민의 假面舞劇이 있었다고 하는데, 자취를 찾을 수 없다. 能 때문에 눌려 숨어 지내다가, 조사해 연구하기 전에 없어진 것 같다. 한국에도 상승한 假面舞劇이 있었던 증거를 보여주는 處容劇이 있는데,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궁중에서 공연되면서 연극일 수 있는 긴장을 상실했다. 

일본에는 상위의 能, 한국에는 하위의 탈춤만 남아 각기 대단한 경지에 이르렀다. 일본의 能은 고차원 예술의 극치라면, 한국의 탈춤은 밑바닥 예술의 극치이다. 서로 아주 다르면서 상보적인 가치를 지녀 서로 대등하다. 비교연구를 많이 했으나 이 점에 대한 해명이 모자라 더욱 분발해야 한다. 둘이 어떻게 다른지 표를 그려 정리한다.

이 가운데 마지막 세 줄에 적은 것이 특히 긴요하다. 幽玄은 죽음의 고뇌를 이겨내는 명상이 얼마나 심오한 경지에 이르는지 알려주어 찬탄을 자아낸다. 신명풀이는 상극을 넘어서서 상생을 이룩하는 삶의 약동을 어느 누구와도 더불어 실현하도록 한다.

觀阿彌(1333-1384)와 世阿彌(1363?-1443?) 부자가 일본에서 能을 창조할 무렵에, 한국에서는 李穀(이곡, 1298-1351)과 李穡(이색, 1328-1396) 부자가 한문학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었다. 이 둘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말하면, 문명권의 보편주적 이상을 중국의 전범을 떠나 독자적으로 구현하는 과업 성취에서 커다란 진전을 이룩한 공통점을 지닌다. 

중세전기의 지배자 귀족을 밀어내고 새로운 세력이 대두해 중세후기를 이룩하는 대전환이 양쪽에서 일제히 일어났다. 그 세력이 일본에서는 武士(부시), 한국에서는 士大夫(사대부)였다. 한국에서도 얼마 동안 武士가 국권을 장악하다가, 士大夫에게 밀려났다. 士大夫는 한문학을 민족과 민중의 삶을 나타내도록 창조하고, 이상과 현실의 근접을 철학에서 추구했다. 李穀이 두드러지게 수행한 그런 활동을 아들 李穡이 더욱 진전시켰다. 

世阿彌가 <風姿花傳>를 써서 能의 기본 원리 幽玄을 가다듬은 것과 상응하는 창조 작업을, 李穡은 <觀魚臺賦>에서 중국 일본 사이 자기 고장의 바다가 약동하는 모습을 그리고 “物我一心”의 이치를 말해 구체화했다. 幽玄과 物我一心은 대립과 갈등을 넘어서서 얻게 되는 궁극적 조화라는 공통점이 있다. 대립과 갈등은 사람의 잘못이 꼬여 생긴다고 여긴 것도 같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응답은 아주 달랐다. 

世阿彌는 탁월한 인물이 정신적 차등론의 절정을 홀로 구현해, 초월적인 존재와 하나가 되는 오묘한 경지가 幽玄이라고 했다. 李穡의 物我一心은 차등론에서 벗어나 대등론을 이룩하는 관계를 物과 더불어 가지는 것을 출발점으로 하고, 사람들의 차별도 철폐한 거대한 대등의 총체를 이룩하자는 말이다. 관념을 버리고 현실을 받아들이며, 하층민의 삶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자는 주장을 내포했다. 

논의가 너무 흩어졌으니 모아야 한다. 양쪽 사고의 핵심 개념을 추출해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일본은 幽玄의 경지에 이른 고도의 審美(심미) 의식을 자랑한다. 한국에서는 상층이 추구하는 物我一心과 하층 주도의 신명풀이가 맞물려 역동적인 生克(생극)을 빚어낸다. 어느 하나가 우월하다는 차등론을 버리고, 서로 포용하는 대등론을 얼마나 넓힐 수 있을까?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한국학대학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으로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 연변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서사민요연구>, <한국문학통사>(전6권),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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