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은 이와 포옹하지 못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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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이와 포옹하지 못해도
  • 김주현 인제대·국문학
  • 승인 2024.02.11 1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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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세월호참사 국면이었다. 당시 구독하던 신문에 매일 사진이 올라왔다. 그중에 지금도 잊지 못하는 장면이 있다. 시간이 흘러 정말 그 사진이 있었을까 싶을 만큼 충격을 안긴 사진은, 눈을 감은 여학생이 춤을 추듯 잠수사들의 양손을 잡고 올라오는 장면이었다. 수면을 뚫고 내려온 빛이 고인의 주위에 머물렀던 듯하다. 다행히 너무 늦지 않게 나와 부모에게 간 여학생은, 살았다면 이승의 나이로 28세가 되었다. 28세. 저무는 20대를 탄식하며, 몇 번의 연애와 이직과 시험을 걱정하고, 코로나가 진정된 야외에서 친구들과 맥주잔을 쳐들고 다시, ‘파이팅!’을 외칠 나이다. 그해 우리는 304개의 우주를 잃었다.

사진을 생각할 때마다 한편으로 고인을 인도한 잠수사가 떠올랐다. 당시 현장에는 민간인 잠수사가 25명 있었다. 지금도 그렇거니와 나는 그런 일을 하는 이의 내면을 모른다. 추측해보려 해도 상상할 수 없다. 푸른 산호초와 물고기가 노니는 열대 바다도 아니요, 이름만큼 물살이 센 맹골수도에서 온갖 부유물이 앞을 가리고,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 있을지 모를 아이들을 찾아 거꾸로 처박힌 세월호 선체를 헤맬 때의 중압감과, 숨이 멎을 찰나 빈손으로 떠오를 때의 자책감을 나 같은 사람은 모른다. 이듬해 봄 소도시 항구에서 시퍼런 밤바다를 보고 몸을 움츠렸던 때도, 이런 물속을 겪은 이는 어떻게 일상을 회복할까 생각했었다. 타인의 고통을 겪다가 고통받는 자가 될지 모를 낯선 이에 대한 생각은 꽤 오래 계속되었다.

그 심경을 조금이나마 느낀 것은 「거짓말이다」(2016)를 통해서였다. 고 김관홍 잠수사가 모델인 소설의 나경수 잠수사는 자신을 찾아온 ‘나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놀랍게도 나래는 선체에서 나경수 잠수사의 마스크 위로 천천히 올라와 “눈을 꼭 감은 채 잠을 자듯 평온한 표정”(121쪽)으로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듯 멈춰섰다. 그는 와줘서 고마운 나래를 품에 꼭 안아 ‘모시고’ 나온다. 이 장면을 읽으며 내가 본 이가 어쩌면 나래겠구나 싶었다. 나래가 고운 모습으로 부모님을 만나도록 도운 그 잠수사는 모두가 아는 대로 소설 출간 두 달을 앞두고 스스로 별이 되었다. 잠수 후유증과 당국의 냉대가 원인이었다. “아직 구해내지 못한 아이들 곁으로 갑니다. 뒷일을 부탁합니다” 김관홍 잠수사가 남긴 유언이다.

대형 참사가 터지면 이른바 좌우가 극심하게 찢어진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는 진리는 어디로 갔는지, 유명을 달리한 희생자와 유족을 조롱하는 말들이 어디선가 나타나고 슬픔을 돈으로 환산하는 ‘거짓말’들이 횡행한다. 아홉 차례 국정조사를 거치고 어렵게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었지만 재작년 이태원참사가 발생했을 때 온라인에 떠돌던 싸늘한 반응은 우리가 세월호를 함께 겪은 나라의 국민이 맞는가 놀라웠다. 놀러 갔다가 죽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발언들이 희생자 또래에서도 흘러나왔다. 어째서일까. 그 발언들을 쫓으니 냉소적인 태도 뒤의 어떤 박탈감이 보였다. 코로나가 끝났어도 내 삶은 여전히 팍팍한데 누구는 이태원에서 무려 할로윈을 즐기는구나... 참사 당일 긴박한 현장을 고스란히 보았다면 할 수 없을 말들이다. 그리고 이는 세월호 당시에는 없었던 말들이다.

이런 논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학여행을 가다가 참변을 당한 것과 놀러 가서 당한 참변이 같은가. 공적으로 학습활동의 연장인 수학여행의 많은 시간이 친구들과의 놀이로 채워짐을 알면서도 굳이 학업과 놀이를 가르던 논리에 대해, 수학여행지에서 떠들고 먹고 걷는 그 모든 일은 공부인가 되묻던 피로감과, 수차례 계속된 신고에도 나타나지 않은 경찰의 업무 태만에 대해서는 굳이 말하지 않던 선택적인 반응들이 있었다. 2023년 파라마운트플러스에서 제작한 이태원참사 다큐 <크러쉬>는 어떤 까닭인지 국내에 정식 공개되지 않았다. 세월호참사 10년 후 우리는 이런 세상을 살아간다. 세월호참사 앞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하던 공감력은 어디로 갔나?

상대를 비판할 때 흔히 하는 ‘역지사지’는 사실 매우 어렵다. 고통 받는 이의 편에 서보라고 요구받아도 근본적으로 피해를 입은 네가 아니기에 그 입장에 잘 서지지 않는다. 비슷한 고통을 겪어보지 않았으니 너의 슬픔이 체감되지 않는 것이다. 사회적 참사 후에 제정되는 ‘특별법’은 이런 세상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만드는 것이다. 살다가 운이 없어 불시에 그 처지에 놓일 때 당신이 역지사지해주지 못해도 버텨 낼 힘을 주는 제도가 필요하다. 세월호 유족이 힘들게 만들어낸 판에서 다시 이태원참사 유족들이 싸우고 있다. 그런데 마땅히 눈물을 닦아줘야 할 이들이 역지사지를 해주지 않는다. 시쳇말로 장관의 자식이 당했어도 그럴까. 이 절망적인 분노가 정치권을 향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태원참사특별법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니, 여당과 대통령이 보는 ‘국민’은 누구인가. 유가족과 협의 없는 일방적인 종합대책은 폐기해야 한다.

공동체의 안녕을 지탱하는 역지사지의 기저에는 타자에 대한 연민과 연대가 있다. 어떤 사회에서도 존재하는 이 감각을 최근 다시 전후 소설을 읽다가 발견한다. 가난하고 힘겨운 시절의 한국인들이 저처럼 곤궁한 이를 챙기며 걷고 있다. 배가 지나치게 부르면 오히려 몸이 굽혀지지 않는 법이다. 김탁환은 ‘작가의 말’에서 김관홍 잠수사가 끝까지 잠수했던 이유를 이렇게 썼다. “그는 높이가 아니라 깊이를 아는 인간이기 때문에 갔던 것이라고. 함께 더 깊이 내려가기 위해, 그 과정에서 거짓과 참을 낱낱이 찾아내기 위해, 그는 맹골수도로 갔고, 광화문 광장과 동거차도와 단원고 교실과 또 내게로 왔던 것이라고. 그리고 그는 너무 많은 이와 포옹하는 바람에 아무도 모르는 깊이까지 내려간 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고.”(387쪽) 

그처럼 “너무 많은 이와 포옹”하진 못해도 질식하는 고통을 모르겠는가. 대한민국에 사는 누구든 숨 쉴 수 있어야 한다.

 

김주현 인제대·국문학

인제대학교 리버럴아츠교육학부 교수.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작가와사회』 편집주간, 지혜마실협동조합 운영위원장, 인제미디어센터장 등으로 일했으며, 최근에는 ‘공유지’ 사상을 공부하고 있다. 저서로는 『전쟁자본주의의 시간』(2023)이 있고, 『혁명과 여성』(2010), 『냉전과 혁명의 시대, 그리고 〈사상계〉』(2012), 『1960년대 문학과 문화의 정치』(2015) 등을 함께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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