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자본주의를 헤쳐 나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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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자본주의를 헤쳐 나가기
  • 황현일 국립창원대·사회학
  • 승인 2024.02.10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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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_ 『사회 생태 전환의 정치』 (임운택·김민정·강민형 엮음, 두번째테제, 340쪽, 2024.01)


 

아마도 근래의 자본주의에서 중요한 분기점은 2007~8년의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일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20세기 후반 전 세계를 난도질했던 신자유주의 정책의 파산과 이를 주도했던 미국의 세계 헤게모니 몰락의 전조를 함축한다. 그렇다면 그 이후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일까? 21세기의 1/4이 지난 지금 우리는 1929년 대불황 이후처럼 케인즈주의적인 사회복지국가가 재출현하는 것도 아니고 폴라니주의자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사회의 자기보호운동이 강화된 것도 아닌 ‘혼돈의 시대’ 안에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21세기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이 혼돈을 어떻게 이해하고 또 어떻게 헤쳐나갈지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회 생태 전환의 정치』는 이 문제를 고민하는 데 유용한 정보들과 적절한 시각들을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은 2022년 11월에 개최된 비판사회학회(대회명: 21세기 자본주의의 디지털·그린 전환과 사회의 미래)에서 발표된 논문들을 엮어서 만들어졌다. 편저자를 포함하여 총 13명의 저자로 구성되어 있고, 미·중 무역 갈등, 플랫폼 문제, 디지털 전환, 생태 전환 등 21세기 자본주의가 직면하고 있는 핵심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각각의 주제들은 최근의 상황들을 이해할 수 있는 유용한 정보들과 시각을 제공하고 있어 그 자체로 읽어볼 만하지만, 여기서는 지면 관계상 책 전체의 흐름을 개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간략한 소감을 곁들이고자 한다.

이 책은 홍콩의 사회학자이자 미국 존스홉킨스대 정치경제학 교수인 훙호펑(Hung, Ho-Fung)의 미·중 무역전쟁에 대한 분석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는 이전까지 미국 기업들이 중국 자본에 우호적이었지만, 중국 자본들의 – 주로 지적재산권 침해를 통해 - 기술 추격이 자신들의 턱 밑까지 이르자, 적대적인 입장으로 선회하게 되었고, 이는 반중 노선을 지지하는 미국 정치 세력들의 입지를 강화하는 것으로 이어졌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이 미·중 무역전쟁은 ‘구조적 여건’이 변하지 않는 한 지속되거나 혹은 더 강화될 것으로 부정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훙호펑은 이 ‘구조적 여건’에 대해 자세하게 밝히지는 않고 있지만, 노련한 독자라면 그것이 글로벌 금융위기로 표상되는 자본주의의 (최종적) 위기와 연관됨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편저자들이 이 글을 제일 처음에 배치한 이유도 이 글이 자본주의의 위기가 표출되는 양상을 미·중 대립이라는 형태로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에 나오는 글들은 지난 10년간 전 지구적인 이슈의 전면에 등장하고 있는 디지털 전환과 그린 전환의 주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전 세계의 지도자들과 정책 입안자들이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플랫폼, AI로 표상되는 산업의 디지털화는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국가와 자본의 프로젝트이다. 물론 이 과정은 정치 지도자들이 약속하는 것처럼 순탄하지 않고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갈등과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이 책의 장점은 이러한 갈등과 혼란을 그저 자본주의의 탓으로 돌리고 끝내기보다는 갈등과 혼란의 현장으로 들어가 그 실상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더 나아가 현실의 문제들이 자본주의의 동학과 연계되는 매개 지점들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는 점에 있다. 디지털 전환의 실제적 과정에 놓여 있는 한국 자동차 부품산업에 대한 임운택·이균호의 사례 연구나 한국 제조 대기업의 성장 전략 변화에 대한 강민형·이시림의 탐색적 연구는 자본주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한국 기업들의 대응 실태를 분석하면서 테일러리즘의 재출현이나 노동력의 이중화라는 노동 문제가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이중 전환과 글로벌 가치사슬의 관계를 논하는 이준구의 글은 탈세계화 흐름 속에서도 글로벌 가치사슬 이론이 여전히 유용할 수 있음을 논리 정연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그린 전환과 관련해서 모두 4개의 글을 싣고 있는데, 이 중 독일 예나 대학의 사회학과 교수인 클라우스 되레(Klaus Dörre)의 글은 주로 민족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전통적인 사회과학적 분석 범주와 ‘사회 생태’를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분석 범주를 동시에 고려하면서 이 책의 제목인 ‘사회 생태 전환의 정치’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야심찬 글이다. 바람직한 생태 전환의 정치를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그가 ‘집게발 위기’라 명명한 오늘날의 난국을 해결해야 한다. 집게발 위기란 간단히 말해 경제 성장과 생태 회복이 양립하기 불가능한 상황을 의미한다. 어찌 보면 지난 수십 년간 진행된 기후정치는 이 대립을 조정하는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김민정, 구준모, 이상준의 글들은 한국에서 벌어졌던 기후정치의 사례를 통해 다양한 갈등의 선들을 찾아보면서 집게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 많은 사람의 삶 속에는 발전 혹은 성장의 습속이 깊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습속은 한국 사회가 발전해 온 과정의 결과라 할 수 있는데, 문제는 앞으로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발전이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그리고 그 발전의 결과로 현재의 위기가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발전주의와 동일한 논리의 처방이 위기 극복의 이름으로 실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이러한 발전주의적, 기술주의적 위기 대응이 가진 문제점을 급진적인 관점에 입각해 진단하면서 새로운 계급 정치와 생태 정치의 가능성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많은 저자로 구성되어 있기에 사실 하나의 책이라기보다는 다양한 시각과 관심사가 엮여 있는 논문 모음집의 성격이 크지만, 모든 주제가 21세기 자본주의를 헤쳐나가기 위한 과제들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새로운 미래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좋은 자극과 영감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황현일 국립창원대·사회학

국립창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서울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산업노동사회학을 전공으로 하고 있다. 주로 자동차산업, 노사관계, 노동조합운동을 연구해왔고, 최근에는 자동차산업의 전환, 취약노동자 문제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취약노동자: 경남의 노동현실과 지역노동정책의 과제』 (공저), 『자동차산업 구조변화와 정책과제』 (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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