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고전 『홍루몽』을 해부한 친절한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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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고전 『홍루몽』을 해부한 친절한 길잡이
  • 최용철 고려대 명예교수·중문학
  • 승인 2024.02.10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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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홍루몽』 읽기 | 최용철 지음 | 세창출판사 | 2024년 01월 17일 | 320쪽

 

중국 고전 최고의 명작소설 『홍루몽』 출현의 의의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분명한 것은 창작의 방법이나 묘사의 대상이 이전의 전통과는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귀족 가문의 흥망성쇠와 대가족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파헤치며 사랑과 혼인, 가족 구성원 사이의 복잡한 인간관계를 다루면서 보편적인 인류애를 실천하고 여성을 존중하며 깊은 사랑과 배려의 따뜻한 정서를 그려내고 있다는 점은 이 소설의 큰 장점이다.

청나라 건륭(乾隆) 연간 북경에서 처음 간행된 『홍루몽』이 짧은 시간 내에 중국 전역에 전파되고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 원인은 다음 몇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이야기 자체의 기발한 발상과 뛰어난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작가는 천성적인 이야기꾼으로서 자유자재로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톡특한 기제를 활용한다. 중국 고대의 여와 신화를 끌어와서 이용하는가 하면 또 새롭게 태허환경이란 선경을 만들어 남녀 주인공의 전생 인연을 설정하여 소설의 기본 배경을 깔았다. 옥을 물고 태어나는 신비로운 이야기를 이끌어 가면서도 시종 진지하고 면밀한 묘사 방식을 적절하게 가미하여 독서의 흥미를 놓치지 않도록 한다.

『홍루몽』의 소설적 성공은 다양한 고전 문화에 해박한 지식을 갖춘 작가의 박식과 더불어 유려한 문장을 이끌어가는 문필의 힘이다. 작가 조설근(曹雪芹)은 비록 한족의 후예이지만 대대로 청나라 황실과 긴밀한 관계를 지닌 만주 귀족으로서 가문의 전통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남경의 강녕직조(江寧織造)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서 가문이 몰락하여 가족을 따라 북경으로 이주하였다. 만년에는 북경의 서산 아래에서 궁핍하게 살며 가문의 파란만장한 흥망의 역사를 담은 이 작품을 집필하여 거의 완성될 무렵에 안타깝게 절명하였다. 

그는 당시 시인으로서 그림에도 솜씨가 있었으며 호탕하게 술 마시고 좌중을 사로잡는 이야기꾼이기도 했다. 소설의 등장인물을 통해 지어낸 수많은 시사 작품이 모두 그의 독창적인 창작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의 사후 소설은 한동안 필사본으로 전해지다가 후인에 의해 정리되어 120회본 『홍루몽』으로 온전하게 간행되었다. 작품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 곧 사대기서의 반열에 오르게 됐다. 이 책의 매력에 흠뻑 빠진 사람들을 홍미(紅迷)라고 부르고 이 책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 경학에 빗대어 홍학(紅學)이라고 했다. 

20세기 초 중국의 석학들은 이 책을 중국문화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내세워 대서특필하고 언문일치 운동의 일환으로 백화문학의 가장 우수한 모델로 선정했다. 급기야 마오쩌둥 같은 정치지도자는 『홍루몽』을 극찬하면서 이 책을 읽지 않으면 봉건사회를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홍학 논쟁에 불을 지폈다. 이로 인해 현대 중국에서 전국적인 ‘『홍루몽』 읽기의 붐’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정치적 홍학 논쟁은 작품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안 된다. 『홍루몽』은 그 자체로 충분한 문학성과 예술성을 갖추고 있는 보석과 같아서 스스로 영원히 빛날 뿐이다.

필자는 독자들에게 『홍루몽』을 좀 더 쉽고 편안하게 이해하도록 다음과 같이 여섯 단계로 나누어 분석하면서 길잡이 역할을 하고자 했다. 각 장의 제목과 더불어 더욱 명료한 키워드를 함께 제시하여 일목요연하게 살필 수 있도록 배려했다. 각 장은 제1장 ‘홍루몽은 어떤 소설인가(참회의 기록)’, 제2장 ‘홍루몽의 사랑과 운명(보옥과 대옥)’, 제3장 ‘사대 가문의 흥망성쇠(가문과 외척)’, 제4장 ‘가보옥의 치정과 충돌(부자의 갈등)’, 제5장 ‘대관원 야간수색 사건(사랑과 죽음)’, 제6장 ‘홍루몽의 문화와 배경(전통의 계승)’과 같은 제목과 부제로 이루어져 있다.

『홍루몽』은 어떤 소설인가. 작가의 젊은 시절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정한 사랑의 애틋함과 생사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장편 서사시다. 또한 귀족 가문의 파란만장한 흥망성쇠를 그리며 몰락하는 가문을 구원할 수 없었던 자신의 무력감을 드러내는 참회록의 성격도 띤다. 작가 조설근의 생애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가문이 황실과 가까웠고 남경에서 65년간 강녕직조의 직을 맡았던 귀족가문이었음은 역사적 사료가 많이 남아있다. 특히 할아버지 조인(曹寅)은 강희제의 총애를 받았으며 시문과 사곡에 정통하였고 강남지역의 문화계를 이끈 인물로 널리 알려져 조설근의 문화적 전통의 배경이 된다. 신화적 설정과 낭만적인 환상을 제시하고 있지만 미묘한 인간관계에서 오는 감성의 묘사에서는 치밀하고 사실적이다. 작가 스스로 토로하였듯이 “정(情)을 말하고 있으나, 사실 그대로를 그려내고 있을 뿐, 결코 망녕되게 거짓 이야기를 만들어 내지는 않았다”고 한 말이 그것을 증명한다.

제2장에서 제5장까지는 『홍루몽』의 인물과 내용을 집중적으로 살펴본 것이다. 핵심 인물인 가보옥과 임대옥의 전생의 만남과 생사 이별의 과정에서 어떻게 서로의 마음 깊은 곳에 공명을 일으키는지, 그리고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심리적 갈등과 모순 때문에 불필요한 실랑이와 가슴앓이를 얼마나 계속하는지 여실하게 보여준다. 청춘남녀의 독자들이 주인공들의 일거수일투족과 주고받는 한마디 말에 깊이 공감하고 매료되는 것은 바로 자신들의 가슴속에 숨겨진 못다한 말을 작가가 대신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전생의 목석인연이 있어 이승에 따라온 임대옥은 끝내 가보옥과는 맺어지지 못하고 태허환경으로 떠난다. 이승에서는 금옥인연을 가진 가보옥과 설보차가 맺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운명조차 보옥은 거부하고 보차를 남겨둔 채 눈덮인 광야를 지나 대황산으로 돌아가 돌이 되었다.

가씨 가문을 비롯한 사대가문의 흥망성쇠를 묘사한 것은 또 하나의 『홍루몽』 기둥 줄거리다. 주인공 가보옥을 핵심으로 그려내기 때문에 가씨 집안의 영국부의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후반부 금의부에 의한 가산 몰수라는 절체절명의 순간까지 관통한다. 얽히고설킨 사대가문의 친인척 관계는 일찌감치 「호관부」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나머지 세 가문도 사실 가씨의 중요한 외척이다. 할머니 사씨, 어머니 왕씨 그리고 보옥의 아내가 되는 설씨가 그들이다. 보옥이 깊은 정을 주었지만 부부로 맺지 못한 임대옥의 임씨는 사대 가문에 들어 있지 않다.

주인공 가보옥의 원형은 여와보천(女媧補天)의 시절에 하늘을 때우고 남아 대황산 청경봉에 버려진 거대한 돌이다. 스님과 도사의 도움으로 영롱한 옥으로 환생하였고 태어나면서 입에 물고 나온 옥은 통령보옥으로 명명되어 늘 목에 걸고 다녔다. 이름도 그냥 보옥이라고 지어서 누구든 부르도록 했다. 가문 내 항렬에서 형제들의 이름도 구슬 옥자변을 썼으니 사실 보옥으로부터 시작된 발상이다. 귀공자로 태어났으나 천성이 남에 대한 인정과 배려가 넘치고 자매나 시녀들과 늘 어울렸으며 유교적 체면을 따지는 허울 좋은 남성들과는 만나기 싫어했다. 부친 가정(賈政)으로서는 큰아들 가주가 죽고 이제 작은 아들 보옥에게 가문의 장래를 맡겨야 하는 형편이었다. 가문 내에서도 그나마 가정의 인품이 가장 반듯한 편이었다. 보옥이 과거시험을 통해 공명을 따서 가문을 부흥시켜주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어린 아들의 감성과 취향을 세밀히 살피고 맞춤형 교육을 설계하려는 생각은 없었고 고리타분한 방식으로 남들 앞에서 체면만 따질 뿐이었다. 

대관원 낙성 때는 보옥이 제법 총명한 시재를 보여 많은 정자와 건물의 현판 이름을 짓기도 했지만, 할머니의 총애를 받으며 멋대로 자란 보옥은 자연히 부친을 만나는 일이 부담스러웠다. 부친을 찾아온 가우촌 같은 벼슬아치 앞에 나가 응대하는 일도 싫어했다. 그런 와중에 배우 기관(장옥함)의 실종과 시녀 금천아의 자살 사건에 보옥의 책임이 있다고 본 부친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보옥에게 혹독한 곤장으로 매질을 하여 부자 충돌의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부친은 아들을 훈계하겠다는 당초의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할머니의 개입으로 인해 아들 교육을 방치하게 되고 말았다. 가보옥이 매를 맞고 누워 정양할 때 문병 온 설보차와 임대옥은 각각 자신의 성격을 드러냈다. 침상 곁에서 말없이 눈물만 흘리다 돌아간 대옥에게 보옥은 자신의 손수건을 보냈다. 대옥은 깊은 뜻을 짐작하고 손수건에 사랑의 시를 지어 적었다. 두 사람의 깊은 마음은 그렇게 통했지만 훗날 보옥이 보차와 혼례를 올린다는 소식을 알게 된 대옥은 병상에서 그 손수건을 꺼내 화롯불에 태우면서 절명하게 된다. 남녀 주인공의 안타까운 결말이다.

한편 가씨 가문의 몰락과정에서 조짐을 보여주는 것은 대관원 수색 사건이다. 대관원은 원춘 귀비의 성친을 기념하여 조성한 지상낙원과 같은 정원이다. 작가는 천상의 태허환경과 대비가 되는 곳으로 설정했다. 귀비의 뜻에 따라 집안의 누이들이 거처를 하나씩 정해 살게 되었고 유일하게 남자인 보옥도 이홍원에 들어갔다. 대관원에서 누이들과 함께 시를 짓고 놀이를 하고 연회를 열며 꿈같은 세월을 보냈다. 

그러한 낙원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춘화도를 수놓은 주머니가 발견되어 형부인과 왕부인 등 어른들을 아연 긴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고부와 동서지간 등 여성 가족 구성원의 갈등과 하인 어멈들의 미묘한 시기와 허영심까지 합세하여 사건이 터졌다. 야간에 바깥문을 닫아걸고 대관원 각 거처의 시녀들 사물함을 조사하는 미증유의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탐춘은 이 사태를 보고 통탄하면서 “세상의 대갓집이란 일시에 망할 수가 없는 법이니, 반드시 안으로부터 망해 들어가야 완전히 몰락하는 법”이라고 소리쳤다. 머지않아 가문의 몰락이 닥쳐올 것임을 내다본 것이었다. 

대관원 수색의 과정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쫓겨난 보옥의 시녀 청문은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 보옥은 청문의 죽음에 「부용여야뢰」의 제문을 지어 애도했다. 제문은 또한 대옥의 죽음을 미리 애도한 글로도 읽힌다. 또 남몰래 사랑의 정표를 주고받던 영춘의 시녀 사기도 쫓겨 나갔다. 사기와 사랑하는 사이인 반우안은 끝내 맺어지지 못하고 안타깝게 둘 다 죽고 말았다. 낙원에서 쫓겨난 젊은 청춘들의 안타까운 사랑과 죽음은 가슴을 저미게 한다. 무너지기 시작한 가문의 몰락은 더욱 급속하게 진행된다.

마지막 장에서는 전통의 계승이란 측면에서 『홍루몽』의 문화와 배경을 일별하였다. 조설근은 중국 고전문학의 정수를 다양한 방식으로 요소요소에 배치하고 활용하였다. 태허환경의 경환선녀를 묘사할 때는 조식의 「낙신부」를 패러디하였고, 청문을 위한 제문에서는 초사체를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시녀 습인의 명명에 송나라 육유의 시구를 썼고, 철함사와 만두암의 이름에는 범성대의 시구를 이용했다. 원명희곡 『서상기』와 『모란정』은 가장 직접적으로 소설 속에서 활용되었다. 『홍루몽』은 중국문화의 백과사전이라는 말도 있듯이 세시풍속과 음식문화, 복식과 건축문화 등이 풍부하게 담겨있다.

『홍루몽 읽기』는 본격적으로 『홍루몽』 전체를 감상하기 위한 안내서다. 이 작은 책자에 작품 전체의 방대한 내용과 디테일한 묘사를 모두 담을 수는 없지만 독자의 흥미를 이끌어내고 진정한 감상의 길로 나아갈 길잡이로 삼을 수는 있을 것이다.  

 

최용철(崔溶澈) 고려대 명예교수·중문학

고려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한 후에 국립 타이완 대학에서 중국소설을 전공하고 「청대 홍루몽학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고려대 중문과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명예교수로 있다. 중국소설학회, 동방문학비교연구회, 한국홍루몽연구회 등의 회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홍루몽의 전파와 번역』, 『붉은 누각의 꿈』, 『사대기서와 중국문화』, 『열국지 읽기』, 『중국문학, 서사로 다시 읽기』가 있으며, 번역서로 『전등삼종』과 『홍루몽』이 있다. 평생 천착해 온 『홍루몽』의 문학적 감성과 예술적 성취를 밝혀 『홍루몽 읽기』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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