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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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가?
  • 김정희 경기대·일어일문학
  • 승인 2024.02.10 2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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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서사의 위기: 스토리 중독 사회는 어떻게 도래했는가?』 (한병철 지음, 최지수 옮김, 다산초당, 144쪽, 2023.09)


                                                                    

우리는 인류가 탄생한 이래 처음 겪어보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그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는 날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인터넷을 시작으로 소셜미디어, 유튜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등 앞으로 그 수가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 것 같지는 않다. 이러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이야기(스토리)도 넘쳐난다. 예를 들어 인스타그램에 올린 음식 사진은 정보인 동시에 이야기다. 내가 언제,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먹었는지 등 거기에는 이야기가 수반된다. 자신을 찍은 셀카 사진은 내 머리와 화장, 옷의 스타일 등 오늘 나의 모습을 사진 속에 담긴 이야기로 전달한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는 보는 이들에게 ‘좋아요’를 누르고 팔로우 해달라는 무언의 요구를 드러낸다. 또한 ‘좋아요’를 얻기 위해 빠르게 새로운 정보를 갱신해야 하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에 보이는 또 하나 재미있는 현상은 소비되는 이야기(스토리)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스토리텔링의 욕구도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만드는 스토리텔러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많아서 유튜브에는 글 쓰는 법에 관한 영상이 넘쳐난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이야기들이 다음 세대로 전승될 만한, 삶의 지혜와 우리의 내면을 진지하게 드러내는 것인지는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저자  한병철

저자 한병철은 『피로사회』, 『에로스의 종말』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에 대해서 심도있는 고찰을 해 왔다. 이 책에서도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가 서사를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음을 발터 벤야민, 한나 아렌트 등을 인용하며 진지하게 고민한다. 저자는 먼저 오늘날의 수많은 정보와 이야기(스토리)를 또 다른 이야기인 서사와 구분한다. 정보의 가장 큰 특징은 순간성이다. 정보는 최신성이 중요하므로 다른 정보가 바로 그 자리를 대신한다. 지루함을 허용하지 않는 오늘날의 미디어는 우리를 새로운 자극으로 계속 유도하기 때문에 우리의 정신은 항상 긴장 상태에 놓여있다. 이러한 정보와 이야기는 과거와 미래와 연결되지 않고 오로지 현재만을 강조한다. 또한 실제로 빠르게 대체되는 정보와 이야기로 인해 우리는 점점 집중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러한 정보의 홍수로 인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우리의 삶이 소셜미디어나 인스타그램 등으로 데이터화됨으로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무엇을 먹고 입었는지, 무엇을 봤는지 등의 정보를 사진이나 짧은 글로 데이터화하면서 내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 그것을 보고 느낀 나의 생각들을 이야기로 엮어내고 응축하는 능력을 부여하는 내면성을 우리는 점차 잃어가고 있다.

‘호모 나렌스(homo narrans, 이야기하는 인간)’라는 표현이 상징하듯이 인류 역사상 이야기는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해 왔다. 여기에서 말하는 이야기는 정보나 스토리로서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삶과 역사를 이야기하는 서사를 말한다. 서사에 내재해 있는 전승적 지식은 그 순간을 넘어서 앞으로 다가올 것과 연결되는 시간적 진폭을 지닌다는 점에서 정보와 다른 시공간적 구조를 가진다. 이 서사 이야기는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승되면서 다양한 인간의 경험을 담아낸다.

저자는 발터 벤야민의 서사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청자에게 조언을 주는 사람’이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이 조언이 바로 지혜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지혜는 이야기로서의 삶에 내포되어 있고, 진리를 드러낸다. 따라서 삶을 이야기하지 못하면 그 안의 지혜도 소멸해 버린다. 다시 말해서 서사의 위기는 삶의 지혜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는 발터 벤야민에 따르면 근대 이후 세상이 정보의 포화상태에 빠진 것에 원인이 있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저자는 자본주의 사회에 등장한 정보가 서사를 완전히 몰락시켰다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와 맞물려 정보체제가 자리잡는 과정은 매우 스마트한 형식을 취했다. 스마트폰을 들고 우리가 즐기며 논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오히려 우리의 삶은 지배당한다. 소셜미디어가, 유튜브가 계속해서 우리의 의견과 선호를 말하라고, 삶을 게시하라고, 공유하라고 요구한다. 자유가 결국 통제와 제어로 변해버리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 대한 데이터가 많이 모일수록 그 사람에 대한 감시와 제어는 더 잘 이루어지고 사회는 투명해진다.

우리가 우리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할 때 반드시 성찰이 동반된다. 성찰을 위해서는 과거를 되짚어보는 시간의 긴 진폭이 요구된다. 그리고 그러한 성찰을 통해 우리는 미래와 연결된다. 비로소 우리는 희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즉 삶은 이야기이고 이야기에는 새 시작의 힘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서사를 잃어버린, 소비되는 이야기가 난무하는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하면 서사를 되찾을 수 있을까? 저자가 이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어린 소녀 모모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시간을 들여 경청한다. 이 어린 소녀에게 자유롭게 이야기를 풀어낸 타자는 자신이 치유되는 것을 느낀다. 이러한 타자의 이야기를 듣는 ‘경청’ ― 물론 경청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 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말할 수 있는 공동체의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김정희 경기대·일어일문학

경기대학교 인문대학 일어일문전공 교수이다. 일본 도쿄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일본문화의 연속성과 변화』(보고사, 2018), 공저로는 『처음 읽는 겐지 이야기』(가초샤, 2020) 등이 있다. 역서로 『설탕으로 보는 세계사』(2023), 『메이지 유신』(2020), 『동시대 일본 소설을 만나러 가다』(2021) 등이 있으며 최근 논문으로는 「1960년대 사드 재판과 신좌익(New Reft)」(2022)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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