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독일인의 심리’를 해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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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독일인의 심리’를 해부하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4.02.10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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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늑대의 시간: 제2차 세계대전 패망 후 10년, 망각의 독일인과 부도덕의 나날들 | 하랄트 얘너 지음 | 박종대 옮김 | 위즈덤하우스 | 540쪽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망한 1945년 5월 8일, 이른바 '제로시간'부터 1955년까지 10년 동안 독일이 거쳐야 했던 재건의 노력과 사회적 분열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이는 책이다. 독일인들은 어떻게 ‘나치’를 버리고 새로운 ‘독일’을 만들었을까? 독일의 경제 기적은 모두 철저한 자기반성과 근면성 덕분일까? 독일인의 과거사 청산은 과연 ‘모범적’이었을까? 패망 이후 독일은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 우리가 '독일'이라 부르는 나라를 만들었는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독일을, 그 역사의 장면을 되살린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똘똘 뭉쳐 있었던 독일인들은 전쟁이 끝나자 완벽하게 분열되었다. 옛 질서는 사라졌지만, 새 질서는 아직 모호한 이때, ‘인간이 다른 모두에게 늑대’라는 뜻으로 ‘늑대의 시간’이란 이름이 붙었다. 전쟁 이후, 절반 이상의 독일인은 과거 속하던 자리에 남아 있지 않았다. 폭격에 사망하거나 피난, 망명, 강제 이주를 당한 사람들에 1000만 명의 강제 징용자까지 합하면 그 규모는 총 4000만 명에 달했다. 자신이 살던 자리에서 추방당하고 끌려가고, 풀려나며 새로운 자리를 찾아가던 사람들이 어떻게 다시 시민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을까? 완전히 새로운 구성원으로, 무질서의 상태에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했던 시기. 저자는 이 시기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가장 중대한 변화는 일상에서 시작되었다. 먹을 것을 조달하는 일에서, 약탈에서, 교환에서, 구매에서 일어났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전쟁이 끝나자 성적 모험의 물결이 봇물처럼 터져나왔고, 다른 한편으로 그렇게 갈망하던 남자들의 귀향 뒤에 극심한 실망도 뒤따랐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고 싶어 했으며, 이혼 수치는 비약적으로 치솟았다.

가족은 해체되고, 삶의 질서는 산산조각이 났으며, 인간 관계는 상실되어 갔지만, 사람들은 새롭게 다시 모여 어울렸고, 젊고 용기 있는 사람들은 잿더미의 혼란 위에서 매일마다 자신의 행복을 찾는 모험을 즐겼다. 전후 독일인의 의식을 볼 때 홀로코스트가 미친 영향은 놀라울 정도로 미미했다. 자신들의 ‘수상쩍은 행복’을 위해서 홀로코스트를 회피했고, 자신들을 희생자로 그렸다. 그러면서도 전후 시대는 지금까지 여겨지던 것보다 더 논쟁적이었고, 삶은 더 개방적이었으며, 지식인은 더 비판적이었다. 의견의 스펙트럼은 넓었고 예술은 더 혁신적이었다. 이런 의식적 억압과 왜곡 속에서 반파시스트적이고 신뢰를 일깨우는 오늘의 독일이 탄생했던 것이다.

이 책은 전쟁 직후 10년의 기간 동안 독일이 거쳐야 했던 재건 사업과 그 속에서 분열된 독일인의 멘털리티를 다각도로 살핌으로써, 잊고 있던 1945년과 1955년 사이의 독일을 새롭게 조명한다. 공식문서나 출간된 책뿐 아니라 일기, 수기, 문학작품, 신문, 잡지, 영상자료, 심지어 유행가 가사 등 방대한 자료와 세심한 해석을 통해 독일이 어떻게 그 시기를 넘어 오늘의 독일을 만들었는지 새로운 시선을 제공한다. 특히 토마스 만, 한나 아렌트 같은 유명인뿐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일반인들의 개인적 기록을 통해 그 시대의 분위기까지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포착했다.

1945년 5월 8일 독일이 공식적으로 패망한 이른바 ‘제로 시간’ 직후, 독일인들이 맞닥뜨린 건 약 5억 세제곱미터의 폐허 더미였다. 전쟁으로 인한 6000만 명의 사망자, 붉은 군대의 진입과 함께 시작된 강간의 물결, 서방 연합군의 독일 점령, 1946년과 1947년 ‘기아의 겨울’이라 불리는 지옥을 경험한 독일인은 마치 홀로코스트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자신들을 ‘희생자’로 여기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자신들은 그저 사람을 마비시키는 ‘독’과 같은 국가사회주의에, 사람을 순종적인 도구로 길들이는 ‘마약’과 같은 나치즘에, 히틀러라는 ‘악’에 희생되었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다.

당시 언론과 책, 논문에는 독일인이 겪은 고통을 다른 민족의 어떤 고통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최상급으로 표현한 글이 넘쳐난다. 그 시기를 어둡게 그릴수록 자신들의 잘못과 책임과 죄책감이 더 가벼워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전후 독일인조차 옛 시절을 회고할 때, 스스로를 그동안 겪은 일을 일단 말없이 견뎌내야 했던 ‘위대한 침묵자’로 그리곤 한다. 그러나 실제로 침묵은 홀로코스트에 한해서만 선택적으로 이루어졌다. 오히려 죽음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에 대다수 사람들은 전례 없이 뜨거운 ‘삶의 기쁨’을 만끽했다. 

저자는 패망 직후 수십 년간 수백만 명의 학살에 대한 폭넓은 사회적 논쟁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과거 청산은 1963년부터 1968년까지 아우슈비츠 재판이 진행되면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이 또한 철저한 자기반성의 산물이라기보다는 “나치 세대에 불복종 운동을 펼칩시다”라는 1967년 길거리에 붙은 전단처럼 68세대의 분노에서 촉발된 부모 세대에 대한 역사적 승리였다. 즉 우리가 모범 사례로 드는 독일의 과거사 청산은 1945년 이후 독일인들이 스스로에게 가했던 억압의 후유증이었던 것이다.

전쟁은 독일의 수많은 사회적 개념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도덕 관념’이다. 오늘날 우리가 독일인의 특징으로 떠올리곤 하는 ‘정직성’은 전후 독일인에겐 해당되지 않는 얘기였다. 패전 후 연합군이 점령하기 직전 ‘권력의 공백기’에 독일인들은 ‘약탈’에 몰두했다. 이 시기의 사람들은 ‘늑대의 시간’, 즉 ‘자연 상태의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늑대인’ 시간이 찾아왔다고 말했다. 법의식과 도덕 감정의 완전한 붕괴가 임박했다는 뜻이었다.

패전 후 세상 사람들의 눈에 ‘독일인들’은 전쟁 범죄와 제노사이드를 통해 가해자로 낙인찍힌 지 오래였는데도 독일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나라가 질서와 품격을 갖췄다고 생각했다. 국외에서는 전후의 이런 시스템 붕괴를 독일을 재사회화할 기회로 바라보았지만, 독일인들은 이제야 범죄의 구렁텅이에 빠졌다고 우려했다는 점에서 당시에 집단적 인식의 왜곡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유추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규명하고자 한 부분은 명확하다. ‘다수 독일인이 개인적 책임을 거부했음에도 어떻게 나치 정권을 가능케 한 심리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나?’ 여기서 이전의 과대망상만큼이나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미몽에서 화들짝 깨어난 듯한 급격한 ‘현실 자각’이었다. 게다가 연합국에 딸려 들어온 느긋한 생활 방식의 매력, 암시장을 통한 쓰디쓴 사회화 과정, 실향민에 대한 사회적 통합 노력, 추상미술을 둘러싼 떠들썩한 논쟁, 새로운 디자인에 대한 즐거움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모든 것이 심리 상태의 변화를 촉진했고, 그 토대 위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정치적 담론은 서서히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독일’과 ‘독일인’이라 부르는 그들은 바로 이렇게 탄생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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