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만든 일상문화와 세계사의 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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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가 만든 일상문화와 세계사의 변동!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4.02.10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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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의 시대: 커피는 어떻게 일상문화를 넘어 세계사가 되었는가 | 장수한 지음 | 제르미날 | 612쪽

 

에티오피아 카파의 숲속에서 자라던 커피가 어떻게 세계인이 가장 좋아하는 음료가 되고 인류의 일상문화를 넘어 세계사의 변화를 이끌어냈는지 촘촘하게 직조한 커피의 세계사이다.

이 책은 커피를 둘러싸고 있는 로맨티시즘의 아우라 대신 객관적 역사 사실을 드러내는 데 우선 힘을 쏟는다. 예멘으로 전해진 커피가 수피교도의 기도와 명상을 도운 한편 그들의 신앙관습이 커피의 확산에 이바지했다는 사실, ‘뜨거운 음료’를 조심스럽게 마셔야 하는 음용관습이 자기통제의 확대라는 근대 유럽 문명화과정과 맞물리면서 국민음료에서 일상음료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 커피재배의 세계화가 시작된 배경, 부르주아들이 카페를 떠난 이유와 교양계층을 비롯한 대중이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등장한 그랑 카페, 커피선별노동이 여성 노동자들에게 연대의 기회를 주기도 하고 때로는 가부장적 지배의 족쇄로 작용하기도 한 상황, 20세기 들어 커피가 ‘신분상징’의 지위를 잃어버린 배경, 1차 세계대전 이후 찾아온 커피산업의 위기와 혁신, 산업적 로스팅 기업이 시장 권력을 장악하게 된 사정, 숲을 먹어 들어가는 커피재배와 지구 환경 등등 커피를 둘러싸고 일어난 다양한 변화들을 구체적이고 리얼하게 서술한다.

‘칼디와 춤추는 염소들’은 20세기에야 완성된 창작일 따름이고 ‘클리외 전설’은 그전에 이미 생도밍그에서 커피가 재배되고 있었다는 사실과 충돌하고 커피가 ‘부르주아의 생산력’이라는 주장 역시 부르주아계층이 ‘신분상징’을 잃어버린 카페를 떠나면서 이미 설자리를 잃어버렸다. 커피에 끼친 나폴레옹의 영향은 확실히 과도하게 부풀려진 것이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맛있군!”이라는 맥스웰하우스 커피의 카피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한 말이 아니다. 그럼에도 ‘전설’에 마음을 빼앗긴다면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이나 커피 관련 사업을 하고 싶은 사람이 정작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을 놓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전설’을 제외하지는 않았지만 객관적 사실을 토대로 했다.

지금까지 커피 이야기는 인문학적 측면이 과도하게 높은 비중을 차지해 왔고 심지어 물신주의적 접근이 한때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러나 커피는 처음부터 상품으로 출발했고 상인들의 상업 활동이 그 확산에 결정적으로 이바지했으며 현재 소수의 대형 로스팅 기업이 세계 시장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또한 커피는 대통령을 당선시키거나 물러나게 하지는 않았지만 현실 정치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미쳤으며 거꾸로 정치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기도 했다. 냉전 상황에서 국제커피협정의 체결을 주도했던 미국이 냉전이 끝났다고 판단하자 이 협정에서 탈퇴하면서 협정의 결렬로 이어진 것은 한 사례이다. 그러므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측면을 균형 있게 다루지 않는 한 객관적 역사란 없다고 할 수 있다.

에티오피아 카파의 자연생태계 안에서 새가 심고 숲이 키운 커피는 카페인을 생존전략으로 삼아 해충을 물리치는 한편 벌과 나비를 끌어들임으로써 살아남았다. 뿐만 아니라 에티오피아에 성립한 이슬람 토후국이 없었다면 커피는 예멘으로 전달되지 못했을 수 있고 수피교도들이 오로지 명상과 기도에만 열중하고 일상생활을 도외시하는 수도종단이었다면 커피는 아마 실제보다 더디게 확산되었을 것이다. 높은 습도의 기후 때문에 페르시아 서쪽으로는 전파되지 못한 차와 달리 열매를 볶아 마셨기에 커피는 오스만제국을 하나의 음료문화로 통합하였다. 이처럼 커피는 처음부터 커피나무와 자연 그리고 인간이 공동으로 발전시킨 ‘융합문화’였다.

생산국의 커피플랜테이션과 소비국의 카페문화 역시 원두의 공급과 소비로 연결된 하나의 그물망에 속해 있다. 유럽에서 형성된 ‘벨에포크’의 카페문화는 의문의 여지없이 훌륭한 유산이지만 커피플랜테이션은 원주민을 강제노동에 내몰았고 사라져 가던 노예제를 되살렸으며 불평등한 세계체제를 형성하는 데 한몫했다. 커피는 여러 생산국에서 민족정체성의 확고한 일부이지만 속히 지나가기를 바라는 역사 단계에 지나지 않은 나라도 있다.

커피와 관련한 모든 부문은 서로 ‘관계’를 맺고 영향을 주고받는 전체의 일부이자 동시에 세계사의 일부이다. 이런 이해와 설명을 통해서만 우리가 맞고 있는 새로운 상황에 대해 주체적이고 창의적인 대응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커피재배의 세계화는 종속이론이나 세계체제론이 적용될 수 있는 부문이지만 동시에 그 지역 원주민의 대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화인류학적 시각이 유용하다. 커피가 유럽에 수용되는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레비­스트로스의 『신화학』, 엘리아스의 『문명화과정』, 부르디외의 『구별짓기』 등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이는 커피의 역사를 더 분명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서 유용성을 갖는다. 물론 이 경우에도 이들 이론의 정리를 시도하거나 정합 또는 부정합을 따지기보다 이해와 설명의 도구로 사용했다.

생두의 습식정제가 환경을 더 많이 오염시키는데도 기후 조건과 섬세한 신맛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향미 취향이 개선의 여지를 막고 있고 생산자들의 생산성을 높이려는 전략이 원인이 되어 숲에서 자라던 커피가 역설적으로 지구에 남은 숲을 먹어 들어가고 있다. 시장권력을 장악한 소수의 대형 로스팅 기업은 소규모 커피농가의 소득과 건강에 관심이 없다.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들마저 이런 상황에 무관심하다면 커피의 시대는 지속될 수 없을 것이다. 커피의 시대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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