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최고의 단편소설과 미문을 남긴 상허 이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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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최고의 단편소설과 미문을 남긴 상허 이태준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4.02.10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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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허 이태준 전집 1~4 세트 | 이태준 지음 | 열화당 | 2,288쪽

 

당대 최고의 단편소설과 미문을 남긴 상허 이태준은 1925년 등단해 20여 년 동안 활발히 작업했고, 1946년 8월경 월북해 활동하다가 1950년대 중반 숙청당한 뒤 행적이 묘연해졌다. 남한에서도 1957년 월북 작가 작품의 교과서 수록 및 출판 판매 금지 조치가 내려졌으니, 1988년 해금되기 전까지 30여 년 동안 남과 북 양쪽 모두에게 외면당한 셈이다. 

상허는 단편소설뿐만 아니라 중·장편소설, 희곡, 시, 아동문학, 수필, 문장론, 평론, 번역 등 다양한 방면의 글을 남겼다. 상허는 문학의 순수성을 추구하는 동시에 인간 사회를 반영하는 데 따르는 통속성도 긍정했으며, 골동취미와 우리말에 대한 감식안을 지닌 예술가적 면모와, 자본주의 물질문명을 향한 비판, 계몽성 강한 메시지를 표출하는 사회참여자로서의 자세가 공존한다. 이는 장르에 따라 달리 구현되기도 하고 시기에 따라 변화하기도 한다. 

이 전집은 해금 직후 나온 전집들이나 주요 작품만 모은 선집들의 미흡한 점을 최대한 보완하고, 월북 전에 발표한 상허의 모든 작품을 망라한다. 그 결과 단편소설 한 편을 비롯해, 중편과 장편에서 누락되었던 연재분, 일문(日文)으로 쓴 글 두 편, 번역과 명작 개요 각 한 편, 아동문학 십여 편, 다수의 산문과 평론이 이 전집에 처음 소개된다. 

이렇게 기획한 ‘상허 이태준 전집’은 전14권으로 구성된다. 제1권은 상허의 단편소설을 모은 『달밤』, 제2권은 중편소설, 희곡, 시, 아동문학 작품을 엮은 『해방 전후』이다. 제3권부터 제10권까지는 장편소설들로서 『구원의 여상 · 화관』 『제이의 운명』 『불멸의 함성』 『성모』 『황진이·왕자 호동』 『딸 삼형제 · 신혼일기』 『청춘무성 · 불사조』 『사상의 월야 · 별은 창마다』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제11권은 상허의 모든 수필과 기행문을 모은 산문집 『무서록』, 제12권은 문장론을 담은 『문장강화』, 제13권은 『평론 · 설문 · 좌담 · 번역』, 제14권은 상허의 어휘들을 예문과 함께 정리하고 상허 관련 자료를 취합한 『상허 어휘 풀이집』으로 계획했다.

상허는 최초 발표본 이후 단행본 수록본, 선집 수록본 등 재발표본에 따라 개작을 많이 했는데, 1946년 8월경 월북 이전 마지막 판본이 작가의 최종 의도가 반영되었다고 판단하고 이를 저본으로 삼았다. 또한, 일제의 검열이 극심해진 후기에 개고된 작품들은 검열을 피하기 위한 수정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발견되었고, 이 경우는 최초본에 따라 복원한 뒤 편자주를 달았다.

상허의 문학 중 가장 빼어난 작품들은 단연 단편소설이다. 그 스스로 “내 생활에 다소 가치가 있었다면 그 가치의 화폐가 곧 이 단편들이라 해 마땅할 것이다”라고 했을 만큼 그의 가장 순수한 글쓰기의 결실들이다. 대부분은 근대화와 식민지 현실에서 자본과 권력으로 인해 방황하는 인간상을 그리는 동시에, 그들의 순박한 성품과 연민을 담아낸다. 「장마」 「패강랭」 「무연」 등 후기로 갈수록 무기력한 지식인의 자의식도 드러난다. 서정성과 예술성이 돋보이는 것도 장편소설과 구별되는 특징으로, “작가들의 직업이 아니라 작가들의 예술을 보려면 아직은 단편을 떠나 구할 데가 없다”고 강조했듯, 그에게 단편은 연재물이 지닌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작가 고유의 미의식을 온전히 발현할 수 있는 형식이었다. 상허는 특히 인물, 행동, 배경의 묘사에서 탁월한 경지를 보여주는데, 이는 평소 한 인간이 얽혀 있는 모든 생활을 세밀하게 관찰해야만 가능한 일이었고, 여기에 작가의 인생관과 세계관이 더해져 친숙하면서도 독창적인 인물상들이 탄생될 수 있었다.

전집을 여는 첫번째 권으로 그의 단편과 장편(掌篇, 콩트) 모두를 모은 『달밤』을 배정하고, 1925년 『시대일보』에 발표한 등단작 「오몽녀」(단행본 개작시 ‘오몽냬’로 표기)와 대표작인 「달밤」을 비롯해, 최초 공개되는 「동심예찬」까지 쉰다섯 편의 단편을 수록했다. 

전집 두번째 권 『해방 전후』에는 중편소설 다섯 편, 희곡 두 편, 시 아홉 편, 아동문학 서른다섯 편, 총 쉰한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단편이나 장편에 비해 연구가 소홀한 장르들로, 특히 시와 아동문학은 최초로 한자리에서 소개된다. 또한 중편 「법은 그렇지만」에서 누락된 채 전해지던 연재 회차를 처음 발굴해 실었다.

전집의 세번째 권 『구원의 여상·화관』은 초기와 중기 장편소설 각 한 편씩을 모은 것이다. 1930년대에는 잡지와 신문의 발간이 붐을 이루었고, 그만큼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으로 연재물이 많이 생겨났다. 상허 역시 이 시기 가장 활발한 글쓰기를 하며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단편에 비해 매체와 독자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장편 연재물의 한계를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이 장르만이 가진 서사 스케일과 대중성에 힘입어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완성해냈다. 흔히 저급한 것으로 해석되는 대중문학의 통속성에 대해서도 그는 재인식을 요구했다. “이 통속성이란 곧 사회성이다. 결코 무시될 수 없는, 개인과 개인 간의 각 각도로의 유기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통속성 없이 인류는 아무런 사회적 행동도 결성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상허의 장편은 단편에 비해 가치 평가가 그리 높지 않은데, 이는 1930년대 상업화한 신문 연재소설이라는 한계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는 독자의 관심을 끄는 흥행 작가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면서도 나름대로 시대의 현안들을 진지하게 녹여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러한 점에서 상허의 장편은 일반적인 연애소설, 통속소설로만 치부해서는 안 되며, 무엇보다 인물들의 생동감있는 대사와 상황 묘사에서 상허 특유의 문장력이 발휘되고 있어 이를 발견하는 의미도 있다.

전집의 네번째 권 『제이의 운명』은 상허의 첫 일간지 장편 연재소설로, 『조선중앙일보』(1933. 8. 25-1934. 3. 23)에 연재된 후 1937년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남녀의 중첩된 삼각관계 속에서 연애, 돈, 계급, 교육, 농촌운동 같은 당대의 사회 문제들이 다양하게 다루어지고 있어, 대중성과 사회성을 모두 갖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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