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한탄강 유역 구석기 연구의 성과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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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한탄강 유역 구석기 연구의 성과와 전망
  • 유용욱 충남대·고고학
  • 승인 2024.02.10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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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임진-한탄강 유역 구석기 연구의 성과와 전망(Progress and Prospect of the Palaeolithic Research in the Imjin-Hantan River Area, Korea)』 (유용욱 편저, 경기도 연천군 발행, 진인진 인쇄, 318쪽, 2023.12)

 

근대에 들어 국가가 하나의 생존집단이자 소통집단으로 자리잡으면서 자신의 국가가 가진 위상 혹은 가치는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어 왔다. 그리고 지금도 이런 가치는 국가 간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국민들의 자발적 노력을 이끌어내고 있다. 국가의 가치는 대외적 역량을 의미하는 국력, 역사적·문화적 위상을 반영하는 국위, 그리고 국가 및 국민이 창출하는 이미지인 국격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 및 측정될 수 있다. 다만 특정 국가의 가치는 결코 객관적이고 과학적이지도 않으며, 자국과 타국이 느끼는 수준도 온도 차가 심각하다. 

객관적 지표가 나름 존재하는 국력은 1인당 GDP, 올림픽 메달 개수, 세계유산 등재 회수 등과 같은 수치화 된 정보로 측정 및 비교 가능하다. 국가의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반영하는 국위는 과연 얼마나 문명화, 선진화되어 있는가의 문제와 결부된다. 임진-한탄강 유역에서 최초로 주먹도끼가 발견된 1978년은 대한민국이 국력신장을 넘어 국위선양을 도모하던 시기였다.

자발적 근대화를 이루지도 못하고 제국주의의 식민지를 겪었으며, 이념 갈등의 혼란기에서 발생한 동족상잔의 내전까지 한꺼번에 겪은 당시의 대한민국은 내적 자괴심과 외적 콤플렉스의 부담을 안고 국가주도의 고도성장 정책을 감당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일찍이 경제와 외교 부문에서 철천지 원수이자 맞수였던 북측의 동족 집단을 앞서 갈 수 있었고, 국민 정서도 점차 자신감을 회복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이때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에서 발견된 주먹도끼, 즉 당시 대한민국이 동경하던 서구의 원시시대 구석기 유물과 동일한 오브제는 ‘어쩌면 우리의 조상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훌륭하고 뛰어난 선사시대의 문명을 보유했던 것 같다’는 과분한 황홀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더군다나 일찍이 구석기시대의 동아시아 고인류는 주먹도끼같이 발달된 석기를 제작할 수 없을 만큼 ‘문화적으로 지체(culturally retarded)’ 되었다고 주장하던 미국 하버드 대학의 석학인 모비우스(H. L. Movius)의 일갈을 궤변으로 만드는 통쾌한 발견이기도 하였다. 당연히 기존의 자괴심은 자부심으로 바뀌고 콤플렉스는 프라이드로 치환되면서 새로운 국민 정서의 형성에 기여하였다. 그리고 과거 한국의 조상이 생존 목적으로 만들었던 주먹도끼는 국위선양을 상징하는 매체로 가치부여 되었다.
 
경기도 연천군에서 전곡리 발견 45주년 기념으로 발간한 『임진-한탄강 유역 구석기 연구의 성과와 전망』은 바로 이렇게 과도한 가치가 부여된 주먹도끼 및 관련 구석기 유물들을 객관화·중립화시키고 신화에 가까운 환상을 제거하는 공동 연구서이다. 일반인들은 선뜻 관심을 안 가지는 깨진 돌조각에 불과한 구석기 유물에 국위선양 및 가치부여와 같은 추상적 개념을 결부시키는 것은 필요 이상으로 과민한 맥락화 작업일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속한 국가의 역사가 시간적으로 더욱 오래되었고, 그 역사의 내용물들이 더 세련되고 정교하며, 무엇보다도 그러한 내용물들이 자국의 영토에서 일찍이 독보적으로 발생하였다면 어느 누구든지 만족하고 환호하며 추종할 것이다. 

실상은 그렇지 않지만 마치 그런 것으로 착각하고, 그 착각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집단최면으로 발달할 수 있는 위험한 동기부여는 바로 간절히 바라는 소망과 엄연히 객관적인 현실을 혼동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러한 혼동은 애국심 혹은 민족주의라는 가슴 뜨거운 가치관으로 포장돼서 함부로 역사를 왜곡하고 자민족의 진취성과 창의성을 설파하고, 자국 문화의 고유함과 그 영향력을 터무니없이 확대할 정도로 과감해진다. 지난 세기 최말년에 밝혀진 일본의 구석기 유적 날조 사건은 물론이고, 현재도 국가 정책 사업으로 주도되는 중국의 동북공정은 모두 이러한 과감함이 밀어붙이기만 하면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는 착각에서 비롯한 것이다.

『임진-한탄강 유역 구석기 연구의 성과와 전망』은 바로 이렇게 과감하게 ‘밀어붙이기만 하던’ 기존의 연구 풍토를 엄정하게 비판하고, 현재까지 누적된 연구 성과를 새롭게 정립하고 있다. 이 책은 2022년에 한국고고학회 개별 세션으로 진행된 전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인 사촌(沙村) 이선복 선생의 정년을 기념하기 위한 헌정 학술대회 결과물이다. 또한 최초로 전곡리를 발견한 고 삼불(三佛) 김원용 선생의 추모 30주년 기념 논총이기도 하다. 전곡리를 발견하고 평생을 임진-한탄강 유역 주먹도끼의 과장된 의미와 과학을 표방한 부조리를 걷어 내려고 노력한 두 선학의 학문적 유지를 계승하려는 후학들의 다짐이 본서 발간의 취지이기도 하다. 

본서는 크게 3부로 구성되었다. ‘제1부 임진-한탄강 유역 구석기 연구의 회고’의 첫 번째 글에는 전곡리 유적을 최초로 발견한 미군 사병 그렉 보웬(Greg Bowen)과 동행한 이선복 선생의 후일담이 세세하게 적혀있다. 여기서는 임진-한탄강 유역의 구석기 연구를 진행하며 선생이 스스로 겪었던 여러 가지 고충이 가감 없이 표출되고 있다. 그리고 국위선양을 표방하며 과도하게 의미가 부여되던 임진-한탄강 유역 주먹도끼와 관련된 다양한 실증자료를 우공이산의 심정으로 담담하게 누적해 온 과정을 술회하고 있다. 

그다음 글인 ‘임진-한탄강 유역 주먹도끼 연구사’에서 유용욱은 과학적 분석을 표방한 주관적 확대 해석, 특히 전곡리 주먹도끼의 연대를 실제보다 더욱 올려 보려는 ‘중기갱신세설(약 30만 년 전)’ 주창자들의 고질적 오류를 세세하게 거론하며 크게 6가지 분야를 비판한다. 여기서 그는 오래된 연대를 주장함으로써 발생하는 대중적 만족과 그 기대에만 의존하는 중기갱신세설의 용도폐기를 주장한다. 

세 번째 글, ‘초창기 전곡리 조사 결과의 재검토’에서는 유용욱과 충남대 고고학과 구석기프로젝트팀이 충남대박물관에 소장된 전곡리 지표 수습품을 분석하면서 초창기 전곡리 조사 결과를 재검토한다. 그 결과, 기존 견해와 달리 전곡리 일대의 기반암인 현무암반 바로 위에서 발견된 주먹도끼는 존재하지 않고 단지 연대를 올려 보기 위한 중기갱신세설 주창자들의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확대해석에 불과하다는 것을 밝혀낼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도 지속되고 있는 두 가지 오류인 1) 주먹도끼도 아닌 석기를 주먹도끼로 간주하는 착오, 2) 퇴적 맥락의 이해가 결여된 ‘문화층’의 작위적 지정과 같은 폐단이 다시 발생하지 않기를 촉구하였다.

‘제2부 임진-한탄강 유역 구석기 연구의 현황’에서는 현재 활발하게 활동 중인 이 지역 중견 구석기 연구자들의 성과가 수록되었다. 한양대학교 박물관의 이정철 교수는 ‘임진강 본류역 구석기 유적의 조사 성과와 과제’에서 이 지역 구석기 유적들이 거의 대부분 후기갱신세 후반(약 7~6만 년 전 이후)에 해당하는 것을 지적하였다. (재)역사문화재연구원의 김기룡 박사는 ‘연천군 전곡리 일대 구석기 유적들의 형성 과정 고찰’에서 이 지역 구석기 유적들이 만들어지는 자연적 과정을 몇 가지로 유형화시켜 퇴적상을 비교하였다. 

그다음 글인 ‘임진-한탄강 유역 구석기 유물군의 형식분류안’에서 유용욱은 그동안 주먹도끼에만 집중되던 이 지역 구석기 유물군의 형식분류안을 정리해서 제시하였다. 그동안 한국에서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수용되던 프랑스 구석기고고학계 용어의 기계적 번역과 필요 이상의 순수 한글화 작업을 비판하면서 그 대안으로서 잘못된 어법을 수정하고 새로운 형식 용어 및 분류 체계를 수립할 수 있었다. 

제2부의 후반부 두 글은 임진-한탄강 유역 주먹도끼의 형태적 속성을 분석한 공통점을 가진다. 서울대학교 박물관의 이정은 학예사는 ‘임진-한탄강 유역 주먹도끼의 박리전략’에서 이 지역 주먹도끼의 3차원 스캔 자료 분석을 통하여 크게 다섯 가지로 주먹도끼 형태를 범주화하였고, 각 범주가 가지는 제작 방식의 고유함을 밝혀낼 수 있었다. 

유용욱은 ‘임진-한탄강 유역 주먹도끼의 대칭과 그 의미’에서 서구의 아슐리안(Acheulian)과 유사한 시각적 속성이 강조되던 이 지역 주먹도끼가 사실 평면 대칭의 구현에만 치중한 것을 밝혀냈다. 그리고 아슐리안 주먹도끼보다 시기도 늦고 제작 방식이나 형태도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수준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을 지적하였다. 따라서 이 지역 주먹도끼는 기존에 알려져 왔던 아슐리안 주먹도끼와는 무관한 ‘비아슐리안(Non-Acheulian)’ 주먹도끼로 부를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제3부 임진-한탄강 유역 구석기 연구의 미래’는 주먹도끼 위주의 기존 연구와는 달리 최근 다수 발견된 후기구석기 공작, 즉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정착한 이후의 기술상과 생활상을 반영하는 자료를 다루었다. 경기문화재단의 김형준 학예사는 현재까지 임진-한탄강 유역에서 발견된 후기구석기, 즉 약 4만 년 전 이후의 구석기 유물군을 나열하면서, 차후의 연구를 도모하였다. 

연세대학교 박사과정의 권수진은 포천 늘거리 유적을 사례연구로 삼아서 이 지역의 구석기 제작용 석재가 후기구석기 단계에 들어서 응회암과 흑요석 같은 정질석재로 변환되는 과정을 제시하였다. 현재보다는 차후가 더 기대되는 두 신진 학자들의 논고를 통하여 바야흐로 임진-한탄강 유역의 구석기는 보다 더 선진적이고 다각화된 연구가 가능하다는 전망을 할 수 있다. 

『임진-한탄강 유역 구석기 연구의 성과와 전망』에 등장하는 열 편의 글은 앞서 말한 대한민국의 국가 가치가 국력과 국위만을 앞세우던 시대정신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반영한다. 이 지역의 구석기 연구는 실력 양성과 경쟁력 확보에만 몰두하던 국력의 시대를 거쳐, 엄연한 사실조차도 왜곡이나 과장을 통해 국가의 상고사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려던 국위선양의 홍역을 치러왔다. 이런 그릇된 애국심은 다른 나라보다 오래된 역사적 증거를 확보하려는 무리한 노력과, 서양의 역사적 산물과 동일한 대응물이 우리 역사에도 존재한다고 애써 믿으려는 사대적 열등감 및 상대방 필적 욕구와 연관되어 있다. 

이제 이러한 조악함과 유치함을 스스로 벗어 던지고 자국 역사를 더욱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오래되거나 화려한 과거사를 애써 부각시키려 하지 않는 겸허함이 결국은 세련됨으로 한걸음 다가선다는 자연스러움을 깨우칠 때가 온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깨우침은 궁극적으로 국력과 국위가 아닌 국격이 중시되는 시대정신으로의 전환을 이끌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본서에서 비판적으로 제시한 지난 45년간의 이 지역 구석기 연구는, 유사과학적 수준의 한국 구석기고고학이 바야흐로 정상과학의 문턱에 도달하기까지의 좌충우돌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학술적으로 중요하고 시대적으로 필요한 성과물을 경기도 연천군이라는 지방자치단체가 적극 출판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본서는 경기도 연천군 문화관광과를 통하여 일반 독자들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유용욱 충남대·고고학

충남대학교 인문대학 고고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에서 석사, 캐나다 맥길대학교(McGill University)에서 인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및 동아시아의 구석기고고학, 고인류학 및 진화생태학이 주요 전공이며 고고학이론, 북한고고학 등을 연구해 왔다. 최근에는 응용고고학으로서 도시재생, 유네스코 세계유산, 관광고고학 분야 등을 새롭게 시도한다. 주요 저서로 《Beyond the Movius Line》, 《Archaeology of the Communist Era》(공저), 《유산, 문화, 그리고 세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탐방 1.》, 《임진-한탄강 유역 구석기 연구》, 번역서로는 《타제석기의 제작과 이해》, 《고고학이론 껍질 깨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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