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의대 정원 2천 명 늘린다…의사 81.7%, 의대 증원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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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의대 정원 2천 명 늘린다…의사 81.7%, 의대 증원 반대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4.02.06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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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정원보다 65.4% 늘어…예상 뛰어넘는 '파격 증원'
- 의사 10명 중 8명은 의대 증원 반대…"의사 수 이미 충분“

 

정부가 2025학년도 대학입시부터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2000명 늘리기로 했다.

의대 정원 확대가 제주대 의대가 신설됐던 1998년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의대 증원은 27년 만에 이뤄지는 셈이다.

당시 의대 정원은 3천507명이었으나, 2000년 의약분업 때 의사들을 달래려고 감축에 합의해 2006년 3천58명이 됐다. 이후 쭉 동결돼 왔다.

보건복지부는 6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2025학년도 입시 의대 입학정원 증원 규모를 발표했다. 증원 규모는 현행 정원의 65.4%에 달한다.

복지부는 "비수도권 의과대학을 중심으로 (증원분을) 집중 배정한다"며 "추후 의사인력 수급 현황을 주기적으로 검토·조정해 합리적으로 수급 관리를 하겠다"고 밝혔다.

증원 규모는 복지부가 작년 11월 대학들을 상대로 진행한 의대 증원 수요 조사 결과(2천151∼2천847명)보다는 다소 적지만, 당초 증원 폭이 1천명대 초반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던 것을 고려하면 파격적으로 큰 수준이다.

복지부는 지역·필수의료 위기의 중요 원인으로 의사 수 부족을 지목하고 의대 증원을 추진해왔다.

2021년 우리나라 임상의사 수(한의사 포함)는 인구 1천 명당 2.6명으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전체 회원국 중 멕시코(2.5명) 다음으로 적다.

OECD 평균은 3.7명이고, 오스트리아(5.4명), 노르웨이(5.2명), 독일(4.5명) 등은 우리나라의 2배 안팎 수준이다.

2020년 기준 국내 의대 졸업자는 인구 10만명당 7.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3.6명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의대 정원을 파격적으로 늘리는 것은 의사 수 부족이 지역·필수의료의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지방 병원들은 의사 구인난에 허덕이고 있고, 환자들은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원정 진료'를 다니고 있다. 지방은 물론이고 서울 수도권에서도 응급실 의료인력 부족으로 응급환자를 받지 않아 환자들이 구급차를 타고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위험한 상황에 부닥치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이른바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로 불리는 필수의료 분야를 지원하는 의사는 갈수록 줄고 있고, '피안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쏠림이 심해지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 1일 민생토론회에서 10년 뒤인 2035년도까지 1만5천 명의 의사를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이 2035년 의사 수가 1만 명가량 부족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여기에 취약지역의 부족한 의사 수 5천 명을 더해 1만5천 명의 의사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 발표를 하고 있다. (JTBC 뉴스 캡처)

복지부는 지난 2022년 하반기 의대 증원 추진 방침을 밝힌 뒤 1년 반에 걸쳐 의대 증원을 추진해왔다. 의료계와 소비자·환자단체 등 시민사회의 의견을 듣고 대학들을 상대로 의대 증원 수요조사를 진행했다. 의료 현장과의 소통 자리는 33회 가졌고, 지역별 의료 간담회를 10회 개최했으며, 의협과의 의료현안협의체도 그동안 26차례 열었다.

지난 1일에는 지역·필수의료로 의사 인력을 유도하기 위해 10조원 이상을 투입하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발표했다. 지역·필수의료 분야 수가를 올리고, 필수의료가 취약한 지방에는 수가를 더 올려주겠다는 내용이다. 나아가 지난 4일에는 이를 뒷받침할 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의대 증원 발표에 의사단체들은 집단휴진, 파업 등 단체행동을 예고하면서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의대증원 발표를 강도 높게 비판했으며,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협의회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의대 증원을 강행하면 전공의들과 함께 총파업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파업 시 가장 파급력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회원 4천200명(전체의 28%) 대상 설문 조사에서 86%가 의대 증원 시 단체행동에 참여할 의사를 밝혔다고 엄포를 놨다.

정부는 인턴, 레지던트 등 전공의 파업이 의료 현장에 미치는 혼란이 클 것으로 보고, 파업 돌입 시 즉시 업무복귀 명령을 내리고 이를 따르지 않을 때는 징계하겠다는 강경대응 방침을 정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정부는 비상진료 대책과 불법행동에 대한 단호한 대응 방안을 마련해놓고 있다"고 밝혔다.

여당뿐 아니라 야당도 의대 증원에 찬성하고 있는 데다, 국민 여론이 압도적으로 의대 증원을 바라고 있는 점 역시 의사 단체가 단체 행동을 옮기기에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야권은 공공의대 설립, 지역의사제 도입 등을 주장하며 세부적으로는 정부·여당과 이견을 보이고 있지만, 의대 증원 자체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국민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 89.3%가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 의사들 "집단휴진·파업 불사" 반발…여론 압도적 찬성 '부담'

- 의사협회, 회원 대상 설문조사 결과 공개

의사 10명 중 8명은 정부가 추진하는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절반은 이미 의사가 충분해 증원할 필요가 없다고 봤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은 5일 이러한 내용이 담긴 '의과대학 정원 및 관련 현안에 대한 의사 인식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인식 조사는 의협 회원을 대상으로 지난해 11월 10일부터 17일까지 일주일간 진행됐으며, 응답자는 총 4천10명이이었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81.7%인 3천277명이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했다.

의대 정원 확대를 반대하는 이유로는 '이미 의사 수가 충분하다'는 의견이 49.9%로 가장 많았다.

이어 '향후 인구가 감소하면서 의사 수요 역시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16.3%, '의료비용 증가 우려'가 15.0%, '의료서비스 질 저하 우려'가 14.4%, '과다한 경쟁 우려'가 4.4% 등이었다.

정원 확대에 찬성하는 733명에 그 이유를 묻자 절반가량인 49.0%는 '필수의료 분야의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외에 '지역 간 의료격차 해소'(24.4%), '의사가 부족해 환자가 진료받지 못해서'(7.9%) 등을 꼽았다.

지역의료 인력을 확충하기 위해 지역인재전형을 확대하는 방침에는 반대(51.5%)가 찬성(48.5%)보다 근소하게 높았다.

반대하는 이유로는 '지역의 의료 질 차이 초래'(28.1%), '일반 졸업생들과의 이질감으로 인해 의사 사회에서 갈등 유발'(15.6%), '지역인재 전형 인재에 대한 환자의 선호도 저하 가능성'(9.4%) 등을 들었다.

장학금을 지급하고 일정 기간 의무 근무케 하는 일명 '지역의사제' 도입에 대해서는 62.2%가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의사들이 생각하는 필수의료 분야 기피 현상의 원인으로는 45.4%가 '낮은 수가'를 지목했다. 이어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보호 부재'(36.0%), '과도한 업무 부담'(7.9%)도 필수의료 기피 원인으로 꼽혔다.

응급실 뺑뺑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36.2%가 '경증 환자의 응급실 이용을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 밖에 '응급환자 분류 및 후송체계 강화'(27.5%), '의료전달체계 확립'(22.6%) 등이 필요하다고 봤다.

소아과 오픈런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소아청소년과 운영을 지원해 해결해야 한다'는 응답이 47.2%로 가장 많았다. 다른 해결 방안으로는 '소비자들의 이용행태 개선 캠페인'이 14.0%, '조조·야간·휴일 진료 확대 지원'이 8.1%로 언급됐다.

정부의 지역·필수의료 관련 정책에 대해서도 '못하고 있다'는 부정적 평가(62.3%)가 '잘하고 있다'는 긍정적 평가(11.9%)를 앞섰다.

의협은 "섣부른 의대 정원 확대는 의료의 질 저하와 향후 의료비 증가를 유발할 수 있어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다"며 "지역·필수의료 분야 문제의 경우 의료현장에서 제기되고 있는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고 평가했다.

특히 "필수의료 분야의 문제 해결을 위해 해당 분야 수가의 합리화와 의료사고 법적 부담 완화 등이 우선이라는 결과에 비춰볼 때, 보다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개선 방안에 집중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며 "공공의대 신설이나 지역의사제 도입의 경우 외국에서도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 신중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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