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지평, 새로운 역사 ― 2024 강원 동계 청소년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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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지평, 새로운 역사 ― 2024 강원 동계 청소년올림픽
  • 조원형 편집기획위원/서울대·언어학
  • 승인 2024.02.05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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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형 칼럼]

지난 1월 19일부터 2월 1일까지 강원도 강릉, 정선, 평창, 횡성에서 2024 강원 동계 청소년올림픽이 열렸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때 성화 봉송 주자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던 필자는 이번 올림픽 때도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개회식과 폐회식을 비롯한 각종 행사와 여러 경기를 현장에서 직접 참관했다.

역대 네 번째이자 아시아에서는 처음이었던 동계 청소년올림픽의 서막을 연 개회식에서는 비록 몇몇 나라 국기가 사전에 약속된 순서대로 등장하지 않는 실수가 눈에 띄기는 했지만, 마지막 순서에서 객석에 앉아 있던 선수들이 다 함께 무대로 나와 공연을 하는 가수들과 한데 어우러지는 모습을 연출해 호평을 받았다. 한 소녀가 꿈을 이루어 우주비행사가 된 미래의 자신을 만난다는 내용을 담은 주제 공연도 규모는 소박했지만 메시지는 잘 전달됐다. 이는 또한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과 주제 의식이 이어지는 공연이기도 했다. 그리고 폐회식은 큰 눈이 내리는 가운데 야외에서 진행했음에도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잘 마무리되었다. 이는 무엇보다 폐회식 시작 직전까지 제설 작업에 혼신의 힘을 다한 자원봉사자들과 시종일관 선진국 시민다운 질서를 유지하면서 뜻깊은 행사에 함께한 관객들 덕분이었다.

개회식장에서는 선수와 관객의 자리가 분리되어 있어서 선수들을 마주칠 기회가 없었지만 경기장과 폐회식장에서는 여러 나라에서 온 선수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정선 하이원리조트 알파인 스키 경기장에서는 자기 경기를 막 마치고 관중석으로 온 오스트리아 선수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기념 사진도 여러 장 찍어 주었는데, 메달을 딴 선수도 따지 못한 선수도 모두 관중석을 찾은 사람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면서 올림픽을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선수 가족들 또한 올림픽 경기뿐만 아니라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에 대해서도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아이스하키 경기장에서 만난 독일 대표팀 선수의 아버지는 경기장이 있는 강릉 시내를 돌아보고 왔다면서 이 도시가 어떤 곳인지를 옆 자리에 앉아 있던 필자에게 상세히 묻기도 했다. 폐회식에서는 몽골에서 온 응원단을 만났고, 행사를 마치고 퇴장하는 일본 선수들과도 짤막하게나마 인사를 나눌 기회를 얻었다. 이렇게 여러 나라 사람들을 만나면서 다시금 느낀 것은, 청소년올림픽도 엄연한 올림픽이라는 사실이었다. 그 어떤 경기장을 가 보더라도 치열한 경쟁을 진지하게 하는 모습은 성인 올림픽 못지않았고 경기 기록과 선수들의 기량 역시 성인 올림픽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계 곳곳에서 찾아온 수많은 사람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 함께 즐기는 축제라는 점 또한 6년 전 바로 이곳 대한민국 강원도에서 열렸던 역사에 길이 남을 잔치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강원도에서 두 차례 개최한 올림픽은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과 책무를 다시금 상기하게 하는 행사이기도 했다. 이미 언론에 여러 번 보도된 바와 같이 동계 스포츠를 접하기 어려운 나라 청소년들을 한국에 초청해 체육 교육은 물론 문화 교류까지 하는 ‘드림프로그램’에 참가했던 선수들이 이번 청소년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기도 했고, 개최 도시 시민들도 언어 장벽을 넘어 외국인 손님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데 힘을 보탰다. 강릉 시내에서 만난 택시 기사 한 분은 6년 전에도 이번에도 외국인 승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필자의 어머니도 6년 전 정선 아라리촌에서 열린 개최 도시 문화 홍보 행사에서 봉사자로 일하신 바 있다. 강원도에서 치른 두 번의 올림픽이 한결같이 나라 안팎에서 진심 어린 찬사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노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

올림픽을 개최한 곳에서는 ‘올림픽 유산’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을 수 있다. 2018 평창 올림픽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이번 청소년올림픽도 ‘평창 2018’의 유산을 성공적으로 활용한 대회였다. 그런데 올림픽 유산은 단지 과거에 치른 행사를 기념하고 새로운 국제 대회를 계속 유치하는 것만으로는 계승할 수 없다. 분쟁 종식과 평화 정착, 기후 위기 대응 등 지구적 과제를 세계 시민이 함께 해결하는 데 힘을 보태는 것이야말로 올림픽 유산을 진정으로 지켜 나가는 길이다. 특히 동계올림픽은 기후 변화 문제와 결코 무관할 수 없다. 지구 온난화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동계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는 지역 자체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올 정도이다. 올림픽, 특히 동계올림픽의 지속 가능성은 곧 인류 자체의 지속 가능성과도 맞닿아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역대 최초로 디지털 성화를 도입한 것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2024 강원 동계 청소년올림픽은 이 점에서도 올림픽의 역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강원도에서는 두 번째로, 대한민국 전체를 통틀어서는 세 번째로 개최한 2024년 올림픽은 이제 역사의 한 장면으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올림픽의 전통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야 할 것이다. 이번 청소년올림픽에 참가한 모든 선수들이 행복한 체육인으로 성장해 올림픽의 역사에, 그리고 21세기 지구촌의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지속적으로 남겨 주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조원형 편집기획위원/서울대·언어학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에서 언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만하임 라이프니츠 독일어연구원 방문학자,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등을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로 일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천주가사에 대한 텍스트언어학적 연구”, “텍스트언어학에 기반한 ‘쉬운 언어(Leichte Sprache)’ 텍스트 구성 시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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