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전공 입학’이라는 교육부의 협박과 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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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전공 입학’이라는 교육부의 협박과 강요
  • 고영남 논설위원/인제대·법학
  • 승인 2024.02.04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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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남 칼럼]

교육부가 올해 대학의 주요 일반재정지원사업으로서 대학혁신지원사업과 국립대학육성사업의 기본계획을 발표하였다(2024.1.30.). 소문대로 큰돈이 판돈처럼 걸려 있었다. 내 눈에 들어온 쟁점은 무엇보다 점점 고픈 배를 주려 잡는 대학을 향하여 인센티브라는 큰돈을 받으려면 ‘무전공 입학’을 제도화하라는 교육부의 노골적인 협박과 강요였다. 그 자신감은 어디에서 왔을까? 이미 큰 판돈을 걸고 ‘글로컬대학 육성사업’을 시행하면서 재미를 본 정부는 사립대학이든 국립대학이든 한국의 대학은 돈줄을 통해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고 확신한 듯하다. 

이번 노름이 두 번째인 셈인데, 지난 사업이 말하자면 10등까지의 경주마들 앞에 놓인 판돈이라면 이번 사업은 ‘대학혁신지원사업’의 경우 117개 대학, ‘국립대학 육성사업’의 경우 37개 대학 등 대부분 대학이 그 대상이므로 도박의 성격을 뛰어넘는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모든 대학을 향한 협박과 강요 그 자체다. 미국 등에서는 기업에 점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대학의 형편을 걱정하는데, 한국에서는 대학의 재정 위기를 국가가 나서서 협박하는 희대의 상황이 펼쳐지는 셈이다. 이 협박과 강요야말로 윤석열 정부의 정체성이자 대학정책의 유일한 동력이다. 

그렇다면 그 협박과 강요의 내용은 도대체 뭔가? 대학혁신지원사업에서는 대학별 재학생의 수, 교육여건 지표 등 산식에 따라 배분되는 사업비(포뮬러) 외에, 대학혁신성과의 평가 결과에 따라 성과급(인센티브)을 50대 50의 비율로 지원한다. 국립대학 육성사업에서는 그 비율이 40대 60이다. 인센티브로 지급되는 지원금이 훨씬 많다. 즉, 이 인센티브가 판돈인 셈이다. 이 인센티브는 교육혁신의 성과 등을 평가하여 배분하는데, 그 핵심은 학생의 전공 선택권을 확대하는 등 학사구조를 유연하게 개편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유연성은 입학단계에서는 전공 없이 입학할 수 있도록 하고, 재학 중인 학생에게는 학과 교육과정의 울타리를 벗어나 다양한 전공을 고를 수 있도록 학사제도를 바꾸라는 강력한 요구다. 

교육부가 특히 강요하는 부분은 입학단계에서의 유연성이다. 구체적으로는 ‘수도권 사립대와 거점국립대 등의 경우 전공을 정하지 않고 입학한 후 재학 중에 대학 전체에서 또는 계열·단대 안에서 전공을 자유롭게 고를 수 있는 학생의 수가 전체 모집인원 중 25% 이상을 목표로’ 한다. 물론 올해는 기반조성 여부에 대한 정성평가로만 성과급을 지원하지만, 내년부터는 그 25% 이상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대학에만 가점을 줘 재정지원을 강화할 것이라고 한다.

대학이 비겁한 국가의 지원을 외면할 정도의 재정적 여력이라도 있었다면 이른바 ‘무전공 입학’ 협박을 거부하겠지만, 인센티브라는 명목으로 주겠다는 재정 규모가 꽤 크다 보니 대학마다 앞을 다투어 교육부의 강요를 수용하는 데 여념이 없다. 더 나아가, 학사구조의 유연성을 높이더라도 교육부의 이 강요에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그 대학은 조만간 재정의 위기를 맞게 된다. 15년째 동결된 등록금을 주요 수입원으로 버티는 한국의 대학으로서는 국가장학금 등 국가의 재정지원은 유일한 생명줄이나 마찬가지인 것이 현실이다. 국가가 이 목줄을 쥐어 잡은 채 뭔가를 요구한다면 이는 국가의 정상적인 행정행위가 아니라 일종의 협박, 그리고 대학의 자치를 방해하는 강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번 사업들의 기본계획이라는 문서 속에 교육부가 스스로 언급하고 있듯이 이런 규범적 판단을 교육부도 사실 인정하고 있다. 등록금 동결과 학령인구 급감 등으로 한국 대학의 재정 수준이 나빠져 고등교육을 수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으며 1인당 고등교육비조차 국제적 수준에 한참이나 부족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이 진심이라면 교육부로서는 재학생의 수 등을 기준으로 포괄적 방식의 일반재정을 지원하면 될 일이다. 어째서 앞의 배경 설명이나 논리와도 맞지 않은 ‘급변하는 미래사회에 맞는 인재 양성’을 운운하며 대학 자신이 직접 마련하고 실천해야 할 입학 등의 학사제도에 국가가 개입하고 그 내용까지 강요하며 대학자치를 훼손하는가?

대학자치에 관한 근거는 대체로 ‘학문의 자유’를 정한 대한민국헌법 제22조 제1항과 ‘대학의 자율성’을 정한 제31조 제4항에서 구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르면 ‘(헌법이)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규정하고 있는 취지는 대학에 대한 공권력 등 외부세력의 간섭을 배제하고 대학 구성원 자신이 대학을 자주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대학인에게 연구와 교육을 자유롭게 하여 진리 탐구와 지도적 인격의 도야라는 대학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하려는 데 있다.’(헌법재판소 2006. 4. 27. 선고 2005헌마1047 전원재판부 결정 등) 

그렇다면 이런 대학자치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대학의 자율권의 보호영역에는 대학시설의 관리⋅운영만이 아니라 학사관리 등 전반적인 것으로 연구와 교육의 내용, 그 방법과 대상, 교과과정의 편성, 학생의 선발, 학생의 전형도 포함된다.’(헌법재판소 2015.12.23. 2014헌마1149 결정 등) 따라서 학생의 선발과 전형에, 그리고 학사관리에 관하여 국가가 자신의 지도·감독권을 남용한다면 이는 대학자치를 명백하게 침해하는 행위다. 대학이 고등교육의 전공을 어떤 구조에서 운영할지, 그리고 여기에 적합한 학생을 어떤 단위로 전형할지 등을 스스로 규정할 수 없다면, 한국의 대학에 과연 자율성 또는 대학자치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겠는가?

‘미래사회를 선도할 인재를 양성할 목적으로 학과의 교육과정을 넘어 전공을 정하지 않고 입학’하는 정책이 한국의 대학정책으로 적절한지, 그리고 대학의 입장에서 그런 정책이 유리한지 등 그 시시비비를 이 글에서 검토하지는 않겠다. 그 정당성과 적합성 여부는 대학 구성원들이 긴 호흡 속에서 따져볼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본질은 그것을 왜 재정지원을 빌미로 협박하고 강요하느냐는 점이다. ‘대학의 자율 혁신’을 외치는 교육부가 먼저 나서 특정 정책을 요구하고, 그것조차 대학의 재정 위기를 빌미로 협박한다면 이는 국가가 대학을 향해 죽음의 칼을 들이대는 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오늘날 대학, 대학 구성원의 지혜, 용기 그리고 그 연대가 무디어졌다고 하더라도 대학이 고등교육과 연구의 기관으로 자생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지원하여야 할 국가가 오히려 대학의 이성을 파멸로 몰고 간다면 도대체 고등교육의 가능성에 관한 사회의 신뢰가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게다가 국가가 고등교육에 대한 지도·감독권을 빙자하여 협박과 강요를 하며 대학을 통제하고자 하는 정치적 이유는 대학의 재정적·사회적 지원에 관한 국가의 책무성을 은폐하는 데 있지 않은가? 물음이 꼬리를 물다 보니 결국 이런 고등교육에서의 무도(無道)를 이끄는 정치는 어디에서 왔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고영남 논설위원/인제대·법학

인제대학교 법학과 교수로 『민주법학』 편집위원이며, 전공은 계약법인데 교육법, 인권법, 법여성학, 사회철학, 사회과학방법론, 법인류학 등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 『경남 근현대사: 사건, 공간, 운동』(공저, 2023), 『여성과 몸』(공저, 2019), 『대학정책, 어떻게 바꿀 것인가』(공저, 2017), 『민법사례연습』(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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