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인 것의 탐문과 인문학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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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인 것의 탐문과 인문학의 한계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4.02.03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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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조사와 한국적인 것의 탄생 | 김인수·이영진 지음 | 소명출판 | 279쪽

 

이 책은 실천적, 맥락적, 구성적인 것으로의 '한국적인 것'이 사회과학 연구에서 어떻게 문제화되고 또 무엇으로 규정되어 왔는지를 알아내고 그 의미를 밝히고 있다. 특히 사회조사로 대표되는 경험적 사회연구에서 '한국적인 것'이 발견되고 운위되어온 양상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자 한다. 

우리 사회에서 한국적인 것에 관한 문제의식과 탐문은 줄곧 인문학의 과제로 간주되어 왔다. 한국적인 것에 관한 논의에는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하는 의지가 투영되기 일쑤였다. 그것은 종종 한국 민족 고유의 정서로 규정된 정(情)과 한(恨)의 문화를 추적하거나, 혹은 사회 습속 차원에 깃든 무속과 유교의 흔적을 발굴하는 일로 귀결되곤 했다. 또는 갓과 한복의 복식문화, 김치와 장의 음식문화, 한옥과 온돌의 주거 양식 등이 한국적인 생활양식을 대표하는 표상으로 회자되곤 했다. 그간의 논의는 주로 문화적 내실을 직관적으로 추출하여 이를 한국적인 것으로 제시하는 데에 치중해온 셈이다. 물론, 여기에는 이렇게 추출된 문화 요소들이 이른바 ‘한국인의 유전자’를 구성하고 있다는 대중적 신념의 지지가 자리하고 있다.

이에 비해, 그동안 사회과학 분야에서 한국적인 것은 외면되거나 도외시된 주제였다. 거기에는 그 개념 자체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내셔널리즘 환원에 대한 연구자의 부담은 물론, 학문적 분석의 대상으로 삼기에 이미 시대착오적이고 매우 고루하다고 여기는 편견도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적인 것을 이처럼 요소론적, 본질론적, 환원론적인 것이 아니라 실천적, 맥락적, 구성적인 것으로 다시 자리매김하게 되면, 질문은 새삼 우리 사회를 움직여온 메커니즘이 무엇이었는지를 발굴하고 가시화하는 것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질문의 전환 속에서 그동안 가족 및 친족 네트워크와 농촌공동체의 역사적 특수성에 주목하거나, 한국형 발전국가의 압축성과 속도에 주목하면서 사회적 신뢰나 네트워크, 거래비용의 측면에서 한국의 경험을 서구의 그것과 이질적인 것으로 모델화해온 한국 사회과학의 입론들이 새롭게 시야에 들어온다. 

이 책은 이런 관점에 서서 한국적인 것이 그동안 사회과학 연구에서 어떻게 문제화되고 또 무엇으로 규정되어 왔는지를 추적하고 그것이 가진 의미를 밝혀낸 작업의 산물이다. 특히, 그동안 사회조사로 대표되는 경험적 사회과학에서 한국적인 것이 어떻게 발견되고 운위되어왔는지, 나아가 이제 방향을 바꿔 사회조사의 결과물이 우리 사회와 학술장을 또 어떻게 의미화하고 주조해왔는지를 적극적으로 찾아내어 분석한다.

이 책을 통해, 한국적인 것을 발견하고자 하는 학술장 사회과학 주체들의 인식관심과 지식실천의 태도, 이들이 연구를 개시하게 되면서 곧바로 직면하게 된 현장의 거친 질감과 분석단위의 재규정, 세계사적 비교지평 속에서 한국적인 것의 자리, 탈식민/냉전 및 탈냉전 시대의 비대칭적 글로벌 지식권력 체계와 그에 대한 비판적 대응 및 방법론적 내파, 탈식민 사회과학의 구축을 위한 외부자원의 이식과 그 토착화/한국화의 시도,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사회과학 지식인의 내면적 전환 등 한국적인 것을 둘러싼 지식정치의 은폐된 이면과 망각된 역사가 새롭게 드러난다. 한마디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한국적인 것과 한국 사회과학이 서로 어떻게 연동하면서 탄생, 진화해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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