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묘한 밀림과 당김이 만들어내는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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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한 밀림과 당김이 만들어내는 마법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4.02.03 18: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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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 밀당의 기술: 타이밍과 끌림에 관하여 | 이미경 지음 | 곰출판 | 264쪽

 

박(beat)을 정직하고 충실하게 짚어주는 음악은 내 심장을 거기에 동조해 함께 뛰도록 만들기 때문에 좋다. 반대로 살짝살짝 비껴가는 음악은 기대를 조금씩 비껴가는 안타까움에 애간장이 녹는다. 우리가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는 이런 ‘끌림’ 때문이다. 그야말로 ‘박자를 가지고 노는 것.’ 이 과정이 꼭 연인 사이의 ‘썸’처럼 느껴진다. 기분 좋은 떨림과 짜릿함이 사람들을 음악에 빠져들게 만드는 힘이다.

음악의 본질은 무엇일까? 지금까지 우리는 ‘음악의 3요소’라 불리는 멜로디와 리듬, 하모니를 음악을 구성하는 주요 개념으로 다뤄왔다. ‘딴딴 따-단’하는 〈결혼행진곡〉이나 ‘띠로리로, 띠로리로리’하는 〈엘리제를 위하여〉는 우리가 음악을 멜로디로 기억하는 대표적인 곡들이다. 리듬은 음의 장단과 강약을 나타내는 것인데, 멜로디 진행에 길고 짧음, 강하고 약한 것을 보여준다. 하모니는 일정한 법칙에 따른 화음의 연결, 즉 다른 소리와의 어우러짐을 다룬다. 그런데 이 책은 그동안 지나쳐 온 ‘박’을 전면에 내세운다. 저자는 왜 ‘박’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일까?

저자는 박이 리듬이나 멜로디 같은 음악의 다른 요소들과 비교해, 비록 중요도는 떨어질지 몰라도 음악의 시간적 질서와 공감의 측면에서 다른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를 감각적으로 짚어내는 데 그치지 않고, 심리학과 진화생물학 등의 다양한 연구와 연결지어 설명한다. 그래서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사람과 듣고 즐기는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박이 가진 원초적인 힘임을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인간은 ‘박’을 느끼고 규칙적 박을 선호하는 능력을 마음속에 갖고 태어나지만, 태어나자마자 바로 박에 맞추어 행동을 제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훈련을 받아야만 가능하다. 박에 기초한 행동도 서서히 해당 문화로부터 그 방식을 배운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문화에서 자란 아이가 박자를 타는 방식과 아랍인이 박자를 타는 방식, 우리나라 사람들이 박자를 타는 방식이 조금씩 다를 수 있다. 그들의 언어가 다 다르듯이 말이다. 

저자는 다양한 음악 레퍼런스로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한다. 동요부터 클래식, 국악과 재즈, K팝까지 다양한 음악들이 구현하는 박을 탐구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함께 동조하는 울림을 가만히 응시한다. 저자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음악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원천이었다. 음악은 박자를 통해 시간과 울림을 공유하고, 리듬을 통해 선율과 이야기를 전한다. 이것을 잘 알고 이용하는 사람이 음악가이고, 연주자다. 이들의 시간은 정박으로 흐르지 않는다. 소위 ‘잘하는 연주자’는 메트로놈의 딸깍거림에 맞춰 정확하게 연주하지 않는다. 정박과 엇박 사이에서 미세하게 당기고 밀어냄으로써 스윙, 혹은 그루브를 만들어낸다. 연주자들의 이런 미묘한 시간차는 도대체 무엇일까? 어째서 이런 ‘끈적함’이나 ‘울렁거림’, ‘둥둥 뜨거’나 ‘주저주저함’ 등의 감정이 연주에서 느껴지는 것일까? 이 모든 느낌을 뭉뚱그려서 그냥 ‘뉘앙스’로 표현하면 그만일까?

 

미국의 심리학자 칼 시쇼어(Carl Seashore)는 컴퓨터도 없던 시절(20세기 초)에 아이오와 피아노 카메라라는 기계를 발명하여 10밀리세컨드 단위까지 음의 길이 변화를 측정했다. 이 기계는 피아노의 해머의 움직임을 찍어 온셋타이밍(소리를 내는 시작점)과 소리의 크기(다이내믹)를 측정할 수 있도록 마련된 장치였다. 그 결과 피아니스트들이 연주에서 악보에 적힌 음의 길이나 높이로부터 상당한 정도까지 이탈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이것을 ‘예술적 이탈(Artistic Deviation)’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런 ‘이탈’을 어느 누구도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다. 틀렸다고 말하기에 앞서 그 매혹적인 끌림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고 만다. 몸이 먼저 반응하기 때문이다. 드러내고 박을 세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박을 세고 이것들을 함께 느끼면서 시간을 공유한다. 그 타이밍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면 안정감을, 어긋나면 안타까움에 애간장이 녹는다. 이것은 마치 연애 초기에 연인들이 서로의 감정을 밀고 당기는 것처럼 간질간질하고 몽글몽글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정신없이 ‘연주자의 밀당’에 끌려다니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음악에 흠뻑 취하고 마는 것이다.

저자는 함께 박자를 공유하는 시간, ‘순간적으로 서로를 느끼고 확인하는 시간’ 그 자체가 음악의 본질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것이 ‘스트리밍 시대’에 아직도 콘서트장에서 관객과 아티스트가 호흡하는 이유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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