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세속의 상호 의존성과 상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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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세속의 상호 의존성과 상대성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4.02.03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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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속주의를 묻는다: 종교학적 읽기 | 최정화 엮음 | 김재명 외 5명 지음 | 모시는사람들 | 480쪽

 

이 책은 종교와 세속의 이분법을 넘어서서, 세속주의의 형성 과정과 세속주의가 다루어지는 다양한 방식에 대한 종교학적 연구사를 정리하고, 앞으로의 연구 방향을 제시한다. 특히 인류학, 정치학 등의 인접 학문 분야에서의 세속주의 연구들을 종교학적 시선으로 종합하고 분석하면서 현대 사회에서 세속주의가 미치는 영향, 그 역할을 탐구한다. 

세속주의란 일반적으로 사회로부터 종교의 영향력을 제거하려는 정치적 태도이다. 세계관으로서의 세속주의는 존재론적 물질주의, 자연주의적 세계관, 물리주의적 사고방식 등으로, 초자연적이나 초월적이기보다 물질적이고 물리적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종교학이 일반적으로 종교 자체를 다루는 데 반하여 이 책은 세속, 세속화, 세속주의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들에 주목함으로써 오히려 종교-세속의 상호 의존성과 상대성을 드러낸다. 이 책이 다루는 세속주의의 관점에서, 종교와 세속은 적대적이지도 않고, 대척적으로 갈등하는 영역도 아니다. 종교를 이해하기 위해서 세속 이해를, 세속을 이해하기 위해 종교 이해를 필요로 하는 것, 그리고 그 둘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자리매김하느냐가 ‘세속주의 논란’의 중심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세속주의와 관련된 다양한 논점들을 정리함으로써 종교학 연구의 새로운 영역을 확장한다.

기본적으로 세속화 이론은 근대 이후로 탈종교 흐름과 사회의 세속화가 가속화하면서 종교가 소멸하거나 주변화할 것이라는 입장에서 출발하였지만, 현대 사회에서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반면에 사회주의로 대표되는 세속주의의 몰락은 또 다른 의미에서의 세속주의 비판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비판은 세속주의의 이면에 기독교 세계관이 자리 잡고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되며, 세속주의가 이슬람권의 탈세속화된 종교문화권에 대한 비판의 근거로 작동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다.

1부 〈종교와 세속주의 이론. 입문과 쟁점〉에는 두 편의 글이 실렸다. 「종교와 세속주의 입문하기」는 근대 국가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종교와의 관계, 그리고 세속주의에 대한 도전과 변화하는 역사적 맥락을 고찰함으로써, 종교와 세속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넘어서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엘리아데와 세속주의 담론」도 종교와 세속의 중첩 현상을 탐구한다. 탈랄 아사드의 세속주의 비판과 오니쉬의 종교철학적 연구가 세속주의의 본질과 그 안에 내재된 신성성을 탐구하는 방식을 보여줌으로써, ‘종교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부터, 자연주의적 연구의 중요성과 엘리아데의 연구가 제공하는 풍부한 재료에 대해서도 논의한다.

2부 〈한국의 종교와 세속주의〉에도 두 편의 글이 실렸다. 「한국의 종교연구와 비평(비판)의 세속성 논의」는 한국의 세속성과 종교연구의 관계, 특히 보수신학과의 대립, 세속 영역과 종교학의 관계, 서구의 비판과 비평에 관한 최근 논의, 종교연구, 비판, 세속성에 대한 깊은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세속화에 대한 저항 ― 동학에서 한살림까지」는 ‘세속화’로 대변되는 서구 근대의 틀로는 도저히 설명될 수 없는 또 다른 세계를 지향한 한국 자생의 철학, 동학을 소개한다. 이어서 수운-해월의 동학의 지향성이 윤노빈과 김지하를 거쳐 도달한 한살림의 흐름들을 묶는 공통의 키워드로 ‘일상의 성화’를 꼽고, 그것이 생태위기와 기후변화로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는 인류세 시대에 ‘성화’가 다시 주목받고 있음을 소개한다. 

3부 〈세속주의의 전개: 나라별 접근〉에도 두 편의 글이 실렸다. 「세속-종교-미신의 3분법을 통해 본 신사참배의 정치학 ― 근대 일본을 중심으로」는 메이지 유신 이후 19세기 후반 일본에서 형성된 국가 신도 체제의 형성과 정치적 함의를 탐구한다. 「기울어진 세속주의 ― 독일의 통일국가 만들기 과정에서 세속주의가 작동되는 방식」은 독일의 통합 과정에서 사회주의와 이슬람에 대해 세속주의가 선택적으로 운영되는 방식을 소개하면서 사회주의와 이슬람 모두 ‘길들이기’의 대상이 됨을 말한다. 리버럴 민주주의 모델의 세속주의에 대한 비판을 다루며, 그 해석의 우위와 갈등 해결에 대한 역할을 지적하고, 독일 이슬람 회의에서의 세속주의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다룬다.

4부 〈세속주의와 현대 사회〉는 네 편의 글을 담고 있다. 「생태 위기에 대한 지구학적 대응 ― 성스러운 지구와 세속화된 가이아」는 생태 위기에 대한 반응으로 형성된 서구의 새로운 자연관, 특히 ‘가이아’ 이론에 관한 린 화이트의 주장이 생태신학적 접근 태도로 지구를 살아 있는 유기체로 보는 종교적 관점을 취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어 이러한 접근법을 비판하는 브뤼노 라투르가 가이아를 세속화된 형태로 재해석하는 관점을 소개한다. 이 글은 이런 세속화된 한나 아렌트, 토마스 베리, 라투르의 관점을 검토하며, 이를 ‘지구학’이라는 새로운 범주를 제안하고 있다.

「보건의료에서의 종교와 세속 ― 건강돌봄과 영성의 만남」은 우선 유럽의 기독교 쇠퇴에서 시작된 세속화 논의, 미국에서의 신종교운동, 그리고 탈세속화론의 등장과 그 확장에 대해 설명하고, 1990년대의 지구화론과 전 세계를 무대로 한 종교의 공적 역할에 대한 논의로 나아간다. 「비판의 세속성에 관한 갑론을박 ― 11명의 관점」은 특히 아사드, 마흐무드, 주디스 버틀러 등의 학자들이 온라인 모임에서 ‘비판은 세속적인가’라는 주제로 의견을 주고받은 내용을 중점적으로 검토하고 평가한다.

「세속주의, 무슬림 혐오, 마르크스주의와 종교」는 세속주의 개념의 잘못된 사용이 정치적 방향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다룬다. 중동, 특히 이집트와 튀르키예의 사례를 중심으로, 세속주의 개념이 어떻게 좌파의 고립을 초래하고 반동 세력에게 이익을 주는지 설명하고, 이집트와 튀르키예에서 일어난 군사 쿠데타와 이슬람주의자들의 상황을 분석하며, 세속주의 개념이 정치적, 종교적 힘의 균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평가한다. 또한,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 사이의 구분이 종교적, 정치적 문제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논의하면서, 세속주의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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