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의 無爲를 다시 소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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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無爲를 다시 소환하다
  • 이승훈 서울시립대·중국어문화학과
  • 승인 2024.01.28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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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治大國, 若烹小鮮。큰 나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 굽듯이 하라. 

큰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생선 요리법이라니. 노자의 <도덕경>의 한 구절인데, 간단해 보이지만 해석은 만만치 않다. 작은 생선을 굽는다는 비유는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는 작은 생선처럼 연약한 백성들을 자꾸 다그치지 말고 조심스럽게 대하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노자가 평범한 이런 교훈을 주려고 생경한 비유를 들었을 것 같지는 않다. 

생선 요리법에 대한 다른 해석은 이렇다. 작은 생선을 구울 때 자꾸 뒤척이면 살점이 부스러져 남는 것이 없게되니, 적당히 익었을 때 한번에 과감하게 뒤집으라는 것이다. 삼겹살 굽는 비법을 떠올리게 하는 이 비유는 자못 심각한 내용을 표현하기 위한 노자식 화법이었다.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가 자기 생각과 기호에 따라 법과 원칙을 자주 뒤바꾸면 백성들은 제도를 불신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경고한 것이다. 

권력자의 사적인 욕망에 따라 나라의 시스템이 자꾸 흔들려서는 안 되며 제도와 법률은 항상 예측가능한 상태로 유지되어야 한다. 함부로 뒤집지 말라는 명령문을 한 단어로 정리하면 無爲다. 고대중국에서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소극적인 은둔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특정한 어떤 것을 하지 말라는 적극적인 행동규칙을 나타내기도 한다. 노자의 무위사상을 욕망을 비우는 마음 수련법으로 보기도 하지만, 특정한 정치적 행위를 강조하는 적극적인 자세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최근 교육부는 당장 내년부터 대학 정원의 일부를 무전공으로 선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심지어 몇 달 내로 답을 내놓지 않으면, 정부지원 사업의 인센티브의 수혜에서 제외될 것을 각오하라고 한다. 대학입시 정책은 작은 제도 하나를 바꾸는 데도 몇 년 동안의 사전예고 기간을 가져왔다. 온 국민이 관심을 가진 사안이니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토론하고 숙고하는 기간을 갖자는 것이다. 수험생들에게도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최소 2년 전에 입시요강을 확정하는 예의를 지켜왔다. 이런 사회적 합의도 건너뛰고 대학 스스로 준비할 여유도 없이 당장 내년부터 시행할만큼 무전공 입학제도 도입이 시급한 것일까? 

학문간 경계를 넘나드는 융복합 교육을 더이상 미룰 수 없기에 무전공 선발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 교육부의 주장이다. 대학들도 언제부턴가 융복합적 사고를 가진 미래형 인재를 키우는 것을 자기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 교육부와 대학이 나서 제도와 시스템을 바꾸면 융복합적 사고가 생기는 것일까. 

대학은 강의실과 연구실은 물론 동아리, 소모임, 세미나 등 다양한 공간에서 융합적 지식이 만들어지는 복합 공간이기도 하다. 세계를 휩쓰는 소위 K-컬쳐의 주인공들이 창의적인 상상력을 키워냈던 공간은 강의실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자유롭고 활기찬 대학이라는 복합 공간이 우리 사회에 꾸준히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를 배출해왔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 학생들은 이런 대학의 복합 공간을 활용할 여유가 없어 보인다. 학과 하나만 이수해서는 불안하고 복수전공이라도 해야 마음이 놓이기 때문이다. 이런 조바심은 융복합을 장려한다는 명목으로 10여 년 전부터 대학이 조장한 것이기도 했다. 대학들은 융복합이 화두가 되기 시작할 무렵 복수전공을 장려하기 시작했다. 여러 전공을 공부하다 보면 언젠가 융합적 인재가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대학 교육 현장에서 느끼는 복수전공 제도의 현실은 제도를 설계한 사람들의 기대와는 다르다. 

복수전공을 희망하는 학생은 1, 2 학년 동안 본인이 원하는 복수전공의 컷트라인에 들기 위해 자신의 전공과목을 열심히 공부한다. 좋은 학점을 취득해 유망한 복수전공 진입에 성공하면 3, 4학년부터는 새로운 과목을 배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제부터는 자기 전공과목까지 챙길 여유는 없다. 복수전공 학생은 자기 전공은 반만 들어도 된다고 대학에서 보장해 주었기 때문이다. 1, 2학년 때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거의 이수해 버린 자기 전공과목은 점점 관심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힘들게 복수전공 과정을 이수해도 남는 것은 애매한 두 전공의 학위뿐이다. 자기 전공은 1, 2학년 수준의 공부에 그치고, 복수전공도 3학년부터 시작하느라 기초가 없는 상태에서 우겨넣기로 이수한 과목이 적지 않은 것이다. 결국 자기 전공도 2학년 수준을 넘지 못하고, 복수전공도 사상누각처럼 불안한 상태에서 두 개의 학위를 동시에 가졌다는 타이틀만 졸업장에 남는다. 분명 4년제 대학에 입학했는데, 졸업할 때는 2년제 대학을 두 번 다닌 것같다고 하소연하는 학생도 있다. 

전공수업을 운영하는 교수 입장도 답답한 점이 많다. 저학년 때 체계적인 과정을 밟지 않고 진입한 복수전공 학생들을 3, 4학년 수업에서 받아주어야 한다. 수업의 강도를 낮출 수밖에 없다. 고급 지식을 전수해야 하는 대학차원에서 볼 때 지적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세계 대부분의 대학이 4년제 학제를 선택하는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학은 4년 동안 하나의 학위만 취득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분위기를 조장해 왔다. 

물론 복수전공 제도를 효율적으로 이수한 사례도 없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복수전공 제도가 가지고 있는 문제가 여전한데도 이제는 아예 처음부터 무전공으로 입학시키라고 강도를 높이려고 한다는 점이다. 융복합을 명분으로 시행했던 복수전공제도라는 1차 실험이 보여준 문제들이 여전한데도 불구하고 그보다 더 파격적인 2차 실험을 압박하는 것이다.

대학교육 정책은 작은 생선 굽듯 조심스럽게 단번에 뒤집어야 한다. 구성원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효율적인 제도를 설계한 다음 뒤집어도 늦지 않다. 융복합 교육이 목적이라면 1, 2년 늦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당장 내년에 입학할 학생들 앞에 아직 익지도 않고 살집 떨어져 나간 생선요리를 내놓을 것인가? 수백 명의 무전공 학생들이 일 년만에 급조된 제도만 믿고 들어와 대학교정을 배회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다. 

교육부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무위일지도 모른다. 급하게 무언가를 해주려는 것이 아니라, 대학이 알아서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무위말이다. 무위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어떤 것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무위의 반대는 有爲가 아니라 ‘억지로 시킨다’는 의미의 조장(助長)이다. 조장이란 자연스러운 성장을 거슬러 인위적으로 외부적 힘을 가하는 것을 말한다.

옛날 중국의 한 농부가 자신의 밭에 심은 싹이 느리게 자라는 모습이 너무 답답했다. 어느날 그는 참지 못하고 밭으로 달려가 싹을 위로 뽑아주었다. 그는 지친 모습으로 집에 돌아와 오늘 내가 싹이 자라도록 도와주느라 병이 날 지경이라고 푸념했다. 이 말을 들은 그의 아들이 곧바로 밭에 달려가 보았더니 싹들은 이미 말라 죽어있었다. 자라도록 도와준답시고 싹을 뽑아주는 것(助長)은 무익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해치고 말았던 것이다. 

자연의 힘으로 자라게 두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힘으로 자라도록 힘을 가하는 것이 조장이다. 자연스러운 성장을 거슬러 외부적인 힘을 가한다는 조장은 위화감, 사행심, 과소비와 같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을 부추긴다는 의미에 사용된다. 

자꾸 뒤집어 살점 떨어져 나간 작은 생선은 안 먹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대학의 교육제도를 합의와 숙고 없이 졸속으로 바꾸면서 생기는 문제는 돌이킬 수 없다. 무리하게 시행하는 무전공 입학제는 대학의 발전이 아니라 심각한 문제를 조장할 수도 있다는 대학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할 것이다. 

 

이승훈 서울시립대·중국어문화학과

서울시립대학교 중국어문화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남경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 수사학 전공을 바탕으로 중국의 문자, 고전, 문화사 등 전방위 분야를 탐사하며 옛 글과 문자에 담긴 깊은 사유를 현대와 잇닿게 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의 언어와 문화에 대한 일반지식은 물론 전문 자료를 모은 개방형 디지털 아카이브 중국학 위키백과를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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