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오 바디스, 후마니타스? - 포스트휴먼 시대, ‘포스트인문학’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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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오 바디스, 후마니타스? - 포스트휴먼 시대, ‘포스트인문학’에 대한 단상
  • 강병창 한국외대·언어학
  • 승인 2024.01.28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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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21세기의 20년대는 하나로 연결되어 보이는 두 사건이 큰 획을 그으면서 전개되고 있다. 동물에서 사람 세상으로 터전을 옮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전 세계적 유행과, 스스로 학습해 인간의 언어능력을 따라잡고 인간보다 더 똑똑하게 대답하는 듯 보이는 인공지능의 발전이 그것이다. 이 두 사건은 인간과 기술이 지구 생태계를 변화시키는 가장 큰 요인이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말해 준다. 

지구의 역사를 나타내는 지질시대의 최근 단계는 홀로세(Holocene: ‘완전히 새로운’ 땅의 시대)인데, 그 다음 단계로서 ‘인류세’(Anthropocene: ‘인류로 말미암아 새로운’ 땅의 시대)가 제안되었다. 지구 행성과 생명의 운명이 호모 사피엔스의 손에 달려 있게 되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지구 역사에서 생물계에 수차례 대멸종이 있었지만, 지금 인류세의 ‘6차 대멸종’은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 일으키고 있으며, 그 이면에서 작용하고 있는 인류의 기술력은 이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인류는 이성, 언어, 도구로써 삶의 방식과 세상을 바꾸어 왔지만, 이제 기술은 옛것을 급속히 와해시키는 양날의 검이 되어 인간, 비인간 생명, 지구를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인문학이 무엇이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다시 묻고 싶다.

이 질문은 과학기술 시대의 인문학 위기 담론 형태로 끊임없이 제기되어 와서 이제 식상한 주제가 된 것 같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접근이 거의 한쪽으로 치우친 시각으로 이루어지는 듯하며, 그 해결 방안도 거의 한 방향으로 쏠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념이 여전히 모호한 ‘융합’이라는 미명 아래, 인문학은 STEM 학문/학과(과학-기술-공학-수학)라는 ‘줄기’에 봉사하는 ‘곁가지’가 되어야만 생존을 보장받거나 명맥을 유지할 정도가 되었다 ― STEM 영역은 독일에서는 돈을 찍어내는 조폐국을 연상시키는 ‘MINT’(수학-정보공학-자연과학-기술)로 불리는데 ‘돈 되는’ 분야임을 암시하고 있다. 주인 노릇도 하지 못 하고 돈도 되지 않는 인문학의 이런 현실에서 균형을 찾기 위해서는 나머지 절반의 이야기도 할 필요가 있다. 인문학은 ‘studia humanitatis’, 즉 ‘인간다움(humanitas/humanity)에 대한 연구(studia/studies)’에서 비롯한 것인 만큼, 이 시대에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되묻는 일은 무엇보다 시급하다.

서구에서 인간, 인간성 또는 인간다움은 처음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고대부터 역사적으로 구축되어 온 개념이다. 근대에 와서 만개한 ‘휴머니즘’은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옹호하고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밑거름이 되어 왔다. 하지만 존재의 이원적 대립(인간-비인간, 문화-자연, 마음-몸 등) 및 위계적 차별, 인간중심주의, 인간 존재의 예외성 등의 이념에 갇힘으로써 오늘날 인류세 곤경의 동인으로 인식되고 있다. 서구에서 이러한 휴머니즘을 넘어서자는 운동은 지난 세기부터 여러 가지 모습으로 펼쳐져 왔다. 그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9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된 사상 흐름인 ‘포스트휴머니즘’(posthumanism)이다. 이 철학적, 문화적 흐름은 원래 휴머니즘에 대한 비판적 성찰(포스트-휴머니즘)이 핵심이지만, 우리나라에 수용되어 사회적으로 주로 관심을 끌어왔던 부분은 ‘포스트휴먼’에 관한 담론(포스트휴먼-이즘)으로 보인다. 머지않은 미래에 ‘인간 이후의 인간’(포스트-휴먼)이 과학기술에 의해 구현될 것이라는 주장에 귀 기울이느라 인간이란 무엇인가(후마니타스)에 대한 비판적 성찰(포스트-)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이 ‘포스트휴먼’은 최첨단 의료기술과 뉴로, 바이오, 나노 등의 인간향상 기술의 사용으로 근본적으로 변화된 형태의 인간 존재를 말한다. 이는 ‘트랜스휴먼’, ‘초인간’(수퍼휴먼)과도 통하며, 동물의 몸을 벗어 신처럼 되고자 하는 존재, 즉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호모 데우스’이다. 인류는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를 넘어서 이제 지능과 기술을 통해 생명을 새롭게 설계하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요 척도라는 인간중심주의와, 기술에 의한 진보와 향상에 대한 믿음을 주축으로 하는 휴머니즘의 이상을 극대화하려는 시도일 뿐이다. 

휴머니즘이 인문학의 토대를 이룬다면, 휴머니즘을 비판하고 넘어서는 포스트-휴머니즘은 포스트-인문학, 즉 ‘인문학 이후 인문학’의 바탕이 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인문학에서 포스트인문학으로의 이행은 저절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인간의 정신이나 그 산물인 문화에 관한 연구가 주축인 인문학은 이제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 적응, 변신해야만 존립 위기를 극복하고 존속할 수 있다. 물론 19세기에 들어서면서 탄생한 근대 인문학은 21세기에 와서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유지되어 온 것은 아니다. 근대 인문학은 근대 지식 패러다임(에피스테메)의 산물이며, 역사-문화적으로는 민족주의와 식민주의, 유럽 중심주의와 남성중심주의의 확산과 결부되어 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무렵부터 인문학은 탈근대를 지향하는 포스트모더니즘, 탈식민주의, 젠더 이론 등의 패러다임에 의해 큰 변모를 겪게 되었고, 이제는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에 의해 촉발된 포스트인문학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모색하고 있다. 

포스트인문학은 윤리 기준이 되어 왔던 유럽 휴머니즘의 위기, 인간에 관한 고전 지식의 위기, 그리고 지구가열의 기후변화가 대변하고 있는 인류세 위기에 대한 응답이다. 또한 포스트인문학은 인간-비인간, 자연-문화, 몸-기계, 자아-타자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진 시대에 처한 인간 상황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 이러한 연속성과 문제 해결의 관점에서는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학문분과 간의 교섭과 횡단이 필수가 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서구에서는 1990년대부터 ‘X Studies’(예컨대 ‘과학기술학’, ‘인간동물학’, ‘장애학’ 등), ‘Y Humanities’(‘환경인문학’, ‘디지털인문학’ 등) 식의 다양한 이름으로 분과교섭 및 분과횡단 연구가 나름 붐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대학은 인문학의 이러한 흐름에 적극적, 생산적으로 동참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시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융합’, ‘융·복합’, ‘학제(際)적’, ‘초학제적’ 등의 이름으로 교육 개혁이 시도되고 있지만, 근대에 형성된 전통 인문학 학문분과들이 차지하는 자리는 여전히 좁고 위태롭다. 인공지능, 바이오, 나노 등의 과학기술 간 융합이 대세이며, 과학기술과 인문학의 융합은 새로운 산업의 요구에 부응하는 선에서 제한적으로 시도되고 있을 뿐이다. 이 경우에도 인문학의 위상은 주로 수직적 관계에 있다. 그동안 시장경제와 사회정책의 요구에 맞지 않는 인문학 분과는 존폐 위기를 겪어 왔는데 오늘날 그 압력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러한 인문학이 존립, 발전하기 위해서는 세계와 사회, 문화를 일방적으로 규정하는 외부 도전(세계화, 정보화, 디지털, 4차 산업혁명 등)의 실체를 간파하고, 인문학 자체의 역량과 가치를 재고하고, 나아갈 방향 설정을 다시 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 포스트인문학은 모순과 위기의 시대에 인문학의 역할을 회복하는 일이기도 하다. 인간은 가치와 의미를 찾고 표현하고 이에 따라 행동하기 마련인데, 이러한 인간과 그 문화에 대한 이해는 AI에 전적으로 맡길 수 없는 일이다. 이구동성으로 하는 얘기지만, 기술 진보가 인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 했다. 다시 말해 과학과 기술의 진보는 물질세계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고 정신세계, 즉 생각, 지식, 문화의 영역에도 영향을 미침으로써 예전에 없던 문제를 초래했다. 칼로 칼을 자를 수 없듯이, 원인이 그 결과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 한다. 그래서 현상을 지켜보고 문제를 진단하고 치유의 길을 모색하는 성찰이 필요함은 자명하다. 인문학, 나아가 포스트인문학의 역할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강병창 한국외대·언어학

한국외국어대학교 언어연구소 교수. 한국외대 독일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세계·언어·삶의 세미오시스”라는 아젠다의 인문한국 사업에 HK교수로 참여했고, 현재 그 후속으로 “21세기 한국문화 세미오시스의 포스트인문학적 성찰” 연구를 공동으로 수행하고 있다. 은유, 유머, 감정-언어 상호작용, 종교 언어, 언어 매체성 등에 관한 다수의 논문과 공저가 있으며, 저서로는 『언어와 유머』가 있다. 최근에는 포스트휴머니즘과 포스트인문학의 관점에서 언어 문제를 재고찰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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