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라면 모든 게 새로울 일상 - 신해철, 일상으로 초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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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라면 모든 게 새로울 일상 - 신해철, 일상으로 초대하다
  • 김광식 서울대·인지문화철학
  • 승인 2024.01.27 22: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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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식 교수의 〈음악과 철학 사이〉

 

 

[리뷰] 로티의 〈우연, 아이러니, 연대〉로 본 신해철의 〈일상으로의 초대〉


“산책을 하고 차를 마시고 / 책을 보고 생각에 잠길 때 
요즘엔 뭔가 텅 빈 것 같아 / 지금의 난 누군가 필요한 것 같아 

친굴 만나고 전화를 하고 / 밤새도록 깨어있을 때도 
문득 자꾸만 네가 생각나 / 모든 시간 모든 곳에서 난 널 느껴 

내게로 와 줘 내 생활 속으로 /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 게 새로울 거야 
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 게 달라질 거야 (....)

I really like to share my life with you (....) / So lt is invitation to you (....)
But sadly I've got nothing to give you / All I can do is just say I love you

해가 저물면 둘이 나란히 지친 몸을 서로에 기대며
그날의 일과 주변 일들을 얘기하다 조용히 잠들고 싶어”


신해철이 부른 노래 〈일상으로의 초대〉다. 그는 사랑하는 이를 “매일 똑같은 일상” 속으로 초대한다. “산책을 하고 차를 마시고 책을 보고 생각에” 잠기고, “친굴 만나고 전화를 하고 밤새도록 깨어있”는 “모든 시간 모든 곳에서” 함께 하는 “내 생활 속으로” 와 줄 것을 간절히 바란다. 그는 작은 일상을 함께 나누고 싶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 게 달라질 거야.”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 게 새로울 거야”라고 그는 노래한다. 작은 일상의 기쁨과 아픔을 함께 나누면 무엇이 달라지고 무엇이 새로워질까?

희망찬 새해가 밝았다. 하지만 큰 화재를 겪은 충남 서천 상인들은 희망보다 근심이 가득하다. 200개가 넘는 상점들이 잿더미가 되었다. 그들은 설 대목을 앞두고 졸지에 생계수단을 모두 잃었다. 화재 다음날, 대통령 부인이 명품 가방을 받은 문제로 큰 갈등을 빚던 대통령과 여당 당 대표가 현장을 방문했다. 여당 당 대표는 90도로 머리를 숙여 인사했고, 대통령은 어깨를 어루만지며 화답했다. 둘은 화재를 피한 건물 1층에서 잠시 관계자들과 상인 대표를 만나고 대통령 전용 열차를 타고 돌아갔다.

언론은 “한 90도 인사, 윤 ‘열차 같이 타고 가자’”, “윤·한 충돌 이틀 만에 ‘90도 인사’ 봉합”, “윤·한 충돌 이틀만에 ‘봉합열차’” 같은 제목으로 크게 보도했다. 하지만 정작 피해를 겪은, 그 건물 2층에서 기다리고 있던 상인들은 대통령도 여당 당 대표도 만나지 못했다. 그들은 눈이 펑펑 내리는 화재 현장에서 “우리를 만나지도 않고 갈 거면 왜 왔냐?”, “우리가 당신들 화해를 위한 병풍이냐?”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그런데 세상이 덜 주목하는 작은 일상의 고통보다 세상이 더 많이 주목하는 옳고 그름을 가리는 큰일을 앞세우면 안 되는 까닭이 있을까?

미국 철학자 로티(Richard Rorty)는 그의 책 〈우연, 아이러니, 연대〉에서 그 까닭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를 [연대]하게 하는 것은 [거창한 진리]가 아니라,
 [작은 일상적인]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다.”

                                                - 로티, 〈우연, 아이러니, 연대〉


세상이 덜 주목하는 작은 일상의 고통보다 세상이 더 많이 주목하는 옳고 그름을 가리는 큰일을 앞세우면 안 되는 까닭은 그렇게 하면 서로 돕고 연대하며 함께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서로 돕고 연대하며 함께 살도록 해주는 것은 거창한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 아니라 작은 일상적인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기 때문이다.

     Richard McKay Rorty (October 4, 1931 ~ June 8, 2007) 출처: iai news / © The Institute of Art and Ideas

로티에 따르면, 거창한 진리에 대한 신화는 허구다. 우리는 세상에 대한 진리를 인식할 수 없다. 우리는 세상에 대해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라며 해석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세상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만의 인식 틀로 세상을 인식한다. 우리의 인식 틀이란 안경을 벗고 세상 그 자체를 인식할 수는 없다. 우리가 세상에 대한 진리라고 말하는 것은 필연적인 인식이 아니라 우연적인 해석이다. 

우리는 세상의 필연적 진리를 인식하고, 그에 따라 세상을 살아가는 게 아니다. 우리는 세상을 해석하고, 그에 따라 자유롭게 세상을 만들어간다. 우리가 자유롭게 만든 세상이 우리를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자유로운 우리가 다시 세상을 만든다. 세상 속 우리의 삶은 만들어지는 대상이 만드는 주체가 되고, 만드는 주체가 다시 만들어지는 대상이 되는 아이러니다. 마치 화가 에셔(Maurits Cornelis Escher)의 〈그리는 손〉이 보여주는, 손을 그리는 손을 그리는 손과 같다.

이러한 자유롭고 아이러니한 세상에서 우리를 서로 돕고 연대하며 함께 살도록 해주는 것은 세상의 거창한 필연적인 진리가 아니다. 그것은 작은 일상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다. 자유롭고 아이러니한 세상의 영웅이란 거창한 필연적 진리를 내세우고 실현하겠다고 큰소리치는 자가 아니라, 작은 일상의 고통을 나누며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작은 일상의 고통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따뜻한 희망을 품고 서로 돕고 연대하며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작은 사람들이야말로 참된 영웅이다.

희망찬 새해임에도 화재로 생계수단을 잃은 이들처럼 작은 일상의 고통이 줄어들 것이라는 희망을 품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세상이 주목하는 옳고 그름을 가리는 큰일을 앞세워, 작은 일상의 고통을 못 본 채 하거나, 심지어 그 고통을 그 큰일의 도구로 삼는 행위는 그들에게 작은 소중한 희망조차 짓밟는 일이다. 작은 일상의 기쁨과 아픔을 나누며 서로 돕고 연대하며 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에서 “해가 저물면 둘이 나란히 지친 몸을 서로에 기대며 그날의 일과 주변 일들을 얘기하다 조용히 잠들고 싶”다. 나와 너의 아름다운 일상으로 초대한다. 


내게로 와 줘 내 생활 속으로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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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라면
모든 게 새로울 거야

 

김광식 서울대·인지문화철학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 공과대학 과학·기술·철학과에서 인지문화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서울대 기초교육원에서 교양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인지과학의 성과를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인지철학자이자, 여러 문화현상의 실천적 대안을 모색하는 문화철학자이다. 저서로 『BTS와 철학하기』, 『행동지식』, 『김광석과 철학하기』, 『다시 민주주의다』(공저), 『세상의 붕괴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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