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종교 한국사회에서 ‘종교학’은 곧 한국학이자 문화인류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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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종교 한국사회에서 ‘종교학’은 곧 한국학이자 문화인류학이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4.01.27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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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종교학: 성찰과 전망 | 정진홍·김태연·장석만·이진구·임현수 지음 | 모시는사람들 | 592쪽

 

이 책은 한국에서 종교학이 성립되는 과정과 그 배경을 살펴 한국의 종교학의 특징을 규명하고, 그 현재의 의미를 파악하며, 한국 종교학의 전망을 검토한다. 학문의 장은 물론 사회-문화 전반에서, 특히 종교에 대한 그리고 사회 각 부문에 대한 종교학의 위치, 의미, 효용에 관한 논의를 진작시키기 위해 종교학의 출현과 전개, 세계 종교학의 현황, 한국 종교학의 등장과 전개, 미래를 심도 있게 고찰한다. 

오늘날 인간과 세계에 대한 종교적인 관점과 설명은 더 이상 유효성과 설득력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적어도 그 영향력이 현저히 감소하고 있다. 그러한 추세는 점점 가속화되어 종교의 종말을 점치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탈종교 현상이 두드러진 것이 이러한 예측을 확신으로 바꿔 나간다. 그와 맞물려, 전통적으로 신학은 물론 철학이나 문학에서조차 신의 대행자, 신의 최애자로 간주되던 인간의 정체성과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또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종교적인 이해 대신 과학적인 설명과 이해가 보편타당한 진리로서 종교의 그것을 빠르게 대체해 나가고 있다. 흔들리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종교인 셈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전통적이고 제도적인 종교가 쇠락하는 것이 ‘종교 교체’의 일환이라는 징후도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마음 챙김과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이 명상과 같은 종교적 실천의 활성화로 나타나고 사회 문화 곳곳에서 종교적 열정의 변종이라고 할 팬덤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도 그 예다. 무엇보다 성장과 경쟁의 가속화, 변화와 다양성의 가속화, 탈근대주의와 탈인간중심주의에 비례하는 소외 현상의 가속화 등으로 말미암아 종교적인 것에 대한 수요는 다시 늘어나고 있다.

포스트휴머니즘 시대에 인간의 정체성을 새롭게 규정하고 거기에 도덕성, 윤리성, 신뢰성을 부여하는 데서 종교의 새로운 역할을 찾을 수 있다. 인류세 시대의 기후위기, 지구위기에 즈음하여 인간의 새로운 의미 물음을 제안하는 것도 종교적인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종교 교체, 종교의 새로운 포지셔닝 시대에 그 존재감이 두드러지는 것이 ‘종교학’이다. 종교학은 끊임없이 종교의 퇴행을 주시하면서 종교에 대하여 말하고, 현재의 종교를 의미화하며, 종교의 미래를 전망한다는 점에서 종교와 사회의 경계선상에 자리하여 새로운 종교 자장을 생성해 낸다.

종교학은 종교(들) 또는 종교적인 것(들)을 “비고백적, 비종교적 관점”에서 역사적, 조직적, 비교적 방식으로 연구한다. 종교학자들은 종교에 견인되지 않도록 유념하는 일을 천형처럼 안고서 학문의 길을 걸어간다. 다른 한편, 종교 현상의 다면성으로 말미암아 종교학은 필연적으로 다학제적 성격을 띠고 있어서, 언제나 ‘정체성 혼란’을 넘어 ‘정체성 와해’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종교의 발언’이 압도적인 한국사회에서, ‘종교에 대한 발언’의 영역을 확보해 온 종교학의 역정은 의미 있는 성과를 구축하고, 내일을 전망할 수 있게 되었다.

종교학은 종교를 다루어 온 기존의 철학, 역사학, 사회학, 인류학, 심리학 등으로부터는 그 ‘학문 분야로서의 독자성’의 가능성을 의심 받고, 종교학의 주 대상인 종교(계)로부터는 종교의 신성(神聖)성이라든지 초월, 절대와 같은 가치를 훼상하는 반종교적 지성의 담론일 뿐이라는, 폄훼와 견제와 비판을 받는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면서 그 학문적 여정이 진행된다. 그러므로 종교학은 여전히 ‘종교’와 ‘종교학’을 거듭해서 정의하고, 또 새롭게 재 정의하는 일로부터 자기 과업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현행의 대부분의 학문 분야가 그러하듯이 한국 종교학은 서구로부터 유래한 측면이 강하다. 초기에는 기독교 신학과 종교학의 의미 구분이 없이 이해되었다. 그러나 이미 서구 종교학에서도 중요하게 시도되고, 종교학의 핵심 과제로서 다루어지듯이 종교 개념의 동서양의 차별성과 함께 종교학의 범주와 정의도 한국적인 것이 요구되고,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학문적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 종교를 어느 하나의 기준으로 자리매김하여 다른 종교를 비종교로 치부할 수 없듯이 종교학도 세계적인 단일 체제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 종교학은 그것이 ‘(근대)학문 분과’로서 뚜렷한 자리매김을 하기 이전, 최남선이나 이능화 등 한국학 연구의 선구자들로부터 이미 형성되기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본격적인 한국 종교학의 전개는 1960년대 서울대학교에 종교학과가 설치된 것을 시작으로 각 대학에 종교학 관련 학과가 설치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초기에 종교학은 그 담당자의 주체적 역량이나 배경, 그것을 요구하는 종교계와의 관계 등으로 말미암아 신학의 아류로 치부될 위험에 처하기도 하였으나 여러 종교학회가 잇달아 창립되고 종교학자들의 학문 공동체가 형성되는 것과 맞물려 이 문제는 점점 극복되어 갔다.

이후 한국 종교학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여 종교현상학, 인지과학과 같은 인접학문과 연계하고 연대하거나 종교다원주의 및 종교간 대화와 같은 ‘메타종교’에 대한 연구로 영역을 넓히는 등의 성장과 확산을 계속하고 있다. 한국 종교학은 이제 하나의 지향점과 구심점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종교학들’을 포용하고 ‘중심들’을 포괄하는 세계 종교학의 흐름 속에서 스스로도 그러할 뿐 아니라, 그대로 세계 종교학의 뚜렷한 소통 주체로 자리매김해 나가고 있다. 세계 종교학 속에 자기 자리를 확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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