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역사적 경관을 보존해야 하며, 그것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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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역사적 경관을 보존해야 하며, 그것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4.01.27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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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는 왜 역사를 보존하는가 | 로버트 파우저 지음 | 혜화1117 | 336쪽

 

“역사는 당장은 아닌 것 같아도, 장기적으로 볼 때 결국은 발전한다는 믿음이 장착되면서 오래된 것은 무조건 낡은 것이라는 인식에 변화가 생겼다. 지나간 것들은 오래되었으니 곧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어야 할 것이었으나 이제는 아니었다.

역사와 소통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유산으로 평가 받기 시작했다. 특히 특정 인물 또는 주요 사건과 관련 있는 건물이나 그 시대를 보여주는 지역의 역사적 경관은 각별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면서 오늘날 우리가 흔히 접하는 역사적 경관의 보존 노력이 도시들마다 펼쳐지기 시작했다. 본격화한 정도가 도시들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런 시도 자체는 최근의 일만이 아니다.

이런 역사적 경관을 세계 주요 도시들이 어떻게 대해왔는지, 보존의 배경으로는 어떤 맥락이 작동했는지 호기심이 생겼다. 호기심을 따라가보니 거기에는 권력자들의 정통성 획득부터 애국주의와 애향심의 고취, 시민정신의 구현까지 다양한 목적과 의도가 배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역사적 경관의 이면은 물론 도시의 역사까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 로버트 파우저, 본문 중에서

 

저자 로버트 파우저의 관심사는 언어와 도시라는 두 개의 커다란 축을 이루어 발전한다. 이 두 개의 축은 각각의 새로운 관심사를 향해 뻗어나가기도 하고, 서로 조화를 이루어 더 넓은 영역을 구축하기도 한다. 이를 위해 그는 꾸준히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고, 언어의 양상을 둘러싼 전 세계 곳곳의 기류를 포착하기 위해 노력하며, 온 세상의 수많은 도시들을 틈나는 대로 다니며 두 발로 걷고, 관찰하고, 탐구한다. 도시를 향한 그의 탐구는 보이는 것만이 아닌, 그 도시의 역사와 맥락으로 뻗어나가기도 하고,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다녀온 도시들마다의 변화상을 통해 그만의 시각으로 도시의 정체를 포착해내기도 한다.

전 세계 주요 도시들이 지키고 보존해온 역사적 경관의 풍경들, 그 풍경들을 지키고 만든 것은 누구인가, 그 도시들은 왜 역사를 보존하고 지켜왔는가. 우리에게 지극히 당연한 당위로 받아들여지는, 도시가 품고 있는 역사적 경관의 보존은 과연 그렇게 당위들이 축적된 결과이기만 한 걸까?

한 번도 정면으로 마주한 적 없는 이 질문을 시작으로 저자가 호출한 도시들은 동양부터 서양까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주요 도시부터 도시의 한 지역까지, 크고 작고, 넓고 좁고, 오래되고 비교적 새로운 곳들까지 종횡으로 넘나든다. 그렇게 도시들마다 간직해온, 도시들의 역사적 경관을 둘러싼 이면을 들여다보니 뜻밖에도 거기에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다양한 이유와 배경, 맥락, 논리가 작동하고 또 분출하고 있었다.

짧게는 몇백 년, 길게는 수천 년을 이어온 도시들에 쌓여 있는 숱한 역사의 집적물들 가운데 무엇을 남기고 보존할 것인가를 둘러싼 결정의 이면에는 다양한 욕구와 욕망, 이해의 반영, 의도와 기획이 전제되어 있기도 하고, 또 때로는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으나 개인과 시민들의 인권과 자유의 추구를 향한 노력이 저절로 만들어낸 것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오늘날에 그러한 것처럼 그때 그 시절에도 다양한 좌절과 분투의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시행착오 또는 쟁투와 승리의 전리품으로 남아 있는 곳들도 있다.

저자는 우리가 왜 역사적 경관을 보존해야 하며, 그것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를 되묻는다. 이를 위해 저자는 종교라는 키워드로 로마와 교토를 엮어서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맥락을 살피기도 하고, 애국주의 고취를 위해 권력자들이 지난 시대의 풍경을 어떻게 되살리려 했는가를 미국의 윌리엄즈버그와 일본의 나라를 통해 냉철하게 분석하기도 한다. 또한 애향심이라는 아름다운 대의명분을 내세워 화려했던 시절을 되살리려 한 여성들의 분투의 결과를 미국의 찰스턴, 뉴올린언스, 샌안토니오를 통해 살피는 동시에 이들이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어떻게 소외시켰는가 또한 복합적으로 아우른다.

저자의 탐구는 또다른 방향으로 확장한다. 미국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와 브루클린하이츠, 독일 베를린의 크로이츠베르크와 쇠네베르크를 통해 예술가와 지역민들이 자신들의 동네를 지키기 위해 치른 고군분투의 현장을 들여다봄으로써 그것이 가진 의미와 사회적 맥락, 그것이 가진 또다른 얼굴을 조우하게 하고, 전쟁의 상처를 평화의 상징으로 환원하려는 일본 히로시마와 독일 드레스덴을 통해 전쟁의 책임에 대한 이들 도시의 다른 태도를 꼬집기도 한다. 

또한 세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제국주의 수도들 다섯 곳(런던 · 파리 · 이스탄불 · 베이징 · 빈)을 묶어 이들 도시들의 공통점과 차이를 통해 제국의 역사를 이들 도시가 어떻게 기억하고 도시를 통해 구축해 왔는가를 살피는 것 또한 남다른 인식을 갖게 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역사적 경관의 다양한 맥락의 연장에서 한국의 경주와 전주, 서울의 북촌마을 등을 살펴 정치적 상황과 자본주의, 주민들의 이해에 따라 오늘날 우리에게 남은 이들 지역의 역사적 경관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것 또한 저자가 펼치는 탐구와 사유의 결과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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