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노인 할인 없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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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노인 할인 없애자
  •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 승인 2024.01.27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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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명 교수의 〈생활에세이〉

 

이준석이 노인 지하철 무료 정책을 없애겠다고 하니 노인회 회장 할아버지가 발끈하고 나섰다. 이준석이 장가도 안 가고 아이도 없으니 물정을 모른다고 했다. 그게 장가 안 가고 아이 없는 것 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모를만큼 지각이 없어 보인다. 

나는 이준석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번 정책은 찬성이다. 지하철 적자의 원인이야 많겠지만 수많은 노인들의 탑승 요금을 안 받는 것도 분명히 한 원인이다. 날이 갈수록 노인 인구는 많아지고 생산 인구는 줄어드는데, 장차 인구의 30%, 40%를 차지할 사람들에게 공짜 혜택을 줄 수는 없다. 이를 폐지하고 지하철과 상관 없는 노인들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노인 지원책을 강구하자는 이준석의 말이 백번 옳다.

수십 년 전 내가 학교 다닐 때 버스 할인을 받았는데, 그것도 사실 이상한 일이었다. 요새도 버스나 다른 서비스 업종에 학생 할인이 많은지 모르겠다. 당시 한 신문에서 학생 할인보다 저소득층 청소년 할인이 옳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내가 생각지 못한 문제를 알려주어 아직도 기억하는 것이다. 그나마 먹고 살 만한 대학생에게는 할인을 해 주고 학교도 못가는 빈곤 청소년한테 요금을 다 받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옳은 말이다. 학생이든 노인이든 특정 신분이나 연령층에 특혜를 주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금전적 지원이면 금전이 모자라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 옳고, 정서적 지원이면 정서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이 옳다. 생활의 여유를 누리는 사람에게 노인이라고 요금을 안 받는 것은 옳지 않다. 노인회 회장은 자기들이 조국 선진화의 주역이었으니 그 정도의 혜택은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무 상관 없는 얘기다. 그렇게 따지면 온갖 사람들이 온갖 이유로 혜택을 주장하게 된다.

특정 이해집단들이 나라의 전체 형편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이익만 좇는 꼴을 보기 흉하다. 보기만 흉한 것이 아니라 사회의 이익을 반하는 나쁜 짓이다. 이익 단체의 역할이 원래 그런 것이기는 하지만, 남들이 보기에 웬만해야 한다. 의사 숫자가 부족하여 지방 의료가 무너질 형편인데 의대 정원 늘리기를 결사 반대하고 온갖 해괴한 논리를 갖다 붙이는 의사 집단도 마찬가지다. 

꼭 집단만의 문제는 아니다. 개인 차원에서 보더라도 이런 일이 너무 많다.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고, 주위는 아랑곳없이 자기 이익만 무리하게 챙기려 드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범죄는 아니더라도 도덕적으로 용납하기 힘든 행동들을 너무 많이 한다. 이런 유전자도 타고 나는 모양이다. 그러면서 뭔가 잘못되면 법과 제도와 정부를 탓한다. 깔려 죽어도 정부 탓, 차에 치어도 시스템 탓, 떨어져 다쳐도 제도 탓이다. 그런 점이 없지는 않지만 개인 책임도 마찬가지로 없지 않다. 

1990년대인가? 천주교를 중심으로 ‘내 탓이요’ 운동이 인 적이 있다. 사회의 잘잘못과 사람 사이의 불편함이 내 탓이란 생각을 하고 착하게 살자는 운동이었다. 자동차 뒷창에도 그 구호를 붙여 다니곤 했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 이제 이런 건 없어지고 모두가 ‘네 탓’이 되어버렸다. 

요즘 와서 ‘내 탓이요’ 하면 패배자이거나 체제의 비리에 눈감는 비겁한 사람이 되어 버릴까? 아니다. 바로 이런 것이 시민의 덕성이다. 법과 제도만으로는 결코 좋은 사회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양보와 절제와 관용과 인내의 미덕이 뒷받침되어야 좋은 사회를 이룰 수 있다. 노인들의 지하철 공짜 폐지에 찬성한다.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림대학교 정치행정학과 명예교수로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 도쿄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한글문화연대 대표 등을 지냈으며, 한국정치학회 학술상, 외솔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 『담론에서 실천으로: 한국적 정치학의 모색』, 『단일 사회 한국: 그 빛과 그림자』, 『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 한국 불교, 이것이 문제다』, 『대한민국 정치사』, 『한국 정치의 성격』, 『정치란 무엇인가: 김영명 교수가 들려주는 정치 이야기』 등 다수가 있다. 수필집 『봄날은 간다』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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