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김성도 교수, ‘불교와 디지털의 절묘한 만남’ ··· 프랑스 가톨릭 아카데미(Académie catholique de France) 본부 특강
상태바
고려대 김성도 교수, ‘불교와 디지털의 절묘한 만남’ ··· 프랑스 가톨릭 아카데미(Académie catholique de France) 본부 특강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4.01.26 15: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해외 학술강연]

 

      1월 24일 프랑스 파리 소재 콜레주 데 베르나르뎅에서 특강을 진행 중인 고려대 언어학과 김성도 교수

고려대 언어학과 김성도 교수(세계 기호학회 부회장)가 2024년 1월 24일 프랑스 인문학과 예술 교육을 담당하는 대표적 복합문화공간 명소인 파리 소재 콜레주 데 베르나르뎅(Collège des Bernardins)(공식 명칭은 ‘프랑스 가톨릭 아카데미 Académie catholique de France’ 본부)의 초청을 받아 특강을 가졌다. ‘신학과 기술 Théologie et Technique’을 대주제로 한 세미나에서 ’불교와 디지털의 절묘한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특강을 진행했다.

콜레주 드 베르나르뎅은 유럽 최초의 대학 발상지였던 파리대학에 소속된 기관으로서, 13세기 시토(Citeau)회 소속의 신학교로 자리잡았고 교황 이노센트 4세의 후원 아래 건립되었다. 1789년 프랑스 혁명까지 시토회 수도원으로 사용되었으며, 건물은 프랑스 역사 사적지로 등재되어 있다. 2008년 프랑스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아 전면 보수를 거친 이후 신학 교육과 함께 예술 문화, 인문 분야의 강연 및 공연을 진행하고 있으며, ‘생명의학 윤리’, ‘경제, 인간, 사회’, ‘디지털의 도전 앞에 선 인간’ 등 모두 6 개의 연구 축을 설정해 국제적 석학들이 참여하는 공동 연구를 선도하고 있는 명실상부한 프랑스 최고의 민간 학술 문화기관이다. 이곳에서 한국인 학자는 물론 아시아 학자를 초빙하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다. 이 세미나의 청중은 주로 신학, 미술사, 철학, 역사학을 비롯한 파리의 인문학 전공자들이다. 

김 교수는 불교와 동아시아의 만남이 동아시아 사상의 형이상학을 비롯해 동아시인들의 윤리, 미학, 언어 사용에 미친 엄청난 무의식적 영향력을 환기하는 것을 시작으로 강연을 개시했다. 특히 김 교수는 다소 호전적인 물음으로서 만약 불교가 동양이 아닌 서양으로 먼저 전파되었다면 서양 기독교 문명이 보다 평화롭고 여성적이며 생태적인 양상으로 발전했을 것이라는 가설을 레비-스트로스가 『슬픈열대』에서 제기한 가상적 물음을 재해석해 새롭게 제시했다. 이어서 김교수는 이 같은 불교의 평화주의와 관용정신의 근거로서 불교도상학과 불교예술의 역사에서는 서구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에서 목도되는 도상파괴주의(iconoclasm) 또는 도상(이미지)충돌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대한 진취적이고도 열린 정신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을 부각했다. 

이런 맥락에서 김교수는 중국과 일본의 초기 불교목판인쇄물을 비롯해, 각각 세계 최초의 목판인쇄물과 금속활자 인쇄물인 한국의 무구정광다라니경과 직지심경, 그리고 팔만대장경의 디지털화를 비롯해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반가사유상(국보 78호, 83호)을 모티브로 불교예술작품의 가상공간화를 시도한 '사유의 방'과 메타버스 박물관 '힐링동산' 등을 예시로 제시하면서 현대의 마켓팅 용어로 비유해 동아시아의 불교도들은 당시의 최첨단 인쇄기술에 대해 ’얼리 어댑터‘에 견줄 수 있는 매우 개방적인 태도를 가졌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어서 김교수는 현재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불교의 명상·치유 프로그램을 비롯해 가상 세계에서의 몰입을 시도하는 불교 미술 작품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불교와 인공지능 윤리와 관련해서는 불교가 서양 중심의 가치 체계의 한계를 극복하며 근본적인 인간학적 정초를 수립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음을, 그리고 불교와 트랜스휴머니즘의 접점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연구가 가능할 것임을 시사하면서 논의의 전반부를 마무리했다.

이어 불교 전파와 더불어 동아시아에서 싹튼 찬란한 목판인쇄술을 불교와 테크놀로지의 친화성이라는 차원에서 파악하고, 세계 인쇄술의 역사에서 최고의 독창성과 문화적 저력을 증언한 직지심경과 팔만대장경의 의의를 이 같은 불교와 첨단 기술의 친화성이라는 인식론적 계보에서 짚어냈다. 그러나 김교수는 단순히 동아시아 불교 인쇄술의 예찬에 머무르지 않고, 동아시아 인쇄술의 찬란한 구가에 비해 그것이 서양의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술이 동반한 지식혁명, 과학혁명, 문화 혁명으로 이어지지 못한 근원적 원인의 하나를 동아시아 문명의 심미적 감수성과 정신 세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서예 미학에서 찾았다. 그 결과 정작 동아시아 3국은 19세기 중엽, 최초의 근대적 출판을 개시하는 시점에서 자국 활자를 모두 유럽인들이 개발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했음을 다양한 사료를 통해 입증했다. 물론, 동아시아 3국이 국가와 종교 기관들이 인쇄술을 독점하고, 지식의 보급이 극소수의 지인층에 한정되었다는 또 다른 결정적 요인을 첨언하는 것을 빼놓지 않았다.

강연 말미에 김교수는 불교와 디지털의 절묘한 만남의 또 다른 전범으로서 비디오아트의 시조인 백남준의 예술 철학과 그의 작품, 특히 TV 부다의 중층적 의미를 해석하여 한국의 전통 불교 문화에서 태동한 인쇄술에서 시작해 백남준의 작품 세계에서 계승되는 불교 세계관과 기술관의 계보를 재구성하는 담대한 시도를 하여 청중들의 다수를 차지하는 신학자, 미술사학자, 철학자, 기호학자들로부터 주목을 끌었다.

김교수는 결론에 해당하는 메시지로서, 각 민족은 특정 영역에서 고유한 천부성(génie)을 입증할 수 있으며, 한국 민족은 세계 최고의 목판술과 금속활자술, 특히 인간의 상상계를 뛰어넘는 불교경전의 총체를 판각하는 문화적 저력을 보여주었음을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첨단 테크놀로지와 예술을 접목한 천재 예술가 백남준의 예를 비롯해, 현재의 디지털 세계, 특히 전 세계 반도체와 스마트폰 시장을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첨단 언어 기술 분야에서의 천부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해석을 제시했다.

 

 

김성도 고려대·언어학

고려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파리 10대학에서 언어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고려대 언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기호학회 회장과 한국영상문화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세계기호학회 부회장과 세계아시아기호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로고스에서 뮈토스까지』,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 읽기』, 『기호, 리듬, 우주』, 『구조에서 감성으로』, 『생태복원의 인문학적 상상력』, 『언어인간학』, 『도시인간학』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그라마톨로지』, 『소쉬르의 마지막 강의』, 『의미에 관하여』, 『퍼스의 기호사상』 『기호학과 언어철학』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