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리망의(見利忘義) 견리사의(見利思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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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리망의(見利忘義) 견리사의(見利思義)
  • 민경찬 논설고문/연세대 명예교수·과실연 명예대표
  • 승인 2024.01.24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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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찬 칼럼]

지난 연말 한 언론사에서 2023년도를 돌아보는 사자성어로 “견리망의(見利忘義)”를 발표하였다. 그 뜻은 ‘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잊다’라는 말이다. 

대표적인 예로 정치인이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생각하기보다는 본인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에 몰입한다는 것이다. ‘출세’와 ‘권력’을 위해 자기편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정책을 입안하여 시행하기도 하고, ‘내가 무슨 일을 하든 나는 옳다’는 생각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이는 결국 대의와 가치가 상실된 사회를 만든다. 다른 한편에서는 분양사기, 전세사기, 보이스 피싱 등은 물론, 본인의 이익을 위해서는 가족과 친구까지도 버리는 슬픈 이야기가 종종 보도된다. 도덕과 윤리가 무너져 염치도 없고, 법도 없는, 나라 전체가 마치 각자도생의 싸움판이 된 것 같다는 인식이다. 

우리의 교육은 어떠한가? 부모가 자기 자녀가 어릴 때부터 자신의 편익만을 생각하게 하여, 다른 아이나 선생님의 피해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못 하는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당장 눈앞의 점수나 이익을 위해서라면, 사람 사이의 기본적인 도리조차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자식에게 가르치고 있다. 사회가 이러한 교육 환경에서 성장해온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다면 어떤 세상이 될까? 오늘의 일부 지도층을 포함한 여러 사례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는 매우 불행한 일이며, 결국 모두가 공멸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들이다.

우리의 고등교육은 어떠한가? 그동안 대학들은 각 대학의 교육과 연구에 대한 철학, 가치보다는, 당장의 재정확보와 평판을 위해 정부의 정책 방향과 획일적인 평가지표를 맞추는 경쟁에 몰입해왔다. 각 대학은 독자적인 비전과 특성을 찾아가며 긴 안목에서 발전시키려는 노력보다는, 시급한 재정확보를 위해 정부의 재정지원에 매달리는 것이다. 이는 또 다른 ‘견리망의’를 생각하게 한다. 

요즈음 교육부의 ‘글로컬대학’ 지원사업과 ‘무전공 입학’ 정책을 대하는 대학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교육부가 얼마 전 ‘신입생 30% 무전공 입학’ 정책을 인센티브와 연계하여 추진하겠다고 발표하자, 대학들은 당장 76억 원~155억 원 지원이 걸려 있고, 향후 글로컬대학 등 다른 지원사업에도 영향을 받을 것이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이 정책을 따르기도 한다. 이번에도 이 정책이 대학이 추구하고 싶은 방향과 맞지 않아도, 일정상 섬세한 준비가 불가능하더라도, 일단은 재정확보를 위해 최선을 다해 계획서를 제출할 것이다.

이번의 ‘무전공 입학’ 정책과 유사한 1995년 학부제, 2009년 자유전공학부, 2015년 프라임 사업 등의 경험이 있는 대학들은 이번에도 이 정책의 지속성과 더불어 인기학과 쏠림, 문·이과생의 불균형, 기초학문 고사, 대학 간 서열화 강화 등 여러 부작용을 심히 우려하고 있다. 이전의 ‘좋은’ 정책들은 장관, 정권이 바뀌면서 정책이 다시 바뀌었고, 대학 내부의 섬세한 준비과정이 없이 시행했기 때문에 지속하지 못 했다. 교육부가 ‘대학 자율’을 강조해왔지만, 사실상 강제적이며, 속도전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그동안 ‘대학이 정부 지원을 많이 받을수록, 학교 시스템은 더 망가진다’라는 이야기가 종종 나왔다. 5년 단위 정부, 1~2년 단위 장관 그리고 각 부처에 따라 재정지원 방향과 정책이 자주 바뀌어, 대학의 교육과 연구 환경에 왜곡을 가져오고, 대학이 일관성을 가지고 독자적인 방향을 유지하기 어렵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이 이번에도 ‘어쩔 수 없다’며 정부의 정책에 따라가는 것이라면 답답한 일이다. 이는 대학 발전, 학생 성공은 물론 국민과 국가의 미래를 진정으로 생각할 때 건강한 모습인가? 그렇다고 정부 탓만 하며 현재의 모습에 계속 머무르고 있을 것인가?

이제는 "견리사의(見利思義)"를 생각해야 한다. ‘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생각하다’라는 뜻인데,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대정신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현재 진행 중인 정부 정책에 대해서도 대학들은 재정확보 자체도 중요하지만, 보다 더 진솔하게 구성원들과 우리 학생과 사회의 미래를 고민하며 대응해나가야 한다. 국민은 대학의 생존 자체보다, 급변하는 시대를 살아야 하는 자녀들의 미래 준비, 일상의 삶의 안전과 질, 지역 및 국가 발전, 지구촌 문제 해결 등에 대한 대학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국민 입장에서는 세금으로 투자받는 대학이 이에 제대로 부응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정부의 정책 운영방식에도 문제가 많다. 그런데 이에 대한 정부 스스로의 변화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정부보다는 대학이 먼저 나서야겠다. 정부의 정책 집행에 따른 현장의 변화와 영향에 대해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요인 분석, 평가할 수 있는 대학이 앞장서는 일이다. 정부의 정책 운용방식과 정책 자체에 대해 긴 흐름에서 깊이 있게 분석 평가하고, 국민과 사회를 대상으로 강하게 문제를 지적하며 더 적극적으로 대안을 제시하자는 것이다. 대학들이 뭉쳐 경우에 따라 돌아올지 모르는 불이익도 감수하겠다는 의지와 용기를 보이자. 이것이 대학다운 모습이며, 대학의 진정한 발전은 물론 국민의 존경과 신뢰도 여기에서 기대할 수 있다.

며칠 전 열린 다보스 포럼은 ‘기후변화, AI, 사이버 안보, 에너지, 젠더 평등, 정치·사회적 양극화’에 관심을 모았다. 인류가 생존 자체를 걱정하는 대전환의 시대다. 대학은 학생 성공을 위한 개개인의 능력 함양과 더불어 더 건강하고 안전한 사회를 위한 태도와 역할도 강조해야 한다. 대학은 이제 각자도생, 공존의 단계를 넘어 미래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글로컬대학사업도 여기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견리사의’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대학이 앞으로 위협이 될 수 있는 대안고등교육과 차별화하는 일이며, 대학이 스스로 독자적인 길을 찾아가는 일이다.

 

민경찬 논설고문/연세대 명예교수·과실연 명예대표

연세대 수학과 명예교수로 연세대 대학원장, 대한수학회 회장, 국제퍼지시스템협회(IFSA) 집행이사 및 부회장, 교육과학기술부 정책자문위원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과학기술분과 의장, 포스코청암재단 이사, 국무총리 소속 인사혁신추진위원회 민간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과실연 명예대표, 태재학원 감사, 국가인재경영연구원 이사장, 기초과학연구원(IBS) 과학자문위원회(SAB) 위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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