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 교수단체 “교육부 무학과 정책 중단해야…기초학문 고사·대학 서열화 강화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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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 교수단체 “교육부 무학과 정책 중단해야…기초학문 고사·대학 서열화 강화 우려”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4.01.24 1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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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교수연대회의, 무학과 제도 규탄 기자회견
- 학문생태계 위협···“기초학문 고사 우려, 비인기 학문 교과목은 개설조차 안 될 것”

 

                   무전공·무학과 제도 강제 정책 중단 촉구 기자회견 (사진: 전국교수연대회의 제공)

교육부가 올해 대학입시부터 ‘무전공제’를 확대하기로 하면서 이에 대한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교육부가 대학 전공 구분 없이 신입생을 뽑은 뒤 일정 학년이 지난 뒤 전공을 결정하도록 하는 ‘무전공·무학과 선발’ 확대를 대학 재정지원과 연계해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교수단체가 일제히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무학과 선발이 인기 학과 중심으로 대학을 획일화하고, 대학 서열화를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전국교수노동조합, 전국국공립대학교수노동조합, 한국사립대학교수노동조합 등 7개 교수단체로 구성된 전국교수연대회의(교수연대회의)는 23일(화)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부는 재정 지원을 미끼로 대학에 무학과 제도를 강요하는 정책을 당장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교육부가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주기 위해 무학과 제도 확대를 추진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대학 현장은 무학과 제도가 가져올 기초학문 고사, 대학의 파행적 운영 등을 우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3일 대학가에 따르면, 2025학년도 대학 입시부터 학과나 전공을 선택하지 않고 입학하는 '무전공 입학제'가 대폭 확대될 전망이다. 앞서 교육부는 대학에 주어지는 인센티브식 재정 지원을, 대학이 자유전공학부처럼 전공을 정하지 않고 선발하는 학생 비중을 늘리는 것과 연계하는 내용의 ‘대학혁신지원사업 개편안 및 국립대학육성사업 개편안 시안(정책연구시안)’을 공개했다. 이 방안이 현실화하면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대학들의 무전공 선발 비중이 확대된다. 

이 시안에 따르면, 올해 대학혁신지원 사업비 중 30%가량을 무전공 선발을 확대하는 대학에 인센티브로 지급한다는 계획이다. “경직된 학사구조를 깨 첨단산업 분야에 필요한 융합형 인재를 길러내고, 학생들이 충분히 진로를 탐색한 뒤 전공을 선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자”는 게 교육부가 설명한 제도 취지다. 

수도권 사립대 51곳과 국립대 22곳 대상으로 이뤄진다. 이에 따라 서울대와 고려대, 성균관대, 한양대 등 서울 주요 대학들이 내년 무전공 학과 규모를 속속 확정하고 있다. 올해 대학혁신지원사업 총사업비는 8,852억 원, 국립대학육성사업비는 5,722억 원이다. 재정지원과 연계해 추진하는 사업인 만큼 재정난에 시달리는 대학들은 교육부 방침을 따를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교수연대회의는 "국립대학 육성사업을 통해 무학과 제도 도입을 더욱 노골적으로 강제하고 있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어 "현재 전공 중심 체제에서도 학생들은 전공 선택권이 없는 것이 아니다"며 "전과, 복수전공, 부전공, 마이크로디그리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기가 원하는 전공으로 바꿀 길이 열려 있다"고 정부의 정책 추진 배경을 반박했다.

또 "현재 일부 자유전공학부로 선발하고 있지만, 실패한 사례가 많고 실시하더라도 매우 제한적 규모로 시행하고 있다"며 "선진국들을 봐도 대규모로 무전공 제도를 운영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무전공 제도의 확대가 균형 잡힌 학문 발전을 해치고 기초학문의 고사, 대학의 파행적 운영, 학사관리 방치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도 내놨다.

교수연대회의는 "학생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공부가 아니라 인기 전공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무학과 선발 확대로) 대학은 다양한 전공의 조화로운 발전의 길을 걷는 게 아니라, 시류에 편승해 특정 전공에 편중된 시스템으로 구조 조정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무전공 선발이 학생들의 선택권을 넓히기보다 오히려 좁힐 것"이라며 "비인기 학문 교과목은 아예 개설이 안 돼, 그 공부를 하고 싶은 학생들이 공부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다수의 학생이 어려운 교과목보다는 듣기 쉬운 교과목을 듣고 전문성 없이 졸업할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교수연대회의는 "소수의 일부 학생은 알아서 커리큘럼을 짤 수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대다수 '인기 전공'의 졸업장을 따기 위한 수단으로 무전공 제도를 이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과거 비슷한 정책이 실패했던 전례도 있다. 정부는 1990년대 후반부터 대학이 학과가 아닌 학부·계열별로 학생을 모집하도록 하는 학부제를 도입했지만 취업에 유리한 학과에만 학생이 몰리는 등의 부작용이 심해지자 2008년 학부제를 폐지했다.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 도입 후 일부 대학들이 남는 법학과 정원을 활용해 자율전공학부를 신설했지만 경영학과 등으로만 학생이 쏠리는 비슷한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아울러 교수연대회의는 "대학은 장기적으로 교육 및 연구 목표를 가지고 운영돼야 하는데, 대규모의 무학과 제도 운영은 이를 어렵게 만든다"며 "대학은 비정규 교수를 선호할 것이고, 시설도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수준으로 대충 운영하려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무학과 제도가 대학 간 서열화를 굳힐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교수연대회의는 “무학과 제도의 대규모 시행은 ‘상위권’ 대학으로의 학생 쏠림을 강화할 것”이라며 “대학을 선택하는 기준이 ‘무엇을 공부할까’보다 ‘대학의 이름이 무엇인지’가 더욱 중요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따라서 지역대학들은 무학과 제도의 강제가 지역대학의 소멸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정책이라고 강력하게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교수연대회의는 “학생들에게 전공 선택권을 주는 것이라고 포장하지만 대학을 시장이 원하는 대로 구조조정을 하려는 의도가 핵심”이라며 “대학과 학생, 지역이 심각한 후유증을 앓을 가능성이 높고” 교육부가 원하는 방향의 구조조정이 진행된 후에는 이전 상태로 돌아가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교육부는 재정지원을 미끼로 교육 현장과 대학 시스템에 파행을 야기할 무학과 제도를 대학에 밀어붙이는 정책을 당장 멈추라"고 촉구했다.

교수연대회의에는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 전국교수노동조합, 전국국공립대학교수노동조합,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한국사립대학교수노동조합,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가 참여하고 있다.

 

남중웅 전국국공립대학교수노조 위원장은 "무전공·무학과는 언뜻 보기에는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한경쟁을 시키고 거기서 낙오되는 학생들은 중도 이탈과 같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 시사포커스TV 캡처

【기자회견문】


윤석열 정부는 재정 지원을 미끼로 
대학에 무학과제도 강제하는 행위를 당장 중단하라!  


교육부는 몇 년 전부터 사립대를 대상으로 대학혁신지원사업, 지방대학 활성화사업 등의 각종 지원비를 주면서, 융합 또는 무학과 자유전공으로 학생을 선발하도록 강요해왔다. 학령인구가 줄면서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는 사립대학과 지역대학들은 이 제도의 폐해를 면밀히 살펴보기 전에, 단지 지원금을 따내기 위해 이 제도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사립대학에서는 이 제도의 시행에 들어간 대학이 이미 20여 군데나 된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교육부는 재정지원을 미끼로 국립대들에도 무학과제도를 강제하기 시작하였다. 글로컬30 사업(지방대학 중 30곳을 선발하여 예산을 집중 지원)을 추진하면서, 무학과제도 등 과감한 구조조정을 중요한 선발기준으로 내세운 것이다. 올해는 국립대학 육성사업을 통해 무학과제도 도입을 더욱 노골적으로 강제하고 있다. 현 정부의 감세정책으로 인한 긴축 예산은 많은 국립대가 인건비, 공공요금, 학생복지 예산 확보에 어려움을 겪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기회로 교육부는 재정 지원을 받으려면 학생 정원의 30%를 무학과로 뽑으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주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지금의 전공 중심 체제에서도 학생들은 전공 선택권이 없는 것이 아니다. 전과, 복수전공, 부전공, 마이크로디그리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기가 원하는 전공으로 바꿀 길이 열려 있다. 무학과제도를 이미 시도해 보지 않은 것도 아니다. 과거 학부, 계열별로 학생들을 선발해 본 적도 있고, 지금도 일부는 자유전공학부로 선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실험 중 실패한 사례가 많고, 실시하더라도 매우 제한적 규모로 시행하고 있다. 다른 선진국들을 봐도 대규모로 무학과제도를 운영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대학 현장에서는 전체 대학들을 대상으로 강제되는 무학과제도가 가져올 기초학문의 고사, 대학의 파행적 운영, 학사관리 방치, 대학 서열화 강화, 지역 대학 구조조정 등을 우려하고 있다.  

첫째, 균형 잡힌 학문 발전에 장애를 초래하고 대학 운영에 파행을 야기할 것이다. 학생들이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공부가 아니라 소위 사회가 이야기하는 인기 전공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무학과제도를 통해서 들어온 학생들이 어떤 행태를 보일지 추측하기 어렵지 않다. 그로 인해 대학은 다양한 전공의 조화로운 발전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시류에 편승하여 특정 전공에 편중된 시스템으로 구조 조정될 것이다. 

만일 이 인기 전공이라는 것이 자주 변한다면 대학은 그에 대응해서 교수, 시설, 예산을 운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인기가 있는 과목이라 교수를 뽑았다가, 몇 년 뒤 인기가 없어지면 그 교수들을 다 퇴직시킬 것인가? 비싼 돈을 들여 만들어 놓은 실험실을 몇 년 후에 인기가 없어지면 한꺼번에 철거하며 자원을 낭비하겠다는 것인가? 대학은 장기적으로 교육 및 연구 목표를 가지고 운영되어야 하는데, 대규모의 무학과 제도 운영은 이를 어렵게 만들 것이다. 이러한 ‘변덕’에 대응하기 위해 대학은 비정규 교수를 선호할 것이고, 시설도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수준으로 대충 운영하려 할 것이다.

둘째, 무학과제도가 학생들에게 미칠 부작용은 훨씬 심각하다. 무학과로 들어온 학생들에게 대학이 개별맞춤식으로 공부하고 싶은 전공을 찾아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소위 우수한 학생들, 혹은 부모의 관리를 받는 학생들은 알아서 커리큘럼을 짤 수 있겠지만, 그런 학생들은 소수이다. 그리고 그런 학생들은 정말 공부하고 싶은 전공보다는 소위 ‘인기 전공’의 졸업장을 따기 위한 수단으로 무학과제도를 이용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에 많은 학생들은 어려운 교과목보다는 듣기 쉬운 교과목을 이것저것 듣고 아무런 전문성 없이 졸업하기 십상이다. 

또한 소위 ‘비인기 학문’ 교과목은 아예 개설이 안 되어, 그 공부를 하고 싶은 학생들이 공부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할 것이다. 무학과제도가 학생들의 선택권을 넓혀 주지 않고, 오히려 좁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향후 무학과로 들어온 학생들이 전공을 선택하게 될 때, 이미 전공을 선택한 학생들과의 갈등 문제, 학사관리 문제가 벌어질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셋째, 대학 간 서열화는 더욱 공고해질 것이고 지역 대학은 고사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 간 서열화 문제가 심각한데, 무학과제도의 대규모 시행은 소위 ‘상위권’ 대학으로의 학생 쏠림을 강화할 것이다. 무학과로 대거 뽑는다면 대학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이 될까? 무엇을 공부할까보다 더욱 대학의 이름이 중요해지지 않을까. 지역대학들은 무학과제도의 강제가 수도권 대학의 정원을 충원하는 조력책이자, 지역대학의 미달을 방치한 후 소멸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정책이 아닐까라고 강력하게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 정부가 특성화를 통해 지역대학을 살리겠다고 내걸었던 약속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렇게 부작용이 심각할 수밖에 없는 무학과제도를 교육부는 왜 강제하는 것일까? 무학과제도가 과거 일부 사립대학이 학과통폐합 등 자체 구조조정을 통해 정규 교수를 비정규 교수로 바꾸고, 돈이 벌리는 전공을 늘리려고 했을 때 동원한 수단이었다는 점에 힌트가 담겨 있다. 즉 무학과제도는 학생들에게 전공 선택권을 주는 것이라고 포장하지만, 교육이 지향해야 할 공공성이 아니라 대학을 시장이 원하는 대로 구조조정하려는 의도가 핵심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대학과 학생, 지역이 심각한 후유증을 앓을 가능성이 높은데, 교육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구조조정이 진행된 이후에는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전국교수연대회의는 다음을 요구한다.

첫째, 교육부는 재정지원을 미끼로 교육 현장과 대학 시스템에 파행을 야기할 무학과제도를 대학에 밀어붙이는 행태를 당장 멈추라. 

둘째, 긴축예산을 편성한 뒤 국‧사립대 정규과정 운영비용에 조건을 달아 사업비 방식으로 지원하는 행태를 즉각 중단하라. 

셋째, 국립대학 육성사업 지원을 무학과 제도 도입과 연결 짓지 말라. 자율성 원칙으로 국립대학을 지원 및 육성하겠다는 당초 취지에 맞게 국립대학 육성사업비를 배정하라.  

이러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조만간 현 정부와 교육부는 교원, 직원, 학생, 학부모의 분노와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명심하라.   


2024년 1월 23일 


공공적 고등교육정책을 요구하는 전국교수연대회의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 전국교수노동조합, 전국국공립대학교수노동조합,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한국사립대학교수노동조합, (사)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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