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과의 소통을 편리케 하는 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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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과의 소통을 편리케 하는 한류
  • 심두보 성신여대·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 승인 2024.01.21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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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한류가 뭐길래』 (심두보 지음, 어나더북스, 312쪽, 2024.01)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현상이었던 한류가 어언 수십 년을 헤아리며 진행 중이다. 이에 따라 한류에 관한 연구가 많아지고 담론이 풍성해졌다. 하지만 한류에 관해 쉽게 얘기하는 ‘안락의자’ 연구와 상품을 파는 것에만 관심을 두는 ‘수출’ 중심주의적 담론의 위험성을 짚기 위해 <한류가 뭐길래>를 집필했다.

책은 우선 한류의 정의 문제를 다뤘다. 한류가 국내에서는 산업으로서 더 많이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해외 소비자가 한국 문화상품을 선택하고 수용하지 않는다면 한류라는 현상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특히 각 지역에서 한류는 사회 내 하위문화의 특징을 보이며 시작해 보수 문화권력과의 문화정치적 갈등과 타협을 거쳐 일상문화로 진화했다. 이 책은 한류가 해외에서 펼쳐진, 한국 문화상품을 좋아하는 유행이자 현지의 대중문화 현상이라는 정의를 바탕으로, 한류의 ‘복합 요인성’, 한류의 ‘위치성’, 한류의 ‘관계성’, 한류의 ‘혼종성’이라는 네 가지 키워드를 통해 한류를 설명한다.

한류 발생의 복합 요인성과 관련해 <한류가 뭐길래>는 세계 문화 시장에서 성공하려는 문화 기획자와 생산자의 야망, 연예계에서 입신하려는 젊은이들의 땀과 눈물, 문화 간 소통에 능하고 비즈니스에 열정적인 문화 매개자의 역할, 국경을 초월한 팬덤의 행위성(agency), 대중문화의 생산·유통·소비에 영향을 미치는 국제 정치경제 역학과 미디어 기술의 발달에 대한 이해를 통해 한류를 더 깊이 분석할 수 있음을 풍부한 예시를 담아 설명한다.

<한류가 뭐길래>는 한류의 ‘위치성’에 관해 객관적인 시선을 던진다. “한류가 세계를 정복했다.”라는 식의 ‘국뽕’을 자극하는 언론 문구와 달리 케이팝과 한국 드라마는 해외에서 외국 수용자가 선택하는 수많은 문화 메뉴 중 하나일 뿐이다. 한국의 수용자가 ‘문화 다식가’(cultural omnivores)로서 블랙핑크를 좋아하는 동시에 임영웅 노래도 즐겨 듣듯이, 외국의 수용자도 케이팝을 포함해 미국·중국·일본 문화 등 다양한 문화상품을 함께 즐기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한류가 뭐길래>는 한류와 이문화 간 ‘관계성’에 주목한다. 사실, 해외 현지에 먼저 진입한 유사한 성격의 타국 문화가, 그리고 기대하지 않았던 문화 매개자가, ‘징검다리’가 되어 한류의 확산에 기여했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 한류 팬 다수는 원래 일본문화 팬이었다가 한국문화를 좋아하게 된 사람들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한·일전 승리’로 해석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한·일 문화 모두를 애호한다. 이문화 간 ‘관계성’과 ‘징검다리 효과’를 깨닫지 못하면 한류로부터 얻어낼 것은 ‘국뽕’밖에 없게 된다.

한류 열풍에 따라 한국인과 사진 찍고 싶어하는 것이 최근 인도인의 마음이다. * 왼쪽 사진: 지난 여름 인도에서 필자가 독사진을 찍으려고 할 때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인도 남자가 함께 찍기 위해 필자에게 다가오는 순간을 포착한 사진. * 오른쪽 사진: 당시 함께 동행한 다른 여성 한국인 학자도 동네 꼬마와 주부들에게 둘러싸여 사진을 찍었다. 사진 = 필자 제공

<한류가 뭐길래>는 한국 문화상품의 오락적 경쟁력에 대해서 분석한다. 일각에서는 그 연원을 ‘한국 문화는 원래 우수하다’는 식의 ‘문화 본질주의’ 혹은 일종의 ‘무속적 DNA’ 학설로 설명하는데 이는 학문적 게으름의 징표일 뿐이다. 대신에 이 책은 현대 한국 문화상품이 오랫동안 외국문화와 교섭해 이를 토착화하고, 국내 시장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오락적 품질의 향상을 실현한 문화과정(cultural process)의 여러 사례를 소개하고 설명한다. 결국 오랜 기간 혼종을 거친 한국문화가 식민주의, 전쟁, 독재, 민주화와 산업화 등 우리의 역사적 경험을 녹여낸 콘텐츠를 만드는 데 성공했고, 이것이 인류의 보편적 정서와 맞닿아 한류가 발생했다.

한류의 성격과 특징을 분석한 것에 더해, <한류가 뭐길래>는 한류를 ‘문화적 사유의 도구’로 활용한다. 이를 통해 전지구·아시아·국가·지역적 차원에서 전개되는 다양한 문화 현상과 이슈를 해석했다. 일테면 중국은 왜 자국에서 사용하지 않는 명칭인 ‘차이니즈 뉴이어’(중국은 설날을 ‘춘제’라 부름)를 대외적으로 고집해 타국과 갈등을 일으키는지, 코미디언 김경욱의 부캐 ‘다나카상’ 인기가 담고 있는 문화적 의미는 무엇인지, 걸그룹 피프티피프티 사태는 글로벌 문화산업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한국 드라마의 인종과 젠더 재현은 어떤 이슈를 담고 있는지 등을 분석했다.

정리하자면 <한류가 뭐길래>는 한류를 비판적 인문주의의 관점으로 사유하고, 글로벌 문화연구와 미디어 연구의 시선으로 탐구한다. 그러자니 한류를 문화와 산업, 근대성과 전 지구화, 대중문화와 소프트파워, 젠더·인종과 문화정치, 팬덤과 문화소비, 민족주의와 혼종성 등 여러 개념의 프리즘을 통해 다룬다. 하지만, 일반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끔 이를 쉬운 언어와 친숙한 에피소드에 담았다.

한류는 우리 민족 역사상 유례없는 쾌거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한류는 우리가 잘 났기에 만들어 낸 현상이 아니다. 한류는 외국에서 벌어지고 펼쳐진 현상이다. 즉, 해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만들어낸 현상인 것이다. 이 점에 대해 우리 한국인들이 잘 성찰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썼다. 외국인들이 우리 문화를 받아들여 한류라는 현상을 만들었듯이, 우리도 좀더 열린 자세로 외국인을 포옹하고 외국인과 소통하겠다는 교훈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한류는 우리 것이여!”라는 자세보다는 한류 현상을 통해 우리에게 손을 내민 외국인들과 좀더 소통하겠다는 겸허한 태도가 한류의 지속성장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한류가 뭐길래>가 우리 시대 문화의 의미와 역할에 관해, 그리고 변화하는 세계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이끌기를 소망한다.


심두보 성신여대·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성신여자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미국 위스콘신대학교(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싱가포르국립대학교(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 교수, 미국 듀크대학교(Duke University) 방문학자, 한국소통학회 회장, 성신여대 사회과학대학장을 역임했다. 그간 한류와 아시아 대중문화, 글로벌 미디어산업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으며, 저역서로 Pop Culture Formations across East Asia, 『포스트 차이나, 아세안을 가다』, 『미디어의 이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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