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삶의 패러다임으로서 공공성을 궁구하다
상태바
새로운 삶의 패러다임으로서 공공성을 궁구하다
  • 임의영 강원대·행정학
  • 승인 2024.01.21 15: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저자가 말하다_ 『공공성의 사상적 기초: 다름과 어울림』 (임의영 지음, 윤성사, 304쪽, 2024.01)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때

공공성은 정부가 국민이 기대하는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때, 정치적 의사결정과정이 민주적 절차에서 벗어날 때, 사회적 불평등이 심각하게 인식될 때 주로 사용되는 말이다. 사회주의가 몰락한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는 전지구적으로 지배적인 삶의 패러다임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으며, 한국사회에는 1997년 경제위기를 기점으로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경쟁 원리를 시장의 본질로 삼는 신자유주의 담론은 탈규제, 민영화(상업화), 시장화, 개방화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여 인류가 보다 발전된 세상을 함께 누릴 수 있다는 희망을 전파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전도사역을 자임했던 다보스포럼에서도 고백했듯이 신자유주의 기획은 실패했다.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확대를 명분으로 정부의 축소를 재촉함으로써 정부의 공적 기능을 약화시켰다. 강화된 자본권력은 민주적 정치과정을 자신의 도구로 전락시켰다. 분배 및 재분배는 없는 자에게서 가진 자에게로 부를 이전하는 것으로 전도됐다. 정부의 공적 기능 약화, 민주적 정치과정의 도구화, 분배 및 재분배의 전도는 사회적 불평등을 악화시키고, 다시 악화된 불평등은 정부, 정치과정, 분배를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그리고 있다. 공공성 담론은 신자유주의 기획의 실패에 직면하여 삶의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하는 일련의 기획들 가운데 하나다. 이 책은 비록 모퉁이 돌에 불과할지라도 패러다임 전환에 필요할까 하여 조심스럽게 내놓은 것이다.


공공성의 이념, 원리, 실천전략의 구상

공공성은 공을 우선시하고 사를 뒤로 미루는 것이 아니라 공과 사의 조화를 추구하는 이념이다. 그것은 다양한 차원에서 다양하게 표현된다. 이를테면 철학적으로는 보편과 특수의 조화, 정치적 차원에서는 공적 권위와 사적 자율의 조화, 경제적 차원에서는 공익과 사익의 조화, 사회적 차원에서는 사회와 개인의 조화, 제도적 차원에서는 정부와 시장의 조화로 표현된다. 다양한 차원에서 공과 사는 늘 긴장관계에 있으며 때로는 균형점에서 멀어지는 원심력이 더 강하게 작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균형점에 접근하는 구심력이 더 강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신자유주의는 원심력을 강화한다. 공공성 담론은 구심력을 강화하고자 한다. 

공과 사의 조화를 실현하기 위한 원리는 다음과 같이 형식화할 수 있다. “공동체의 행위 주체가 민주적 절차를 통해서 정의의 가치를 실현한다. 단 절차와 내용은 변증법적 관계에 있다.” 행위 주체는 정부, 시민, 시민단체 등등을 말한다. 민주적 절차는 공개성, 개방성, 대표성, 참여, 토의, 공론장 등과 관련된다. 정의의 가치는 안전, 자유, 평등, 책임, 신뢰, 공정, 형평 등과 관련된다. 절차와 내용이 변증법적 관계에 있다는 말은 절차적으로 민주주의와 내용적으로 정의의 가치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동시에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공성을 실현하기 위한 실천전략은 철학적으로 존재론, 인식론, 윤리론을 토대로 구성된다. 실천전략은 존재론적으로는 개별성이 아니라 관계성에서 존재의 근거를 찾는 관계적 존재론을, 인식론적으로는 인식 주체가 대상을 도구가 아니라 목적으로 인식하는 목적적 인식론을, 윤리론적으로는 책임을 개인에만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공유하는 공유적 책임론을 토대로 한다. 관계적 존재론에서는 인간과 자연의 공생, 사회적 연대와 공동체적 삶의 가능성, 사회 조정 기제로서 적절한 거버넌스 양식을 모색하는 전략이 도출될 수 있다. 이것을 공(共)-전략이라고 한다. 목적적 인식론에서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의 인격적 소통을 통해 공감을 나누는 공론장의 형성과 공론장을 토대로 하는 민주주의의 활성화, 자연과의 생태친화적인 교류의 가능성을 찾는 전략이 도출될 수 있다. 이것을 통(通)-전략이라고 한다. 공유적 책임론에서는 재분배를 통해 불평등을 완화함으로써 진정한 자유를 실현하고, 인간과 자연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는 전략이 도출될 수 있다. 이것을 인(仁)-전략이라고 한다. 세 가지 전략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상호의존적인 관계에 있다. 그래서 공공성의 실천전략을 ‘공-통-인 전략’이라고 명명한다.

사상의 광맥을 캐며

공공성은 아직도 많은 연구를 기다리는 큰 개념이다. 개념의 깊이와 넓이를 심화하고 확대하기 위한 방법 가운데 하나는 다양한 사상가들의 사상을 살펴보는 것이다. 이 책은 사상의 광맥에서 공공성의 담론 자원을 캐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를 위해 공공성의 실천전략을 토대로 지난 30년 동안 공부한 사상가들을 다름과 어울림의 관점에서 배치했다. 다름은 비교를 통해 사상가의 사상을 보다 명확히 드러내는 데 유익하고, 어울림은 더 많은 공공성을 실현하는 논리를 구상하는 데 유익하다.

책은 공공성을 문명사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사상가로 문명의 타락을 강조한 장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와 문명의 진보에 대한 신념을 보인 애덤 스미스(Adam Smith)를 맨 앞에 배치했다. 공-전략의 측면에서는 거버넌스의 핵심적 주체인 정부와 관련해서 효율성을 강조한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과 민주성을 강조한 드와이트 왈도(Dwight Waldo)를 배치했다. 통-전략의 측면에서는 공론장과 관련해서 설득을 통한 합의를 추구하는 화해의 공간으로서 공론장의 복원에 초점을 맞춘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와 다양한 방식으로 구조화된 지배와 피지배의 권력관계를 극복하기 위한 담론 투쟁의 공간으로서 공론장을 창출하는 데 초점을 맞춘 샹탈 무페(Chantal Mouffe)를 배치했다. 인-전략의 측면에서는 정의, 자유, 책임의 문제에 초점을 맞췄다. 정의와 관련해서는 단순 평등 원리에 천착한 존 롤스(John Rawls)와 복합 평등 원리에 천착한 마이클 왈저(Michael Walzer)를 배치했다. 자유와 관련해서는 소극적 자유를 대표하는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과 적극적 자유를 대표하는 카를 마르크스(Karl Marx)를 배치했다. 책임과 관련해서는 의무론적 책임론을 제시한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와 목적론적 책임론을 제시한 한스 요나스(Hans Jonas)를 배치했다.

어느 사상가를 하나의 입장으로 한계 짓는 것은 부당하다. 사상가들은 그렇게 극단적이지 않다. 사상가들은 자신들과 다른 입장에 대해 비판적이기는 하지만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열린 태도를 보인다. 다만 자신의 원칙이 무너지지 않는 범위에서 다른 주장을 인정하거나 수용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사상가들에게서 어울리는 점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서 사상가들의 사상을 공공성의 관점에서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 어느 정도 확인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이 책에서 다룬 사상가에 대한 또 다른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 다루지 못한 수많은 사상가들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공성에 대한 더 많은 사상적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사족: 희망 나누기

너무나 상식적인 것이지만 공공성의 관점에서 살펴본 사상가들에게서 발견한 것은 첫째, 사상가들은 시대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시대의 아들로서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와 성실하게 이야기했다. 둘째, 사상가들은 비판적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그 시대의 한계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했다. 셋째, 사상가들은 더 나은 세상을 꿈꿨다는 것이다. 어쩌면 단테가 『신곡』에서 말한 것처럼 지옥은 희망이 없는 상태일지 모른다. 공공성 연구는 시대와 이야기하고, 용기 있게 비판하며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나누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임의영 강원대·행정학

강원대학교 행정•심리학부 교수. 전공분야는 행정철학과 관료제이며, 연구는 공공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서로 『스키너의 행동주의적 인간관』, 『민주주의와 행정윤리』, 『행정철학』, 『형평과 정의』, 『생각을 여는 행정학』, 『공공성의 이론적 기초』, 『관료제의 이론적 기초』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Karl Polanyi의 내포 개념과 공공성」, 「공공성의 철학적 기초: Karl Jaspers의 실존적 소통과 책임」, 「공공성의 사상적 기초: B. 스피노자의 코나투스(conatus)를 중심으로」, 「공공성의 정치철학적 기초: N. Machiavelli의 권력관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