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하기, 이해하기, 적용하기, 내다보기’의 실천적 관점으로 읽는 쇼펜하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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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하기, 이해하기, 적용하기, 내다보기’의 실천적 관점으로 읽는 쇼펜하우어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4.01.15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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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펜하우어, 행복은 농담이거나 완전무결한 환상 | 셀린 벨로크 지음 | 류재화 옮김 | 자음과모음 | 228쪽

 

이 책의 저자 셀린 벨로크는 쇼펜하우어 철학의 본질을 관철해 우리들이 철학 이론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실제 삶에 응용하도록 돕는다. 우리가 스스로를 직접 진단하고 처방하는 네 단계의 독법 과정을 거쳐 쇼펜하우어의 철학 세계를 보여주고, 쇼펜하우어적 통찰과 수행을 제안함으로써 우리를 보다 나은 삶으로 인도한다.

불교의 영향을 받은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극단적인 비관주의로 다소 무겁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접근 가능한 사유의 여정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매우 유용한 철학이다. 저자는 우리의 부정적인 습관들과 잘못된 가치, 기대 등을 확실히 내려놓고 그것들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급진적이면서도 독창적인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나’라는 개체성과 인칭성에 너무 집중하지 말고, 항상 나 자신을 ‘비인칭’ 주어로 놓으라고 당부한다. 이는 단순히 나를 3인칭으로 만드는 문제가 아니다. 마치 영어나 프랑스어의 비인칭 주어 ‘it’과 ‘il’의 용법처럼, 나를 녹여 자연 속으로 흘려보내는 일이다.

쇼펜하우어는 말한다.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갈망하는 대상을 취해 욕망을 충족하거나, 좋은 순간을 그저 만끽하는 것이다. 원하는 것을 ‘갖는’ 것과 ‘누리는’ 것 중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모두 행복하다고 ‘믿어야 하는’ 전제가 숨어 있다. “행복은 감각이 아니라 생각”일 뿐이며, 그 생각은 찰나의 만족감이 불러온 착각이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는 묻는다. “과일 하나를 따 먹으면 더는 배가 고프지 않은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이다. 인간은 “본능에 예속된 존재”며 “행복은 또 다른 결핍”으로 대체되고, “욕망의 대상은 항상성이 없어 소멸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는 회고한다. “행복이 그저 인간의 광기와 방황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내 삶이 전멸했다는 불변의 증거다.” 그러니 행복이란, 이 얼마나 희망적인 농담이며 완전무결한 환상인가. 만약 쇼펜하우어의 쓰디쓴 격언에 몸서리가 쳐진다면, 이것만 기억하라. “우리의 감각은 고통 앞에서만 깨어난다.”

이 책은 사색하고 숙고하는 ‘학문’을 넘어, 우리 삶에 철학을 적용해 행동으로 촉발하도록 이끈다. 저자는 우리의 사소한 행동 습관을 바꾸는 데 집중해야 함을 강조하며, 그것이야말로 철학 이론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진단하기, 이해하기, 적용하기, 내다보기’의 네 단계로 쇼펜하우어 철학을 들여다본다. 

1부 ‘산다는 것은 고통’에서는 우리가 피할 수 없는 고통의 의미와 이유, 환상으로서의 행복, 성적 본능으로서의 사랑 등에 관하여 논한다. 2부 ‘살고자 하는 의지의 분출’에서는 살고자 하는 의지가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떻게 작용되는지, 자연의 힘에 예속된 ‘의지’와 의미에 관하여 설명한다. 3부 ‘환상 너머를 보라’에서는 모든 고통의 원인이 ‘에고’에 있음을 밝히고 그로부터 벗어나는 방법, 관조하는 삶의 자세를 이야기하며 자아와의 헛된 싸움을 중단하라고 말한다. 끝으로 4부 ‘살고자 하는 의지를 부정하라’에서는 우리가 삶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과 희망해서는 안 되는 것을 이해시키며 ‘진정한 휴식’에 이르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 책은 심각할 만큼 어둡고 무거운 쇼펜하우어 사상을 전체적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저자는 쇼펜하우어의 사유체계를 입체적이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풀어냈다. 그러면서도 쇼펜하우어 철학의 맥을 따라 오늘 우리 시대가 처한 에고이스트 사회문제를 명징한 눈으로 꿰뚫게 해준다. 

“고통을 벗어나고 싶다면 고통의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일 텐데, 가령 이런 식으로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구름을 보되, 그 외양과 윤곽선을 보지 말고 그 속성을 본다. 꽃을 보되, 그 외양과 윤곽선을 보지 말고 그 속성을 본다. ‘나쁜’ 식물학자는 꽃의 외양을 본다면, ‘좋은’ 식물학자는 꽃의 구조와 속성, 물 자체를 본다. 그래서 ‘좋은’ 식물학자는 구름에서도 꽃을 보고, 파도에서도 꽃을 본다. 오브제의 내적 구조를 추출하는 순간, 만물은 그 모든 것이 ‘다른 같은 것’이 된다. 감각들(프랑스어로는 복수의 sens)의 총화와 그 총화성 속의 자리바꿈, 또는 그에 따른 변형과 변신으로 어느 찰나적 순간 응축되는 것만이 의미(프랑스어로는 단수의 sens)다. 그래서 의미는 먼저 제시되는 법이 없다. 삶이 의미가 있기에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았기에 의미가 파생될 뿐이다. 의미는 이런 맥락에서 궁극적인 정제이자 압축이고, 그래서 우리에게 그토록 놀랍게 ‘표상’되는지 모른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쇼펜하우어를 읽으며 고개를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보지 말고, 여러분 자신을, 여러분 자신의 몸을, 물 자체를 보기 바란다. 그리고 읽고 나서 이젠 이해했다 하지 말고, 행하는 일로 반드시 넘어가기 바란다. 원인을 들여다봄으로써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하기 바란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극약 처방이 될 수 있으려면, 더 좋다 는 신약新藥을 찾아 떠날 것이 아니라, 자리 이동 하나 없이 눈앞의 똑같은 대상을, 똑같은 사실을, 똑같은 외양을 보면서 전혀 다르게 보는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 옮긴이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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