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대사 인식과 연구방법론…한국 선사시대와 고대의 농업 생활에 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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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대사 인식과 연구방법론…한국 선사시대와 고대의 농업 생활에 대한 연구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4.01.14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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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고대사 인식과 생업경제 | 이현혜 지음 | 일조각 | 400쪽

 

삼한三韓 연구의 권위자인 이현혜 한림대 명예교수가 한국 고대사 연구와 관련한 두 가지 주제를 한 책에 담았다. 하나는 한국사 연구방법론과 고대사 인식체계에 대한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 선사시대와 고대의 농업 생활에 대한 연구이다. 

한국사의 전개 과정을 어떤 관점에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한국 근대사학의 성립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중요한 주제이다. 한국사 연구와 인식체계 수립 과정에서 민족주의사학, 사회경제사학, 실증사학 이외에 진화론적 시각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공동체 이론과 비교사학적 방법론도 이에 못지않게 주목받았다. 20세기 초엽에는 사회진화론의 영향을 받아 한국사를 변화 발전하는 것으로 보는 새로운 역사 인식체계가 등장하였고, 1970~1980년대에는 미국의 신진화론을 수용하여 한국 고대국가의 형성 문제를 둘러싸고 활발한 논쟁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드러났고 근래에는 ‘초기국가’라는 용어와 개념의 적용을 두고 또 다른 견해들이 나오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역사 연구의 이론이나 방법론을 검토하면서 역사와 사회를 변화 발전시키는 원천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떠올랐다고 한다. 국가의 형성이나 발달, 공동체의 구성과 성격 변화 등 역사의 변천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생산기술의 발달과 환경, 인구 등 가장 기초적이고 핵심적인 요소들을 밝히는 것이 중요함을 인식하였다. 생산 활동에 대한 연구야말로 당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복원하고 역사 전개의 진면목을 보여 주는 아주 효과적인 작업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전통사회는 농업을 생업으로 삼아 왔다. 이 때문에 농업기술의 변화 과정에 대한 연구는 한국사의 발전 과정을 이해하고 체계화하는 데 있어 우선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농업 생산을 담당하는 농민에 초점을 맞추고 논바닥에 찍힌 사람과 소의 발자국, 길게 뻗은 밭고랑, 붉게 녹슨 농기구 조각을 통해서 생산력 수준과 그들이 속했던 사회의 특성을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석제 농기구나 소량의 탄화곡물에만 의존하던 초기의 연구와는 달리 1990년대 이후 목제 농기구, 경작지, 목간 등의 발굴로 연구 자료의 폭이 크게 넓어지고 토양 분석 등 연구방법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자료 분석의 방향을 설정하고 전 시대에 걸쳐 농업기술의 발달과 사회의 변화 과정을 유기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론 체계를 모색하는 등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I부에서는 한국사 연구에 대한 방법론과 이를 둘러싼 논쟁을 정리했다. 1장에서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민족주의사학, 사회경제사학, 실증사학 이외에 진화론적 시각도 한국사 인식체계에 중요한 작용을 했음을 밝혔다. 2장에서는 신진화론을 한국 고대의 국가 형성 문제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가지 문제점을 검토했다. 3장에서는 비교사학이라는 연구방법론을 활용한 연구 사례를 검토하고 한국사의 객관적 이해와 탐구 수단으로서 비교사학의 효용성을 짚어 보았다. 4장은 한국 고대사 연구방법론으로써 공동체 이론이 얼마나 유용한지, 과연 공동체를 연구 대상으로 삼아 고대사회의 단계별 성격과 변화상을 밝혀낼 수 있는지 등을 서술하였다. 5장은 신라의 대표적 학자인 최치원의 한국 고대사 인식과 역사 계승 의식을 살펴봤다.

Ⅱ부에서는 농업 생산과 기술의 발전 과정을 다루었다. 1장에서는 농업생산을 담당하는 농민에 초점을 맞추어 농업생산기술의 발달에 따라 이들의 사회경제적인 지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검토했다. 2장에서는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한국 농업기술의 전개 과정을 개관했다. 3장에서는 토지 활용 방식을 통해 농업기술의 발전 단계를 분류한 에스더 보저럽Ester Boserup의 견해를 바탕으로 신석기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 농업기술의 발달 과정을 살펴봤다. 한반도의 신석기시대 농경은 장기 휴경 단계에 있었으며, 청동기·초기철기시대에는 중기 휴경 단계에, 그리고 4~5세기 이후에는 철제 기경구의 보급과 이경구의 발달로 단기 휴경 단계에 진입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4장에서는 경남 진주 대평리유적의 청동기시대 밭 유구를 대상으로 농기구, 파종처, 경작지 활용 방식 등 농경 활동의 구체적인 면모를 검토했다. 5장에서는 백제 지역의 논농사와 밭농사의 시작과 전개 과정을 개관했다. 백제의 농경생활에 대한 연구는 한국 고대사회의농업 경제 기반을 이해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Ⅲ부에서는 조선시대 지리지에 실린 지역별 농산물, 수산물, 광물 자원 등을 정리했다. 우리는 백제나 신라의 수많은 유물을 조사, 분석하면서도 정작 중요 자원의 생산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이와 관련해 현존하는 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궁여지책으로 한반도의 산천이나 기후, 해류 등 자연환경의 기본 틀은 고대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전제 아래 조선시대 지리지를 이용했다. 흥미롭게도 서해안의 패총에서 나온 어류 유체 분석 결과 민어, 조기가 많이 나오는데 『세종실록지리지』의 민어, 조기 주산지도 서해안이다. 옥저가 고구려에 어염을 공물로 바쳤다고 했는데 조선시대에도 함경도 함흥 일대에서 많은 소금이 생산됐다. 편찬 연대가 가장 빠르고 내용이 자세한 『세종실록지리지』를 주축으로 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대동지지』 등으로 보완해 백제 지역과 신라 지역의 산물을 표로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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