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주의 미디어에서 찾아낸 역사적이고 민중적인 조선의 정서와 소리들
상태바
식민주의 미디어에서 찾아낸 역사적이고 민중적인 조선의 정서와 소리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4.01.14 17: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일제 사진엽서, 식민지 조선을 노래하다 | 최현식 지음 | 성균관대학교출판부(SKKUP) | 592쪽

 

제국 일본의 대표적인 식민주의 인쇄매체이자 선전·선동의 기호였던 사진엽서. 그것은 시각(이미지)과 청각(노래), 둘의 통합체인 문자를 동시에 거느린 당대의 대중적인 문화상품이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사진엽서에 함께 인쇄된 노래들, 즉 상징적인 ‘조선의 소리’인 「아리랑」을 필두로, 조선의 장소와 공간들이 품은 풍취와 이를 바라보는 내지인의 시선이 담긴 가사들, 일본어로 번역된 조선 민요와 동요들을 분석하면서 그 문학적 의미와 그것들이 수행하는 정치성과 이념성의 역할을 폭넓게 들여다보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언어적 장치를 통해 지배자의 폭력적 시선과 조선의 타자화 방식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진 ‘조선적인 것’의 고유성과 제국문화의 분열성을 동시에 읽어낸다.

사진엽서 위에 올려졌던 노래와 시들은 단순한 보조 텍스트가 아니라, 사진과 그림 못지않게 제국과 식민지의 불균등한 삶과 현실을 표상하는 상징적인 기호였기에, 폭력적인 제국의 소리와 흔들리는 조선의 소리가 서로 반향하며 벌이던 청각적 심상들의 각축은 당대 문화의 정치학을 해명하는 또 하나의 무대를 열어준다. 

이 책은 무엇보다 연구와 해석의 초점이 사진엽서에 수록된 ‘시가와 노래’에 놓인다. 저자는 먼저 ‘일본적인 것’에 의한 ‘조선적인 것’의 식민화 또는 제국의 식민지 ‘흉내 내기’ 과정에서 식민권력의 주요한 과제로 떠올랐던 ‘조선민요’의 계획적인 선택과 배치, 전유와 번역 등의 문제에 주목한다. 그 결과 사진엽서 위에서 ‘제국(국민)의 소리’로 부상했지만, 동시에 제국 귀퉁이의 ‘지방적인 것’으로 그 가치와 위상이 깎여버린 조선민요들의 처지를 소상히 살펴나간다.

또한 저자는 조선적인 것을 소재로 취한 ‘일본(신)민요’의 창작과 보급에 일제가 기울인 많은 노력들에도 주목한다. 사실 그러한 시도들을 통해 식민권력은 조선(인), 즉 ‘붉은 땅[赤土]’과 ‘토인(土人)’에 대한 지배와 교화의 의지, 개척과 착취의 욕망을 차곡차곡 제국(인)의 보편적 감정으로 끌어올렸다. 이 모두가 일제의 우수성과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조선의 전통문화를 날조·각색하는 파시즘적 미학 주체의 본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나아가 저자는 조선민요가 생명력과 가치를 잃지 않고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조선의 소리’로 거듭나는 모습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인다. 특히 조선민요가 가창자(향유자)나 새로운 활용자를 통해 자기 내부에서 꿈틀대는 자생성과 역사성, 민중성과 저항성을 (무)의식적으로 발현하고 수행했음을 분석해낸다. 무릇 노래란 반복되는 리듬과 규칙적인 발성을 통해 특정 시공간에 얽매이지 않고 내용과 감정을 초월적·보편적 차원으로 고양시키는 예술 장르이기에, 저자는 나라 잃은 조선민요도 이 장점만은 뺏기지 않고서 권력 정점의 제국(국민)의 소리였던 일본(신)민요에 대한 예속과 통제 속으로 무력하게 함몰될 뻔한 비극을 벗어날 수 있었다고 적는다.

제1장 「제국의 취향, 전시되는 아리랑」은 「아리랑」 엽서가 주된 대상이다. 사진엽서의 「아리랑」(조선어 및 일역본)과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 김소운의 「아리랑」 일역(日譯)과 일본 소개, 일본 자체의 번역본 「아리랑」의 생산과 소비 등을 실마리 삼아, 조선민요 「아리랑」의 대중성과 식민성에 대해 논한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생명력과 자생성을 잃지 않는 자율성과 독립성의 발화체로 살아남는 「아리랑」의 위대함을 새삼 확인했다고 말한다.

제2장 「조선의 민요, 원시와 전통의 경계」에서는 「아리랑」 이외의 각종 조선민요가 어떻게 사진엽서의 소재로 대상화 또는 타자화되었는지에 주목한다. 여기에 모아진 조선민요들은 예외 없이 일본어 번역본이거나 일본 화자가 조선의 풍속과 인물을 노래한 ‘의사-조선민요’들이었다. 일본어의 감각, 정서, 형식에 맞게 변형되거나 아예 그들의 입과 문자를 빌려 새로 창안된 의사-조선민요들에 얽힌 끔찍한 식민성은 제국화/지방화의 기이한 동거와 그 아이러니한 모순성이 어떻게 발생하고 고착되는지를 뚜렷이 보여준다.

제3장 「제국의 ‘조선적인 것’에 대한 전유와 소비」는 두 세트의 『조선정시(朝鮮情詩)』(엽서세트)에 실린 두 종류의 노래에 초점을 맞춘다. 감춰진 일본 화자가 노래하는 『조선정시』와 일본 화자를 드러낸 와카(和歌)가 그것이다. 이 엽서에는 전근대와 봉건 양식을 벗어나지 못한 조선인 남녀노소의 생활과 문화를 중심으로, 임을 향한 그리움과 슬픔에 빠져 있는 조선기생의 모습이 주로 담겼다. 이런 맥락에서 『조선정시』 엽서세트는 조선(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지운 채 식민화된 정서와 소리가 어떻게 출현하는지 새삼 확인시켜준다.

제4장 「압록강절·국민가요·선전가」와 제5장 「압록강절·제국 노동요·식민지 유행가」는 일본 신민요 『압록강절(오룟코부시)』(엽서세트)의 의미와 가치를 고찰한다. 이 노래는 한만(韓滿) 국경지대인 압록강의 풍경과 정취, 그곳을 오르내리는 뗏목꾼의 쓰라린 현실, 그들을 상대하는 조선 기생과 일본 게이샤의 서글픈 정한(情恨)을 담아냈다. 그러나 이 노래 가사의 낭만성과 감정의 대중성을 압도하는 전체주의적 성격과 군사적 본질에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된다.

제6장 「『국경이백리』·백두산절·한만 개척」과 제7장 「그림엽서 『백두산절』·오족협화·총력전」은 일본 신민요 『백두산절(하쿠토산부시)』(엽서세트)을 대상으로 한다. 백두산은 일제의 식민화를 거치면서 한만 개척과 지배를 위해 비적(匪賊)이나 한·중의 저항군으로부터 지켜내야 할 국경 수비의 거점으로 떠오른다. 이런 까닭에 『백두산절』 단편들은 처음에는 백두산과 압록강 4계절의 풍취와 인간사를 향수심에 덧붙여 부르던 서정적 군가에서 근대천황제 수호와 멸사봉공의 의지를 다짐하는 총력전의 군가로 급속히 퇴폐화된다.

제8장 「송화강·황량한 만지(蠻地)·개척된 낙토」는 그림엽서세트 『송화강천리』를 한국의 연구집단에 처음 소개하고 해석하는 장이다. 『송화강천리』는 동북 만주를 굽이굽이 흐르는 송화강의 풍경과 만주 개척민들의 생활상 그리고 만주 방어에 나선 관동군의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노래의 핵심이 만주를 기점으로 삼은, 일제의 세계를 향한 폭력적 팽창주의와 그 방법으로서 총력전의 옹호에 바쳐지고 있다는 점에서 『백두산절』과 근친성이 두드러진다.

제9장 「소학생의 노래, 소국민의 직분」과 제10장 「소국민의 음악, 소년병정의 총력전」은 1920~30년대에 쓰인 『보통학교창가서』와 『보통학교보충창가집』, 1940년 전후에 교육된 『초등창가』와 『초등음악』의 전체주의적 성격과 폭력적 본질을 밝힌다. 식민지 초기에는 조선적인 것과 일본적인 것에 대한 음악교육이 그런대로 균형을 이룬다. 하지만 근대천황제에 충성하는 ‘충량한 신민’의 육성과 확장이 중요시되면서 조선아동의 노래는 숭고한 일본정신의 내면화와 ‘전선총후(前線銃後)’에 헌신하는 ‘소년병정’ 되기로 집중된다. 천황 중심의 군국주의가 식민의 땅에 흩뿌린 ‘전사자 숭배’의 씨앗 되기가 조선아동들의 윤리이자 의무였다는 사실. 저자는 바로 여기에 일제의 조선 지배에 대한 최고의 저열함과 퇴폐성이 존재한다고 적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