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은 정치의 모양, ‘성인군자’는 모양을 그려낸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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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은 정치의 모양, ‘성인군자’는 모양을 그려낸 화가
  • 안성재 인천대·중문학
  • 승인 2024.01.14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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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도덕 성인 군자』 (안성재 지음, 어문학사, 272쪽, 2023.12)

 

“추구하는 도가 같지 않으면, 함께 도모할 수 없다고 했다. 이는 노자와 공자를 일컫는 것이려니!” 사마천이 [사기]에서 이렇게 언급한 이래로, 사람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유가와 도가가 서로 배척하는 관계에 있다고 믿어왔습니다. 그런데 한국수사학회 학술대회 토론자로 참석했다가, 문득 사마천의 이 말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유가 경전 중 하나인 [시경]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우연한 계기로 노자의 [도덕경]이 공자의 유가 사상과 크게 다르지 않음에 주목한 거죠. 

이후 한 글자 한 글자 사전을 찾아가며 [도덕경]과 [논어]를 완역하고 이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연구하는 15년의 여정에서, 둘 다 ‘도덕’ ‘성인’ ‘군자’가 무엇인지 수사학적으로 풀이한 서적이라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물론 노자와 공자는 각각 도가와 유가 사상의 창시자가 아닌, 예로부터 전해오는 ‘도’를 오롯이 계승하여 전달하고자 한 ‘기버(giver: 기억전달자)’였다는 사실도 함께 말이죠. 그리고 그 성과들을 이번 저서인 [도덕 성인 군자]에서 최대한 압축하여 알기 쉽게 풀어놓은 겁니다. 이 책의 특징을 들라면, ‘도’와 ‘덕’이 무엇이고 어떻게 ‘도’에 도달할 수 있는지 나아가 ‘도’를 행한 리더 ‘성인’과 ‘군자’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수사학적으로 풀이한 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수사(修辭)는 서양 레토릭(rhetoric: 말하기 기술)의 동양 번역어로 쓰이는데, 사실 레토릭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수사는 난해한 개념을 쉽게 풀이하는 역할을 하므로, 오히려 대상어를 쉽게 풀이하는 메타(meta)언어와 닮아 있습니다. 다만 수사는 그 대상어가 도(道)에 한정되므로 차이가 있죠. 하지만 제아무리 수사를 통해 어려운 개념을 쉽게 풀이했다고 하더라도, 역시 형이상학적 추상명사인 ‘도’를 설명하는 데는 분명 미진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저서에서는 ‘수사’를 보완하는 방법으로 도표들과 관련 그림들을 최대한 끌어들여서 시각적으로도 더 이해하기 쉽게 구성했습니다.

도(道)는 ‘리더가 걸어야 할 길’ 즉 리더십을 의미하므로 구체적인 실체가 없습니다. 도를 구성하는 구성 요소들을 한데 묶어주는 총체적 개념이죠. 수혈을 예로 들어 수사로 풀어보겠습니다.

수혈의 역사는 백여 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왜냐면 혈액의 구성 요소들을 몰랐기 때문인데요. 그렇게 학자들이 혈액을 분석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그리고 혈장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특히 적혈구 표면의 당(糖)은 개인 차가 있는데, 이 차이로 ABO 혈액형을 구분한 후에야 수혈을 할 수 있게 된 겁니다. 

‘도’ 역시 혈액과 마찬가지로 많은 구성요소들로 이뤄진 겁니다. 도(道)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늘의 도’인 천도(天道)와 ‘사람의 도’인 인도(人道)가 그것인데요. 천도와 인도는 완전히 다른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천도는 대원칙이고, 인도는 천도를 세분화하여 강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천도는 대동 사회를 이끈 리더인 성인이 행한 리더십으로, 주된 특징이 무위자연(無爲自然)입니다. 무위자연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뜻이 아니라, 법과 제도를 세분하고 강화하여 억지로 통제하려 들지 말고 천성에 따라 다스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노자는 [도덕경]에서 도를 설명할 때마다 ‘하늘의 도(天道)’ 또는 ‘큰 도(大道)’라고 표현했던 거죠. 또 성인이라는 단어는 31차례 등장한 반면, 군자라는 단어는 2차례만 등장한 겁니다.

 

반면 인도는 소강 사회를 이끈 리더인 군자가 행한 리더십으로, 인도의 주된 특징은 천도의 구성 요소들을 세분하여 강화했다는 겁니다. 마치 고조선 때는 팔조법 즉 법이 여덟 조항밖에 없었지만, 위만조선 때는 여덟 조항만으로는 다스릴 수가 없어서 60여 개조로 늘어난 것처럼 말이죠. 따라서 인도는 인의(人義)와 예악(禮樂)을 중심으로 세분하여 제도를 강화한 것이 주된 특징입니다. 인의예악은 지도자가 먼저 스스로 솔선수범하여 절제하고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백성을 통제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사회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세운 제도입니다. 그래서 공자는 ‘하늘’과 ‘성인’이라는 단어는 거의 쓰지 않았고, 그 결과로 [논어]에는 군자가 107차례 등장하는 반면, 성인은 4차례만 등장한 겁니다. 

 

덕(德)은 도의 구체적인 행동 강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덕은 사실상 도의 실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덕과 도는 다릅니다. 왜냐면 덕에는 초지일관의 자세를 뜻하는 상(常)이 포함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덕에 상이 합쳐져야 비로소 도에 도달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덕치를 펴서 나라가 흥하다가, 중간에 초심을 잃어 술과 여색에 빠지고 권력과 재물을 탐하다가 불행한 결말을 맞이한 리더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거죠.

덕에는 아홉 가지가 있어서 구덕(九德)이라고도 일컫는데, 이 아홉 가지를 살펴보면 하나같이 강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함을 알 수 있습니다. 단적으로 ‘3. 원이공(願而共): 정중하면서도 함께 함’에 대한 예를 들어보죠. 이는 백성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가 뭔지 엄격하고도 신중하게 파악하는 정중한 모습을 보인(강함) 후 그것에 아낌없이 베풀면(부드러움), 백성이 지도자를 따르고 지도자 역시 백성을 섬기는 그야말로 진정으로 함께 하는 상생과 공존의 모습이 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공자는 “지도자가 백성이 진정 원하는 것에 과감히 국고(國庫)를 열면, 이는 백성을 위한 것이므로 낭비가 되지 않는다.”라고 풀이했습니다.

2019년 말부터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코로나19 전염병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위협했습니다. 게다가 변이가 속출하면서, 백신 접종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되었죠. 한 나라의 지도자는 무엇보다 국민의 건강을 우선시해야 하는데요. 따라서 백신을 확보하기 위해서 부득이하게 막대한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면, 과연 누가 지도자를 원망할까요?

그러므로 이처럼 강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덕을 행하기 위해서 필요한 하위 요소가 바로 강함과 부드러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中)과 강함과 부드러움 중 어느 하나도 버리지 않고 함께 하려는 조화로움의 화(和)가 됩니다.

그리고 중(中)과 화(和)를 행하기 위한 전제가 하위의 세 가지 요소인데, 노자는 이를 세 가지 보물이라고 칭한 바 있습니다. 바로 검소함(儉)과 겸손함(謙) 그리고 자애로움(慈)이죠.

반면 공자는 대동 사회의 천도가 아닌 소강 사회의 인도를 중시해서, 노자의 세 가지 보물에 더해 보다 세분화한 지침을 강조했는데요. 인의예악(人義禮樂) 외에도 강직함(剛) 지혜로움(知) 올곧음(直) 용감함(勇) 등이 그것입니다.

물론 이 요소들의 정의는 오늘날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위에서 잠시 언급한 어짊의 인(仁)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베푸는 것이 아닌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행해야 하는 즉 복종의 자세를 뜻하죠. 

무엇보다 천도, 인도를 막론하고 모두 갖춰야 할 기본 전제가 있는데, 그건 바로 신중함(愼)과 신뢰(信)입니다. 그래서 노자는 원숭이와 코끼리(猶豫: 유예)를 예로 들어서 신중함을 강조했고, 공자는 말과 수레를 연결하는 끌채 끝 쐐기(輗軏: 예월)를 예로 들어서 신뢰를 강조한 겁니다. 특히 신뢰(信)란 사람(人)이 말한 것(言)은 모두 믿을 수 있다는 의미이므로, 옛사람들이 왜 함부로 말을 내뱉지 않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번 저서를 낸 의도는 단순히 그간의 연구를 집약적으로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함이 아니라, 나아가 정치인들이 이를 이해하고 몸소 실천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비롯된 겁니다. 이것이 ‘수사’의 궁극이기 때문이기도 하죠. 그래서 [서경]에서 상나라 재상 부열은 “아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라, 행하는 게 어렵습니다.”라고 강조했던 겁니다. 바로 이 점이 도덕 성인 군자의 가치가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가 아닐까요?

 

안성재 인천대·중문학

인천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 중국 북경(北京)대학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천대학교 공자학원 원장과 중국학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도덕경], [논어] 구절들을 현대 인물 및 사건들과 연결하여 재구성한 저서 『2020 대한민국을 통합시킬 주역은 누구인가? - 노자, 궁극의 리더십을 말하다』 및 『군자 프로젝트 - 《논어》에서 말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리더십』은 각각 2020년, 2022년 세종도서로 선정됐다. 그간 노자와 공자 사상을 밝히고 나아가 알리기 위해서, 원서 번역을 필두로 다양한 형식으로 접근하여 저서들을 집필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맹자가 어짊(仁)을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고 표현한 것은 오류라는 점을 발견했다. 또한 도가사상을 이야기할 때 장자는 노자와 아무런 관련이 없거니와, 심지어 장자는 노자와 공자의 도를 곡해했음을 인지했다. 특히 주자(주희)는 [시경], [논어]를 풀이하는 과정에서 적잖은 오류를 범하고 있음도 확인했다. 이에 앞으로 맹자와 장자 그리고 주희의 오류들을 정리하여 집필할 계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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