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두각시 인형은 인간이 되지 않았다 ··· 아감벤의 〈피노키오로 철학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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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각시 인형은 인간이 되지 않았다 ··· 아감벤의 〈피노키오로 철학하기〉
  • 박문정 한국외대 외국문학연구소
  • 승인 2024.01.14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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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옮긴이의 말_ 『피노키오로 철학하기: 《피노키오의 모험》 140주년 기념』 (조르조 아감벤 지음, 박문정 옮김, 효형출판, 407쪽, 2023.11)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은 『피노키오의 모험(Le avventure di Pinocchio)』은 1883년 피렌체에서 발간되었다. 이탈리아가 통일한 지 20여 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475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 1400여 년간 분열된 도시국가로 존재해 왔던 이탈리아인들에게 통일은 꿈만 같은 것이었다. 고대 로마제국의 영광 그리고 인문주의라는, 근대(성)에 요람이 되었던 르네상스가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지만, 이후 이탈리아는 다른 유럽 국가가 통일 근대국가로 변하던 시기 여전히 중세 도시국가의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18세기에 들어 『피노키오의 모험』의 작가 콜로디(Carlo Collodi, 1826-1890)를 비롯한 이탈리아 지식인들은 마치 ‘낭만’과도 같은 이탈리아 통일운동을 주장한다. (이탈리아의 낭만주의는 통일운동 리소르지멘토와 불가분의 관계이다) 

이탈리아 통일운동을 펼친 지식인들이 염원한 것은 단순히 통일이 아니라 이탈리아에도 근대사회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탈리아는 1861년 소위 미완성의 통일을 이룩하게 된다. 통일을 완수하기는 하였지만, 오랫동안 분열되어 있던 이탈리아의 지역 간 차이는 언어, 문화 등 너무 다양하고 복잡하였고, 이들을 ‘이탈리아인’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았다. 또 작은 마을에서 농업으로 생업을 유지하던 이탈리아인들은 통일 정부에 세금을 내거나 농장에서 일해야 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것에 부정적이었다. 이에 표준 이탈리아어, 표준 교과과정 등 근대 시민 ‘이탈리아인 만들기(fare gli italiani)’가 시급한 상황이었다. 콜로디는 통일 이전에는 통일 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고, 통일 이후에도 표준 이탈리아어 정립과 교재 집필에 힘쓴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통일 이후 인플레이션으로 경제 상황은 악화하였으며, 지역 간의 갈등은 봉합되지 않았고, 여전히 외부에서는 전쟁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 함께 하였던 콜로디는 말년에 『피노키오의 모험』을 집필한다. 

그동안 콜로디의 『피노키오의 모험』은 중세 신민이 아닌 근대 이탈리아 시민으로 이탈리아 사람들을 계몽하기 위한 작품으로 읽혀왔다. 나무인형 피노키오는 어떤 조건을 충족해야 ‘인간’이 될 수 있을까. 피노키오의 모험을 살펴보면 이는 근대 시민이 되기 위한 조건을 묻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실하게 학교에 가서 글을 읽고 쓸 줄 알아야 하고, 농업보다는 수공업에 종사해야 하고, 아껴 쓰며 가족을 위해 경제적 개념을 확립하여야 하며, 법을 준수하여 경찰서에 가는 일 없어야 하고, 상식적으로 살지 않으면 병원에 끌려갈 수 있다는 설정들은 근대 ‘인간’이 되기 위한 조건을 은유한다.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 1942~ )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인간의 조건을 묻는 현재, 피노키오의 이야기를 다시 주목하였다. 호모사케르(Homo Sacer)와 바이오보안(biosicurezza)으로 잘 알려진 아감벤은 코로나가 확산할 때 질병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과학자가 제시한 데이터와 통계에 근거에만 의존하여, 팬데믹 상황이 정치적으로 악용되고 있으며 파시즘 시기보다 더한 통제와 차단이 허용되는 상황을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그리고 그 논쟁 끝에 아감벤은 자신은 바이러스학자나 과학자가 아니며, 그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아감벤은 2021년 콜로디의 『피노키오의 모험』에 각주를 단 『피노키오. 두 번의 해설과 세 번의 그림이 있는 인형의 모험 이야기(Pinocchio, Le avventure di un burattino doppiamente commentate e tre volte illustrate)』를 출간한다. 이 책은 이미 1977년에 이탈리아 비평가 조르조 만가넬리(Giorgio Manganelli, 1922-1990)가 『피노키오 평행주석(Pinocchio, un libro parallelo)』에  한 번 더 아감벤이 해설에 덧붙여 나온 책이다. 그리고 1883년 펠리체 파기(Felice Paggi)에서 초판한 엔리코 마잔티(Enrico Mazzanti)의 삽화, 1901년 벰포라드(Bemporado)에서 출판한 카를로 키오스트리(Carlo Chiostri)의 삽화, 그리고 10년 후 역시 벰포라드에서 출판한 아틸리오 무시노(Attilio Mussino)의 컬러 삽화가 포함되어 있다. 

국내에는 2023년 11월에 『피노키오로 철학하기』(효형출판사, 박문정 번역)라는 제목으로 번역서가 출간되었다. 이 책에는 아감벤의 『피노키오. 두 번의 해설과 세 번의 그림이 있는 인형의 모험 이야기』의 글과 그림이 그대로 번역되어 있고, 부록으로 콜로디의 『피노키오의 모험』의 원전 전체가 실려있다. 실제 피노키오의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달라서 독자들이 아감벤의 해설을 한줄 한줄 따라 읽을 수 있길 바라며 원작을 포함하였다. 원작 피노키오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피노키오의 죽음, 엄격한 파란머리 천사, 희생적이지 않은 제페토의 모습은 우리에게 낯설게 느껴진다. 

아감벤은 피노키오 주석책에서 성경에 나온 예수의 탄생과 유사한 피노키오의 탄생, 서양 밀교를 연상시키는 파란머리 천사와 장난감 나라, 고대 로마 작가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Lucius Apuleius)의 당나귀와 같은 알레고리들을 계보학적으로 분석하는데, 그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바로 마지막 장면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달리 꼭두각시 인형 피노키오는 인간이 되지 않는다. 꼭두각시라는 나무 인형은 그대로 남아 있는 채, 아이가 등장하여 축 늘어진 나무 인형을 바라보며 “꼭두각시였을 때 내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웠는지, 그리고 이제 훌륭한 아이가 되어서 정말 기뻐”라고 말하며 끝이 난다. 

아감벤은 피노키오가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을 분류했던 기준인 인류학적 기계(macchina antropologica)라고 보며, 결국 자연(야생)으로 은유되는 존재는 근대적 인간이 되지 못한 것이 아닐지 의문을 품는다. 인간은 스스로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인류학적 기계를 작동시키며 다른 존재와 인간을 철학적, 사회적, 또 생물학적으로 구분했고 그 결과 근대의 오늘을 형성했다고 하지만, 아감벤은 어쩌면 그 근대(성)을 만든 인류학적 기계가 사실 작동한 적이 없거나, 오작동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피노키오의 마지막 이야기로 시사하고 있다. 즉, 아감벤은 의무교육을 받고, 세금을 내고 법을 지키고 살아가는 시민은 한 명의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는 근대사회의 시스템은 어쩌면 작동된 적이 없거나 오작동 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즉, 아감벤은 이 책을 통해 누구든 호모사케르적 존재가 될 수 있는 현재를 은유하며, 지금 우리에게 인간이 되는 조건은 무엇인지, 인간이란 무엇인지에 관해 물음을 던지고자 이탈리아 ‘근대(성)’의 시작이 되는 피노키오의 이야기로 돌아간 것이다.  

실제로 콜로디는 청년기에 이탈리아 통일운동에 헌신하고, 통일 이후에도 ‘이탈리아인 만들기’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지만,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 그리고 여전히 혹은 예전보다 더 혼란스러운 이탈리아의 모습에 말년에는 냉담한 반응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동안 통일운동을 지지하던 콜로디의 근대(성)으로 읽히던 『피노키오의 모험』이 아감벤에 의해 근대(성)에 대한 의문으로 새롭게 해석되며 말년에 문학작품으로 자신의 시각을 녹여낸 콜로디의 시선이 함께 드러난 것이다. 

 

박문정 한국외대 외국문학연구소

이탈리아 작가와 문학을 중심으로 근현대 유럽 사회의 문화와 정치를 연구하는 데에 관심이 있다. 한국외대 이탈리아어과 졸업 후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안토니오 타부키와 지식인의 역할에 관한 논문으로 이탈리아 피렌체대학교, 소르본 4대학, 본대학 등 3개 대학 공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대 외국문학연구소 인문학술사회연구교수로 재임하고 있다. 아감벤의 팬데믹에 대한 인문적 사유를 담은 에세이 모음집 『얼굴 없는 인간』과 『저항할 권리』를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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