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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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본질
  • 김환규 편집기획위원/전북대·생리학
  • 승인 2024.01.13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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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환규 교수의 〈과학에세이〉

 

“너에게만 하는 얘긴데 누구한테도 말하지 마!”라고 말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비밀을 얘기하면서 하는 말이다. 비밀 유지는 인간의 삶 속에 늘 배어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비밀을 타인에게 털어놓을 수도, 타인이 아는 것은 원치 않을 수도 있다. 비밀은 그 자체로 스트레스 요인이기 때문에 비밀을 지키기는 무척 어렵다. 자신의 비밀을 누군가에게 말하면 그 얘기를 들은 타인 역시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 비밀을 털어놓으려는 강박적 욕망이 생기게 마련이다. 대부분 사람은 막역한 친구들이 있으므로,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을 때는 그들 역시 그 비밀을 유포할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비밀(secret)이라는 단어는 분리된 상태라는 의미의 라틴어 세체르네레(secernere)에서 유래되었다.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신적 다중작업이 요구된다.

프랭클린(B. Franklin)은 “세 명 중에서 두 명이 죽으면 비밀이 지켜질 수 있다”라고 얘기한 바 있다. 비밀을 갖는 것은 타인과 나를 구분 짓게 만들기도 한다. 비밀의 원천은 거짓말, 로맨틱한 욕망, 불륜과 금전 문제 등 다양하다. 우리는 배우자에게 소비 내용을 숨기거나 직업을 잃은 친구에게 자신이 승진했다는 사실을 숨기기도 한다. 비밀을 지키거나 누설하는 것은 타인의 신뢰를 얻거나 잃을 수 있다. 한 친구가 자신에게 어떤 비밀스러운 얘기를 들려주었을 때, 자신의 또 다른 친한 친구에게 그 비밀을 얘기하지 않으면 그 친구에게 죄의식을 느낄 것이다. 가족, 배우자 또는 친구와 비밀을 공유하지 않는다면 수치심, 죄의식과 근심이 유발되기 때문에, 개인의 웰빙에 부정적 효과가 초래되고 상호관계에 대한 만족도가 낮아지게 된다.

인간은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내면의 생각과 감정이 있으며, 그것이 폭로되었을 때 자신 또는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비밀의 비밀스러운 삶’의 저자인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의 슬레피언(M. Slepian) 교수에 따르면, 비밀은 자신 또는 자신과 관련된 것으로 타인에게 의도적으로 숨기는 것이다. 슬레피언은 연구 참여자 수백 명의 비밀을 조사하여, 감정 또는 신체적으로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것에서부터 과거의 약물 남용, 비정상적인 성적 취향 같은 34개 범주의 비밀로 분류하였다. 여러 국가에서 선정된 5만 명 이상을 대상으로 행한 후속 연구를 통해, 조사 대상자 중 97%가 34개 범주 중 최소 1개의 비밀을 갖고 있으며, 개인당 평균 비밀은 13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은 5개였고 단 한 사람에게만 털어놓은 비밀은 8개였다. 슬레피언은 배신 같은 큰 비밀 또는 백색 거짓말 같은 사소한 비밀 등에 대한 연구를 통해 비밀을 지키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비밀의 은폐와 기만적 왜곡은 심리 및 신체 손상을 포함한 큰 비용을 초래하게 된다. 더 많은 비밀을 갖고 있는 사람은 삶의 기쁨이 감소하였고, 심리 및 신체 건강과 대인관계는 악화되었다. 인간은 잘못된 행위를 하면서도 자신이 도덕적이고 선하다고 믿으며, 자신의 잘못된 행위들을 타인으로부터 숨기므로 심리적 압박을 받게 된다. 비밀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비밀을 지키는 것은 잘못된 선택으로 그에 따른 심리 및 신체적 비용은 막대하다. 비밀이 부도덕하다고 여겨지면, 그에 비례하여 더 큰 수치심이 생겨 스스로에게 고통스러운 벌을 가하게 된다. 또한 비밀은 정신적 그리고 감정적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비시킨다. 비밀을 털어놓는 것은 불유쾌한 감정에서 벗어나는 데 필수적이다. 단순하게, “나에게 말하지 마” 또는 “나는 알고 싶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이 비밀의 부담을 회피하는 쉬운 방법이다.

인간은 사소한 규칙을 위반하고 내뺀 경험, 정치나 종교적 신념, 재정 상태와 성적 취향같이 타인과 공유하지 않는 많은 사적 비밀을 갖고 있으며 그로 인해 심리 및 신체적 부정적 효과가 유발되는데, 그 이유는 비밀의 특성이나 크기가 아니라 그것을 지속해서 반추하기 때문이다. UC 버클리의 심리학자인 크릿처(C. Critcher) 교수는 참가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이런 여성과 데이트하고 싶다’가 아니라 ‘나는 ~이런 사람과 데이트하고 싶다’라는 문구로 자신의 성적 취향을 감출 수 있게 한 후, 참가자들이 선호하는 데이트 취향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연구 결과, 비밀을 털어놓지 않은 참가자는 공간지능 시험 성적이 대조군 참가자보다 17% 하락하였으며, 손잡기 시험에서도 참가자의 1/3에서 실행 능력이 약화되었고, 대부분이 자신을 하찮게 여긴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인간이 비밀을 지키는 가장 큰 이유는 비밀이 누설되었을 때 느끼는 수치심, 죄의식, 두려움과 자신의 개인적 또는 직업적 이익에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치심은 타인과 지내기 어려운 감정으로, 왜 사람들이 자신의 가장 부끄러운 비밀조차도 결국 누설하는가를 설명해 준다. 수치심과 죄의식은 비밀 유지의 강력한 감정이고 동기부여 인자이다. 우리는 상대방과의 논쟁이나 감정 훼손을 피하려고 선거에서 누구에게 투표하였는지를 숨기기도 한다. 타인의 신뢰를 배신하여 비밀을 누설하면, 상대방과 자신을 다치게 할 것을 알기 때문에 인간은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 비밀은 수치심과 죄의식을 통해 다른 반응을 유발하기도 한다. 비밀 유지는 강박적 사고의 억제에 의한 반추를 일으켜 스트레스가 쌓이고 건강에 해를 끼치게 된다. 비밀을 정체성의 반영이라 믿는 것은 과거의 선택 또는 행동의 반영에서 벗어나게 해주며, 그것이 대인관계 및 정신 건강에 미치는 부담을 감소시킬 수 있다.

어린이는 다섯 살 이전부터 비밀을 지키는 능력을 발달시킨다. 부모로부터 비밀을 지킴으로써 잔소리를 듣지 않으므로, 비밀 유지 능력은 주된 발생학적 표지이다. 사춘기 청소년이 부모로부터 비밀을 지키는 것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심리적 그리고 신체적 웰빙의 자주성 고양과 관련 있으며, 성인의 비밀 유지는 웰빙의 감소와 대인관계의 질적 저하를 일으킨다. 비밀을 유지하는 것은, 타인은 접속 불가능한 또 다른 세계를 창조하여 자신을 응시하는 시야로부터 사적 정보를 보호하는 것이다. 비밀을 유지할 때의 부정적 효과를 어떻게 최소화할 수 있을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신뢰할 수 있는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는 것이다. 비밀은 깜짝 파티같이 누군가에게 놀라움의 기쁨을 제공하듯 타인에게 털어놓지 않으면 재미없다.

 

보어(N. Bohr)는 “독재정권의 최상 무기는 비밀 유지이고, 민주주의의 최상 무기는 개방성이다”라고 말하였다. 비밀 유지는 타인과의 자연스러운 행동과 사고를 차단하여 반응성을 제한하게 된다. 비밀의 유지는 대가가 수반되기 때문에 비밀을 털어놓는 것이 부정적 감정으로부터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비밀 유지는 신뢰성 상실과 삶의 만족도를 감소시키고, 동기적 갈등을 일으켜 사회적 관계를 훼손시키고 격리된 감정을 유발하며, 많은 에너지를 소모시켜 피곤하게 만든다. 선한 이유로 비밀을 유지하는 것 역시 스트레스에 노출되며, 단절의 감정으로 인해 인지능력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안타깝게도, 자신의 비밀을 주변인에게 얘기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고 또 모든 타인이 듣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비밀은 작가들뿐만 아니라 과학자들의 흥미를 일으켜 왔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 자신을 거부하지 않는 타인에게 의존한다. 자신에 대한 집단 구성원으로부터의 격리는 신체적 고통과 유사한 사회적 고통을 일으키는데, 진화적 관점에서 볼 때 격리는 실존과 생존의 직접적 위협이다. 인간은 타인과 공유를 원하지 않는 과거 또는 현재의 이야기인 사적 비밀을 갖고 있다. 소설 율리시스(Ulysses)에서 조이스(J. Joyce)는 이 사실에 대해 숙고하면서 “비밀과 침묵은 심장의 어두운 궁전에 돌처럼 앉아있다”라고 말하였다. 조이스에 의하면, 인간은 누구나 비밀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비밀이라는 자신의 폭정에 의한 피로’에 찌들어 있으며, 이것은 비밀의 유지와 누설 사이에 팽팽한 긴장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밀을 지켜야 하는 이유와 함께 비밀을 털어놓을 이유 또한 존재한다. 비밀을 털어놓으면 침투적 사고를 경험할 때의 근심과 걱정, 불안과 긴장감이 완화되고, 자존심과 웰빙이 증가하게 된다.

인간은 사회적 유대관계가 가까운 타인에게 비밀을 털어놓는다. 비밀을 털어놓는 것은 누설자와 수용자 사이의 사회적 거리에 영향을 미친다. 비밀을 듣게 된 사람은 누설자와의 친밀감 증가를 경험할 것이나, 동시에 그 비밀을 지키는 동안 부담감과 부정적 감정이 동반된다. 비밀의 중요성과 비밀을 유지할 때 직면하는 부정적 측면은 비밀 수용자에게 인지적 부담을 증가시키게 된다. 인간이 비밀을 유지하는 또 다른 이유는 비난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비밀은 인간에게 권력과 통제 같은 의식을 제공한다. 즉, 타인의 감정을 상하지 않기 위해, 갈등을 피하려고 또는 비밀이 누설되었을 때의 결과를 두려워하여 비밀을 지킨다.

인간은 비밀을 털어놓음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긴장감을 해소할 수 있다. 인간은 타인과 비밀을 공유함으로써 감정적 의지, 적절한 인도와 유익한 조언을 받을 수 있으며, 이러한 형태의 조력은 자존심을 부양하고 비밀 유지에 따른 스트레스에 대처하게 해준다. 결국, 타인에게 비밀을 털어놓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단 한 번의 대화로도 건강한 인생관과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다. 특정 문제에 부딪혔을 때,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통찰력 있는 타인과 그 문제를 공유하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인간은 타인과 선을 공유함으로써 보다 행복해질 수 있다.

 

김환규 편집기획위원/전북대·생리학

전북대 생명과학과 교수. 전북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 교환교수, 전북대 자연과학대 학장과 교양교육원장, 자연사박물관 관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생물학 오디세이』, 『생명과학의 연금술』, 『산업미생물학』(공저), 『Starr 생명과학: 생명의 통일성과 다양성』(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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