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로 감춰져 있던 현대미술의 ‘제작’과정, 그 이면을 들여다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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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로 감춰져 있던 현대미술의 ‘제작’과정, 그 이면을 들여다보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4.01.09 16: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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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 현재진행형: 스튜디오부터 크라우드소싱까지 예술가와 그들이 사용하는 재료들 | 글렌 애덤슨·줄리아 브라이언-윌슨 지음 | 이정연 옮김 | 시공아트 | 256쪽

 

195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난 현대미술 시작은 ‘제작’이란 키워드를 제외하고는 이해할 수 없다. 회화에서 디지털 테크놀로지 그리고 크라우드소싱에 이르기까지, 지난 수십 년 동안 예술품을 제작하는 방식은 더 비범하고 다채롭게 진화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제작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는 일은 드물다.

저자들은 1950년대 이후 미술의 제작과 미디어에 대해 폭넓게 탐구하며, 창작이 이루어지는 스튜디오와 공장 그리고 여타 장소들의 이면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예술가가 사용하는 재료와 제작 과정은, 예술을 둘러싼 경제적·사회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핵심으로 작용한다. 이 책은 아홉 개의 주제를 통해 예술가의 사고와 제작의 교차점에 주목한다. 각 장은 회화, 목조, 건축, 퍼포먼스, 도구정비, 돈, 외주 제작, 디지털화, 크라우드소싱이라는 특정 제작 과정에 초점을 둔다. 폭넓은 주제들에 대한 논의가 구체적 예시와 시각 자료들로 함께 직조되며 테크닉과 재료의 선택에 관여하는 논리를 드러낸다. 앨리스 에이콕, 주디 시카고, 이사 겐즈켄, 로스 카핀테로스, 폴 파이퍼, 도리스 살세도, 산티아고 시에라, 레이첼 화이트리드를 포함한 다양한 예술가들이 등장한다.

과거에는 작가가 ‘예술 작품’의 모든 과정을 ‘제작’해야 한다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마르셀 뒤샹의 〈샘〉 이후 예술의 개념은 새롭게 정의되었다. 레디메이드(ready-made), 기성품을 사용한 작품 제작은 작가를 제작의 부담에서 해방시켰고, 예술가의 범위를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는 존재’로 확장시켰다. 1950년대부터 현대까지 폭발적으로 증가한 예술 시장은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다. 현대미술에서는 더 이상 금기나 제약이나 넘어설 벽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현대미술에서도 ‘새로움’과 ‘독창성’이 여전히 통용되는 분야가 있으니, 바로 작품을 ‘제작하는 방식’에 대한 작가들의 도전이다. 

작가에게 ‘어떤 재료’를 사용하고, ‘어떤 방식’으로 만들 것인지 정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재료와 방식은 작품의 결과(형태)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작품을 확장하거나 제한하고, 이를 구상하는 작가의 아이디어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껏 ‘제작’의 이야기는 여러 이유로 금기시됐다. 제작 방식의 다양화로 자본과 외주 제작이 흔해지면서 수반되는 문제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예술가가 직접 제조하지 않으면 작품에서 사라지는 것이 있진 않을까? 제조 과정에 어떤 윤리적인 문제가 관여되어 있나? 작가가 아닌 사람이 만들면 작품의 독창성 결여는 없을까? 원작자, 저자, 저작권의 경계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논란을 피하기 위해, 제작은 비밀스럽게 그 모습을 감춘 것이다.

그러나 ‘제작’은 예술을 둘러싼 사회적, 경제적인 맥락을 이해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작가가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는지에 따라 작품의 해석도 결을 달리하게 되기 때문이다. 즉, 제작은 물질적인 가치뿐이 아닌, ‘생각의 한 형태’다. 이 책은 오늘날 미술 제작 현실을 생산적으로 검토할 뿐 아니라,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미술품 제작 방식을 조명하며 다양한 윤리적 문제를 함께 고민한다. 현대미술의 목격자가 된 우리도 제작에 연루된 문제에 공동의 책임을 지게 되었다. 제작 상황을 돌아보는 시각을 통해 예술의 영역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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