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종교는 본래 한 몸이었다!
상태바
문학과 종교는 본래 한 몸이었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4.01.09 16: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오스틴과 디킨스 다시 읽기: 포스트세속, 21세기 영문학의 새로운 흐름 | 오정화 지음 | 그린비 | 312쪽

 

현대의 학문 분과에서 문학과 종교는 전혀 다른, 별개의 영역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이는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세속주의가 학문 분야에까지 영향을 끼친  결과일 뿐, 문학과 종교는 본래 한 몸이었다. 이 책은 포스트세속의 관점에서 제인 오스틴과 찰스 디킨스의 소설들을 다시 읽음으로써 문학과 종교의 본래 관계를 밝히고, 세속주의로 인해 왜곡되었던 두 분야의 관계 재정립 가능성을 살핀다.

종교가 그러하듯 문학은 늘 삶의 의미를 추구하고 영적인 것, 개인적 삶의 한계를 넘어서는 의미를 욕망하고 이를 표현해 왔다. 그러나 스스로를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것으로 간주한 세속주의는 공적 영역에서 종교를 제거해 버렸다. 그렇게 하면 세계가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상태에 도달할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속주의의 영향은 문학에까지 퍼져 마침내 문학과 종교 사이에 넘기 어려운 거대한 벽이 생겨 버렸다. 19세기 말 연구 중심 대학의 발전과 세속화 과정이 뒤얽히면서 진행된 학문 분야의 세속화로 인해 학문은 종교를 무시하게 되었고, 그 결과, 인간 삶의 가장 중요한 면이 잘못 이해되거나 그에 대해 무지하게 되었다. 이런 깨달음으로부터 포스트세속주의가 시작되었다.

문학은 영적인 것들이 역사적으로 추적되고 언어로 표현되는 공간이다. 포스트세속적 문학연구는 우리가 읽는 것을 변화, 확장, 재배치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간학문적 읽기를 통해 다른 생각과 분과 학문적 사고 양식이 교차할 때 창조적 공간을 열어 낼 수 있다. 문학연구에서 객관성과 중립성을 추구한 것은, 문학연구가 가진 고유의 통찰력을 스스로 축소시켜 버린 것이었다. 이에 대한 비판으로, 20세기 말에 변화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서는 마치 지속적인 “억압된 것의 회귀”처럼 문학연구 내에 “종교의 회귀”(the return of religion)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다.

영문학의 환경은 아직도 종교를 의미 있게 다루는 것에 완전히 친화적이지는 않지만, 포스트세속적 비평 방법은 비평계에 일종의 패러다임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신앙과 지식의 성격은 무엇이며 그들의 관계는 무엇인지, 삶의 의미, 자아 형성, 타자와의 교감, 선함,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사랑 등은 모두 문학에서 다루어야 할 종교적 관심사들이다. 이 책은 세속주의 비평들에서 무시되어 온 이러한 중요한 관심사들을 다시 살려 내고자 하였다.

19세기는 영국 역사상 가장 종교적인 시대로, 그 시기를 대표하는 작가로 제인 오스틴과 찰스 디킨스를 들 수 있다. 세속주의 비평은 그 두 작가가 종교를 멀리하고 배제했으며, 심지어 비판했다고 평가했으나 포스트세속적 관점에서 읽어 보면, 오스틴 소설의 핵심 주제인 결혼이나 디킨스 소설의 핵심 주제인 사회 비판이 각 작가의 신앙 및 종교적 세계관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가 드러난다. 즉, 오스틴과 디킨스의 소설은 세속주의 비평이 만든 문학과 종교 사이의 왜곡을 잘 보여 주는 작품으로, 이 책은 세속주의 비평에 갇혔던 둘 사이의 경계를 보다 통합적으로 조망하게 해 준다.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경계 파괴가 문화적 코드인데, 경계 파괴는 상대주의와 허무주의로 갈 위험도 있지만, 새로운 영역을 배태할 가능성을 열어 준다는 데 그 의의가 크다. 경계 이편과 저편에서 억견과 편견으로 상대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전체적인 조망을 할 수 없는 것이 일상화된 세상에서 폭넓은 이해와 새로운 시각을 열어 주기 때문이다. 경계 저편을 보고 소통을 가능하게 하려면 통합적 사고와 전체적 조망을 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종교는 삶에 대한 근거와 의미를 제공해 주기 때문에, 경계 파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포스트세속주의는 학문과 종교 사이의 경계를 해체하고자 하며, 포스트세속적 문학연구는 문학과 종교의 경계를 낮추고 뛰어넘어 소통하고자 한다. 일방적인 잣대로 경계 짓기를 통해 사회적 균열이 심화된 시대에 문학과 종교에 대한 통합적 조망은 독자들에게 통합적 사고를 제공할 뿐 아니라 유연하게 사고하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긴 호흡을 가지게 한다.

포스트세속적 관점에서 영국소설을 분석한 이 책은 제인 오스틴과 찰스 디킨스의 작품이 가진 매우 중요한 의미들, 즉 그들이 신앙과 기독교 세계관에 근거하여 창조해 낸 많은 의미들을 되살려 냈다. 세속주의 비평들은 영국소설을 세속적 장르로 규정하여, 일상의 삶을 다루되 그 일상을 통해 영적이고 초월적이고 종교적인 것을 추구했던 많은 작가들의 종교성을 무시하거나 혹은 그것에 대해 무지했다. 오스틴과 디킨스도 종교적이지 않고, 종교를 비판했다고 여겨져 온 작가들이다. 그러나 포스트세속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그들의 작품은 문학과 종교의 관계를 잘 보여 주는 작품들임을 알 수 있다. 포스트세속적 관점의 작품 분석과 맥락화로써 살아난 종교적 의미들은 문학을 더 깊고 폭넓게 이해하게 해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