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품을 수 있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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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품을 수 있는 나라
  • 엄성우 서울대·서양윤리학
  • 승인 2024.01.07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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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지금 우리나라는 출생률이 극도로 저조하여 미래가 녹아내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우선 ‘태어나고 있는 사람의 수가 너무 적다’는 객관적인 사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어쩌다가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그 가장 큰 원인들 중 하나는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것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부재일 것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쉽지 않으면서도 무엇보다 숭고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사회가 육아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세 가지 이유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육아의 실질적 수혜자인 아이는 적어도 충분히 자랄 때까지 부모에게 물질적인 보상을 돌려주지 않는다. 이 점은 부모의 사랑이 무조건적이라는 측면과 맞물려 있다. 부모와 아이의 관계는 서로의 득실을 두고 맞붙어 줄다리기를 하는 계약관계가 아니다. 내가 너를 키워줄 테니 너는 커서 효도를 하라는 계약서에 부모와 아이가 서명을 한 뒤에 비로소 육아가 시작되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아이는 의심 한 점 없는 무한 신뢰를 품고 태어나 부모에게 온몸을 내맡기고, 부모는 돌봄을 통해 받을 수 있는 보상을 미처 계산해보기도 전에 어느새 품에 안고 ‘맘마’를 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런 순수한 관계의 고리 속에서는 누구도 육아의 가치를 따져 묻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점이 육아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제대로 인식되지 않고 있는 첫 번째 이유인지도 모른다.

둘째, 특별한 자격조건 없이도 누구나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누군가의 돌봄을 받고 자라기 때문에 육아라는 활동은 주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육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자리잡게 된다. 하지만 단순히 아이의 생존을 유지하는 일과 달리 육아를 ‘잘’ 한다는 것은 그 어떤 일보다도 귀하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그저 재우고,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기계적인 육체노동이 아니다. 행여 불편해 하지는 않을까, 잘못된 점은 없을까, 항상 신경 쓰고 걱정하면서 밥 먹는 시간, 자는 시간조차 언제라도 달려갈 마음자세를 갖고 살아가는 순간의 연속인 것이다. ‘영혼 없는’ 육아는 육아가 아니다. 사랑과 정성이 육아의 핵심이니까. 튼튼한 신체와 따뜻한 사랑을 동시에 요구하는 활동도 육아 외에 달리 없지 않을까. 육아는 누가 해도 큰 차이가 없는 단순노동이 아니라 능력과 마음가짐에 따라 그 퀄리티가 달라지는 중요한 ‘전문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 이유는 육아의 질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육아를 정말로 어떻게 하고 있는지는 부모자식만이 공유할 수 있는 영역이라 누구도 제대로 평가하기 어렵다. 또 열심히 키워 놓으면 어느 새 아이는 자라 있고, 어느 정도 커버린 자식은 왠지 자기 혼자 자란 것 같은 착각을 하는 사춘기에 빠져버린다. 아기로 존재한 기억은 부모에게만 있는 것이다. 잘 자란 아이를 두고 볼 때도 과연 그것이 좋은 육아의 결과인지 알 수 없게 하는 환경, 유전자 등 많은 다른 요소들이 있다. 게다가 서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육아 오디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졸업장 하나로 가치를 인정받는 명문 육아학교 같은 것도 없으며 육아에 연봉을 듬뿍 얹어주는 육아 대기업도 없다. 심지어 아이를 키운 부모 스스로도 과연 잘 키운 건지 자문하게 된다. 

지금까지 육아가 그에 걸맞은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들을 살펴보았다. 물론 아이를 키우는 진정한 가치와 기쁨을 누릴 줄 아는 사람에게는 그걸 뽐내고 인정받지 않아도 그 자체로 충만감을 느낄 수 있다. 어떤 활동에서 얻는 내적 가치가 너무 크면 그 가치를 외적으로 인정받고 보상 받으려는 욕구가 줄어들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토록 귀한 활동의 진가를 사회가 제대로 인정하고 보상해주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아이에 대한 사랑만으로도 육아를 묵묵히 해나가는 것이 부모라는 존재이겠지만, 우리에게는 그 가치를 이제라도 제대로 살피고 알아 줄 의무가 있다. 가정이나 직장에서도 그렇지만 사태를 거시적으로 바라볼 책임과 능력이 있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훌륭한 국민을 길러내는 부모의 수고와 가치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어야 할 것이다. 탁월한 과학자가 오직 진리만을 추구했다고 해서 노벨상을 안 줄 수는 없지 않은가! 잘 된 육아는 그야말로 노벨상감이니까.

출생률이 걷잡을 수 없이 줄어들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보고 있자면 살인이 일어났지만 살인자는 존재하지 않는 추리소설을 읽을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국가의 존폐가 걸린 심각한 문제가 일어나고 있지만 그 문제를 일으킨 범인을 특정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작은 책임들이 누적되어 벌어지고 있는 이 사태에 대해 서로를 범인이라 몰아세우며 탓하는 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사태를 홀로 책임져야 할 온전한 범인 같은 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조금씩은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이 문제를 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누구 덕분에 태어나서 길러지고 지금에 이르게 됐는지를 상기해보며 육아의 가치를 다시 한번 되짚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진정 중요한 것에 가치를 두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고귀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고 그 수고를 충분히 보상해줄 수 있는 방법을 우리는 모두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보아야 한다. 그때야 비로소 대한민국은 ‘생명을 품을 수 있는 나라’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엄성우 서울대·서양윤리학

서울대학교 윤리교육과 조교수. 前 미국 국립보건원(NIH) 생명윤리과 박사후연구원. 연구분야는 윤리학, 생명윤리, 서양윤리학사, 비교철학 등이며 주로 겸손, 효, 정직 등 우리가 좋은 삶을 사는 데 필요한 덕목들을 연구하고 있다. 2020 제15회 세계생명윤리학대회 최우수논문상(아시아 부문)과 2022 제3회 모하 분석철학 논문상을 수상했다. 역서로 <밀의 공리주의> (2014, 철학과 현실사)가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 “Modesty as an Executive Virtue”, “Gratitude for Being”, “What is a Relational Virtue?”, "Honesty: Respect for the Right Not to be Deceived"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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