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철학을 멀리서 자세히 보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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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철학을 멀리서 자세히 보는 방법
  • 이충진 한성대·철학
  • 승인 2024.01.06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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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칸트철학의 우회로』 (이충진 지음, 이학사, 232쪽, 2023.11)

 

2024년은 칸트가 태어난 지 300년이 되는 해이다. 그의 고향인 독일에서는 이 철학자의 탄생 3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준비가 이미 수년 전에 시작되었다. 올 한 해는 분명 세계의 모든 철학자가 칸트와 함께 축제의 나날을 보낼 것이다. 

칸트를 기념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전문 연구자가 자신의 연구 성과를 동료 연구자 앞에서 발표하거나, 출판사가 칸트 관련 책들을 특집으로 세상에 내놓는 것이 대표적이다. 일반인들이라면 가벼운 입문서를 읽거나 그도 아니면 칸트의 전기를 읽는 것도 좋으리라. 

300년 전 지구 반대편에서 태어난 철학자를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은 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철학의 세계가 참으로 깊고 넓기 때문이다. 칸트는 한편으로 근대 철학이 제기한 철학적 문제에 설득력 있는 대답을 제공했으며, 동시에 다른 한편 다음 세대의 철학을 위한 출발점을 만들었다. 칸트에 의해 시작된 철학의 혁신은 오늘날까지도 지속되어, 이제 우리는 ‘칸트 없는 철학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라고 공언하게 되었다. 

칸트철학 전체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칸트 자신뿐이다. 칸트철학의 깊이와 넓이 때문에 그러하며, 문제 설정과 사유 방식의 독창성 때문에 그러하다. 어느 누구도, 아무리 훌륭한 연구자라도 칸트가 남겨 놓은 철학 체계의 전모全貌를 파악할 수 없다. 칸트철학 연구에 평생을 바친 사람조차 단지 그것의 일부만을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많은 연구자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칸트철학은 흔히 거대한 산에 비유되곤 한다. 칸트의 텍스트를 분석하는 것은 그 산에 오르기 위한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유일한 길인 것은 아니다. 여러 다른 길 중의 하나는 칸트철학을 다른 철학 체계와 비교하는 것이다. 이 길은 상대적으로 오르기가 수월한데, 비교라는 우회로迂廻路에는 다른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가 마치 길안내 표지판처럼 도처에 있기 때문이다. 이 길은 텍스트 분석처럼 우리를 산의 정상으로 인도하지는 않겠지만, 그 대신에 산의 크기와 높이를 손쉽게 볼 수 있는 지점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우회로를 걸어서 도달한 칸트철학의 모습을 담고 있다.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에 세워진 이마누엘 칸트의 동상

이 책은 칸트철학을 다른 철학자와 비교하며, 그를 통해서 칸트철학의 일면을 드러낸다. 비교 대상은 주로 근대 정치철학자들인데, 그것은 오직 저자의 학문적 관심 때문이지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칸트의 정치철학은 홉스, 루소, 헤겔, 맑스 등과 어떤 점에서 같고 어떤 점에서 다른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찾는 과정에서 저자는 칸트가 근대 정치철학의 장場 안에서 가지는 이론적-역사적 위상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이 책은 국내에선 거의 다루지 않는 주제에 주목하기도 한다. 루터와 칸트의 비교가 그것이다. 서양 근대의 정신사에서 칸트에 견주할 만한 위상과 비중을 가진 인물은 종교개혁의 시작점인 루터뿐이다. 그렇다면 ‘이 두 거장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존재하지 않을까?’라는 추정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칸트철학을 루터의 사상과 비교해 보면 우리는 ‘루터는 근대 철학의 단초들을 제공했고 칸트는 그 단초들을 완성시킨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철학사에는 항상 등장하지만 구체적 내용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것 중의 하나가 마부르크의 신칸트학파이다. 철학 교과서는 이 학파를 칸트철학을 계승하되 주로 학문이론의 근거 지움에 주력했던 학파로 소개한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그 학파의 전혀 다른 성과에 주목한다. 마부르크의 칸트 후계자들은 칸트를 맑스와 연결하는 작업에도 심혈을 기울였는데, 칸트의 실천철학에서 맑스 사회주의의 원형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칸트를 맑스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했던 그들의 노력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 마치 ‘둥근 사각형’ 같은 – 관념론적 사회주의라는 독특한 모습의 철학 체계를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칸트를 과거 철학자와 비교할 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칸트 연구자를 소개하기도 한다. 이러한 작업의 목표는 칸트철학의 현재성을 확인하는 것, 즉 우리가 칸트철학을 만나는 곳은 대학 도서관이나 연구자의 책상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현실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 책은 브란트 교수(R. Brandt)의 연구 성과 안에 재현再現되어 있는 칸트철학의 구체적인 모습을 추적한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두 단락(‘칸트와 공자’ 및 ‘윌슨과 칸트’) 역시 칸트철학의 현재성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2008년 한국의 촛불집회, 1920년 국제연맹 건립 등 ‘지금 여기’의 정치 현실과 관련해서 칸트가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을 독자들은 이곳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칸트철학 연구자에게 칸트철학에로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가는 기회를, 모든 철학 연구자에게는 적절한 거리에서 칸트철학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그리고 철학에 관심 있는 일반 독자들에게는 2024년 철학자들의 축제에 동참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가져다줄 것이다.

 

이충진 한성대·철학

독일 마부르크대학교에서 칸트 법철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한성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칸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주로 서양 근대 법철학과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Gerechtigkeit bei Kant, 『이성과 권리』, 『세월호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사회철학 이야기』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정언명령 ― 쉽게 읽는 칸트』, 『법이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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