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공간에서 소외와 탈소외로서 정의
상태바
도시 공간에서 소외와 탈소외로서 정의
  • 최병두 대구대·지리학
  • 승인 2024.01.06 14: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저자에게 듣는다_ 『도시 소외와 공간 정의』 (최병두 지음, 한울아카데미, 344쪽, 2023.11)

 

대도시의 수많은 노동자들, 특히 최근 급증하는 일시직, 임시직 노동자들은 처해진 고용조건이나 노동과정에 대해 아무런 결정권을 갖질 못하고, 불안정한 상황에 억눌린 채 벗어나질 못한다. 퇴출된 실업자나 노동시장에 진입하려는 청년의 다수는 생산에 참여할 기회조차 가질 수 없다. 결혼과 출산을 거부할 정도로 미래는 암담하다. 일상생활의 소비와 여가 생활은 양극화되어, 한편에는 겨우 하루 생계를 유지하지만, 다른 한편 외적 자극에 충동된 과잉소비가 급증하고 있다. 대도시 인구의 절반 정도는 자신의 주거공간을 갖질 못한 채 전세나 월세를 살며 떠돌아다닌다. 낮은 임금과 높은 주거비를 충당하기 위해 얻게 된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빚을 갚기 위해, 살고 있는 주택이나 미래의 노동과 소득이 담보된다.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고 그 대안을 모색할 수 있겠는가? 이에 답하기 위해 다양한 이론이나 개념들이 동원될 수 있겠지만, 그중에 매우 유의한 방안으로 소외 개념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재구성 작업이 제시될 수 있다. 소외는 근대 철학과 사회이론에서 핵심적 개념이다. 이에 관한 연구는 루소 이후 헤겔과 마르크스로 이어지는 마르크스주의 소외론과 키에르케고르와 하이데거로 이어지는 실존주의적 전통의 소외론으로 대별되지만, 이들은 밀접한 상호연계성을 가진다. 이러한 소외 연구는 프랑크푸르트학파나 포스트모던 이론가들로 이어져 1970년대 철학 및 사회이론에서 정점을 이루었다. 그 이후 소외에 관한 연구는 이상하게도 상당 기간 학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졌지만, 최근 다시 재조명되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한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지만, 분명한 점은 오늘날 노동과 삶의 불안정성이 극심해졌고, 따라서 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긴요하기 때문이라 하겠다.

소외라는 용어는 사회공간적 ‘배제’ 또는 ‘주변화’ 등의 의미로 일상적으로 많이 사용된다. 좀 더 학술적으로 정의하면, 소외는 행위자들(비인간 포함) 간 존재하는 유기적 관계가 단절되거나 왜곡된 상태, 나아가 이로 인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타자 또는 외적 요인에 의해 조건지워지는 상황을 의미한다. 특히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소외는 인간의 행위나 그 생산물이 자신에 의해 통제되는 대신 탈인간화되고 물신화된 독립적 힘으로 인간과 대립하고 지배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마르크스의 관점에서 소외는 흔히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서 발생하는 노동의 소외로 부각되면서 주로 경제적 현상 또는 과정으로 인식되었지만, 오늘날 소외는 생산에서 재생산의 영역인 일상생활로 확산되었을 뿐 아니라 사회의 모든 측면들, 즉 정치적, 사회적, 이데올로기적 활동 전반에 보편화된 것으로 이해된다.

소외는 또한 도시공간적 차원을 포함한다. 즉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가 『도시혁명』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도시적 소외는 소외의 다른 모든 형태들을 담고 있으며, 이를 지속시키고 있다.” 이는 오늘날 도시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장소이지만, 또한 이들의 삶과 괴리되었을 뿐 아니라 이들의 삶을 지배하는 경제적 부와 정치권력이 도시공간에 집중, 집적해 있기 때문이라 하겠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과거에 비해 물질적으로 다소 풍족해졌다고 할지라도, 이들의 노동과 생활은 거대하고 웅장한 건조환경과 이를 통해 순환하는 자본축적의 메커니즘으로 인해 훨씬 더 불안정하고 불확실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도시인들은 정신적으로 점점 더 심각한 고립감, 무력감에 빠지게 되었다. 요컨대 도시인들은 자신의 삶의 장소에 아무런 귀속감을 가지지 못한 채 자신이 만들어낸 도시 건조환경의 물신화된 힘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하지만 도시인들은 이러한 사실, 즉 자신이 소외되었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도시 소외는 물론 갑작스럽게 나타난 현상이나 과정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도시화와 산업화 과정 속에서 역사적으로 진화해 왔다. 근대 도시 공간의 구축은 자연환경의 파괴와 개발, 이에 따른 자연과의 유기적 관계의 단절, 즉 자연으로부터의 소외를 전제로 했다. 또한 도시 산업 발달의 시원적 조건이었던 ‘자유로운’ 도시 노동자의 양산은 당시 봉건 영주들의 엔클로저(enclosure)운동으로 인해 소농들이 생산 및 생활 수단이었던 토지를 수탈당하고 도시로 이주하였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점에서 토지로부터의 소외를 전제로 했다. 물론 이러한 도시 소외의 본질은 도시 노동의 소외, 즉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과정과 노동의 생산물을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즉 도시 소외를 ‘공간의 생산’ 관점에서 보면, 도시에 누적된 사회적 부와 건조환경은 도시 노동자들에 의해 생산되었지만, 도시인들은 자신의 생산물인 도시공간을 전혀 통제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에 의해 지배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도시인들의 자연 및 토지로부터의 소외 그리고 도시의 노동과정과 그 생산물인 건조환경으로부터 소외는 자본축적을 위한 노동분업 및 과학기술의 발달로 더욱 촉진되었을 뿐 아니라 생산영역에서 소비와 재생산의 영역으로 확장, 심화되었다. 더욱이 오늘날 탈산업화된 거대도시들의 건조환경과 이를 둘러싸고 작동하는 여러 과정, 특히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정보화, 금융화 과정은 도시 소외를 심화시키고 지구적 차원으로 확산시키면서, 도시의 소외된 노동과 소외된 일상생활을 규정하는 결정적 조건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도시공간에서의 소외는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자본축적에 포섭된 모든 영역들에서 총체적으로 나타나는 ‘보편적 소외’(universal alienation)로 이해된다.

도시공간에서 작동하는 소외 과정을 좀 더 깊이 있게 고찰하기 위해, 장소 및 공간의 관점에서 이 과정에 접근해 볼 수 있다. 우선 장소의 관점에 근거하면, 모든 활동은 일정한 장소에 근거를 두며, 사람들은 자신의 활동 과정에서 장소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에 따라 형성된 장소성은 개인적 및 집단적 정체성과 소속감을 가지고 안정된 생활을 지속하도록 한다. 그러나 오늘날 도시인들은 삶의 장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사회공간적으로 불안한 삶을 살아간다. 전통적 의미의 장소(성)와의 관계는 상실 또는 단절되었다. 기존 연구에서는 이러한 장소 상실을 논의하기 위해 ‘무장소성’, ‘비장소’, ‘장소 전치’, ‘장소 착오’ 등의 용어가 사용되고 있지만, 이들의 다양한 함의들은 체계적으로 종합, 이론화되질 못했다. 이러한 한계를 해소하기 위해, ‘장소 소외’라는 새로운 개념이 제시될 수 있다.

장소 소외란 사람이나 사물이 자신의 자리(제자리)에 있지 않거나 장소와의 관계성이 단절된 상황, 어떤 장소에서의 활동이 주체성을 상실하고 물화된 구조적 힘에 의해 지배되는 상황, 그리고 장소감의 부재로 존재론적 안전감이 박탈된 상황 등을 의미한다. 장소 소외에 관한 사유는 마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뿐만 아니라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미셸 드 세로트(Michel de Certeau) 등의 저작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물론 장소의 소외는 개념적일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설명된다.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가 생활세계의 식민화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장소 소외는 과거 일상적 삶의 장소로서 생활공간에서 경제와 정치 시스템의 체계공간이 분리되었고, 물신화된 체계공간을 작동시키는 돈과 권력이 생활공간을 지배(식민화)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와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br>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와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

다른 한편, 공간적 관점에서 도시 소외는 르페브르의 연구를 통해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 일상생활과 소외는 그의 생애사적 연구 주제였다. 특히 그가 도시 공간에 전적으로 관심을 두었던 60대 이후 출간한 후기 저작들은 도시 공간과 소외 문제의 내재적 관계에 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르페브르에 의하면, 공간은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통해 생산되고 재생산되는 사회적 공간이다. 르페브르는 『도시혁명』에서 ‘산업적인 것’에서 ‘도시적인 것’으로의 전환과정에서 도시 소외의 개념을 제시하고 그 의미를 간략히 서술한다. 『공간의 생산』에서는 공간 생산의 모멘트로서 공간적 실천(지각된 공간), 공간의 재현(인지된 공간), 재현 공간(체험된 공간)의 상항 변증법적 관계 속에서 공간이 어떻게 추상화되며 이로 인해 소외가 유발되는가를 설명한다.

르페브르에 의하면, 오늘날 데카르트적 근대성과 선험적 공간 개념에 근거를 둔 공간의 재현은 사회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차이를 질식시키고 대신 추상적 동질성으로 대체함으로써 물신적 소외를 촉진한다. 이러한 추상공간은 자본주의적, 기술관료적 권력공간이지만, 또한 동시에 그 속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모순에 의해 차이공간으로 나아가는 모멘트를 만들어낸다. 예로, 여가공간은 처음에는 기존 질서의 통제 밖에 있는 놀이공간이었지만, 자본주의 체계에 통합되고 이에 봉사하기 위해 상품화됨에 따라 소외되고 소외시키는 공간이 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상품화되고 물신화된 양적 여가공간을 자각하고 거부하면서, 구체적 질적 삶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새로운 차이공간을 만들어낸다. 차이공간은 자본주의적 추상공간의 비인간적 폭력적 소외에서 인간적 자주관리적 탈소외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그러나 르페브르에게 소외에서 탈소외로의 전환은 단선적 전환이 아니라 변증법적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소외를 극복하고 탈소외로 나아가기 위한 일상생활의 실천은 언제든지 재소외로 환원될 수 있다. 도시공간에서 정의(justice)는 이러한 소외/탈소외/재소외의 변증법적 과정에서 탈소외를 지향하도록 하는 어떤 역동적 힘 또는 모멘트로 이해된다. 즉 정의의 모멘트는 탈소외를 위한 유토피아적 추동력이 되지만, 또한 절대적 정의의 추구는 비극적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탈소외를 위한 정의의 모멘트는 단지 회의적인 것만은 아니며, 일상에서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끊이지 않는 희망을 만들어낸다.

‘도시에 대한 권리’(the right to the city) 개념과 운동은 도시공간에서 만연한 소외를 극복하고 탈소외로 나아가기 위한 모멘트로 이해된다. 르페브르와 그를 이어 이를 주창한 하비에 의하면, 도시에 대한 권리란 도시인들이 자신이 생산한 도시의 사회적 부(즉 잉여가치 또는 공유재)에 대한 자율적 관리와 이용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달리 말해 도시에 대한 권리 개념은 도시인들이 도시 소외에서 벗어나 도시 공간의 탈소외와 자율 관리를 위한 정의의 모멘트로 작동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모멘트로서 정의의 개념이 그 자체로 유의성을 가진다도 할지라도, 다른 한편으로 사회적 규범이나 제도로서 정의의 구체적 내용 없이 실행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물론 르페브르가 우려한 바와 같이, 사회적 규범이나 제도로 정의를 규정할 경우, 정의 개념은 이데올로기적으로 물신화되어 재소외의 나락으로 빠질 수 있다. 그럼에도 하비는 도시에 대한 권리 개념이 실천적 함의를 가지기 위해 “보다 적실한 이론적 의미들로 채워져야할 ‘기표’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점에서 탈소외를 위한 모멘트로서 정의의 개념과 더불어, 규범이나 제도로서 정의의 구체적 의미를 채워나가기 위해 정의에 관한 기존 논의들을 탈소외와 관련하여 더욱 적실하게 재구성하기 위한 노력이 강구되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기존 정의론에서 주류를 이루었던 소득과 자원의 공정한 배분, 즉 분배적 정의뿐 아니라 노동과정 및 생산관계에서 소외를 극복하기 위한 생산적 정의, 그리고 비물질적 사회적 관계의 물화를 해소하기 위한 인정의 정의가 보다 정교하게 개념화되어야 할 것이다.

 

최병두 대구대·지리학

현재 대구대학교 지리교육과 명예교수이며, 한국도시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서울대학교 지리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리즈대학교 지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와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방문교수, 한국공간환경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초국적 이주와 환대의 지리학』, 『인문지리학의 새로운 지평』, 『인류세와 코로나 펜데믹』, 『도시재생과 젠트리피케이션』(공저) 등이 있으며, 역서로 『공간적 사유』, 『데이비드 하비의 세계를 보는 눈』, 『불균등발전』(공역)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