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기술에서 행정의 기술로 ··· 조반니 보테로의 국가이성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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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기술에서 행정의 기술로 ··· 조반니 보테로의 국가이성론
  • 곽차섭 부산대·사학
  • 승인 2024.01.06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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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옮긴이의 말_ 『국가이성론』 (조반니 보테로 지음, 곽차섭 옮김, 아카넷, 492쪽, 2023.11)

 

마키아벨리의 『군주론』(1513)은 정치사상사에서 매우 중요한 두 가지 함의를 담고 있다. 첫째는 정치의 목표가 오직 국가의 보존과 유지에 있다는 새로운 정치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당시의 국가(특히 군주국의 경우)란 대개 통치자를 뜻했기 때문에 국가의 보존이란 곧 군주의 권력 유지와 동일시되었다. 따라서 마키아벨리의 관심은 어떻게 군주가 대내외의 위협으로부터 국가를 지킬 수 있는가의 문제, 즉 통치술 그 자체에 있었다. 이는 정치란 항상 도덕적 정당성을 수반해야 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적-중세적 정치 개념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정치를 도덕이 아니라 오직 정치 그 자체로만 평가해야 한다는 마키아벨리의 이 같은 정치 개념은 그에 적절한 새로운 행위 개념을 요구한다. 이것이 『군주론』의 새로운 두 번째 함의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 15장에서 현실(“어떻게 사는가”)과 당위(“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상충적 행위 기준을 제시하면서, 군주가 자신의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현실을 판단의 척도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나아가 필요하다면 군주는 선하지 않은 방법까지도 마다해서는 안 된다고까지 주장했다.

마키아벨리의 현실주의적 정치 격언들은 이후 종교전쟁의 위기와 강력한 절대 권력을 추구하는 근대 국가의 출현이라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군주가 반드시 숙고해야 할 하나의 참조 틀이 되었으나, 그럼에도 그것은 결코 노골적으로 천명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흔히 마키아벨리즘이라고 지칭되는 그의 이론은 비록 정치적 효용성이 크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부도덕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의 저술들은 이미 16세기 중반의 트렌토 공의회를 거치면서 금서목록에 올랐으며 가톨릭 종교개혁 이후의 보수적 분위기는 언제나 국가이익보다는 종교적 명분을 앞세우고 있었다. 더욱이 종교전쟁이라는 시대 상황 속에서 왕이든 귀족이든 혹은 가톨릭이든 프로테스탄트든 간에 모두 각자의 도덕적 정당성을 대의로 내세우는 동시에 상대방의 부도덕성 역시 공격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처럼 군주의 강력한 권력을 요구하는 근대 국가의 마키아벨리즘과 그러한 경향을 격렬히 비난했던 교회와 도덕주의자들의 반 마키아벨리즘 간에 야기되는 상호 모순성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16, 7세기 국가이성 논쟁은 근본적으로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으로서 등장했다. 그것은 국가의 보존을 위한 새로운 정치학의 창출이라는 목표를 지향했으며, 이는 또다시 마키아벨리즘의 문제로 귀착되지 않을 수 없었다. 간단히 말해서, 16, 7세기 전(全) 유럽을 휩쓸었던 국가이성 논쟁(이에 관한 거의 수백 권의 책이 간행되었다)이란 국가이익을 최우선으로 간주하는 ‘마키아벨리적’ 국가이성을 ‘진정한’(종교와 도덕을 위배하지 않는) 국가이성으로 대체하려는, 하지만 종종 그러한 외양 아래 전자의 정치적 유용성을 수용하고자 하는 정치 사상적 경향이라고 규정될 수 있겠다.

국가이성 개념은 16, 7세기를 통해 대략 두 단계의 변화 과정을 거쳤다. 첫째 그것은 어떤 행위가 종교와 도덕을 위배한다 해도 국가이익을 위해서라면 용인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이는 15세기 전반 ‘ragione di stati’/‘ragion di stato’란 말을 최초로 사용했던 프란체스코 귀차르디니와 조반니 델라 카사의 용례 속에서 이미 시사되고 있는데, 『국가이성론』 헌정사에서 보테로 자신도 이에 대해 들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이는 사실상 종교적 대의와 도덕적 가치에 앞서 무엇보다 국가이익을 우선시하는 마키아벨리의 주장과 거의 동일시된다. 이 단계는 실제의 정치에서 흔히 관행으로 묵인되고 있던 비도덕적 정치 행위의 근거가 국가이성이라는 이름 아래 서서히 정형화되었던 시기이다. 둘째 국가이성이 종교나 도덕과 조화될 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그것에 의해 정당화되기까지 한다는 생각이 있을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국가이익을 추구하되 그것을 언제나 그리스도교의 관점에서 정당화하려고 하는 것으로서 16, 7세기 국가이성론자들이 제시했던 개념이 대체로 이런 범주에 속한다. 이 단계에서는 정치와 도덕을 함께 포용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을 모색함으로써 국가이성이라는 말의 확산과 이론화가 진행되었던 시기이다.

정치와 도덕이 조화될 수 있다는 관점에서 국가이성을 규정하고자 한 최초의 예는 피에몬테 출신의 정치사상가 조반니 보테로(1544-1617)가 1589년에 간행한 『국가이성론』(Della Ragion di Stato)이었다. 이는 마키아벨리를 허위적이고 사악한 국가이성과 연결하면서 종교나 도덕을 위배하지 않는 진정한 국가이성의 개념을 주장한 최초의 저술이었다. 그는 먼저 1권 1장에서 국가이성을 가리켜 국가를 “창건하고 보존하며 확장하는 데 적합한 수단에 대한 지식”으로 정의한 뒤, 2권 여기저기서 ‘적합한 수단’이란 이익만을 추구하는 마키아벨리적 교활성(astuzia)이 아니라 정직함을 따르는 분별(prudenzia)에 기초한 행위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그는 오직 국익만을 목표로 하며 교활성에 의해 움직이는 마키아벨리적 국가이성을 거부하고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도덕적 성실성과 분별에 입각한 ‘진정한’ 국가이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실제로 분별 있는 군주의 현실 인식과 행동 지침으로 그가 제시한 조언들은 오히려 전형적인 마키아벨리적 공리주의적 행위 윤리를 보여주고 있다는 데 있다. 그는 2권 6장에서 군주란 속성상 철저히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므로, “군주와 상대하는 사람은 이익에 근거하지 않은 우정이나 혈족관계, 그리고 동맹이나 그 외의 어떤 결속 관계도 믿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이는 은연중 그 자신이 모든 군주에게 역시 이와 같은 원리에 따를 것을 권고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이기적 동기로 행위 하는 군주들 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길은 그 또한 같은 방법으로 대처하는 것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16, 7세기 국가이성론의 전체적 특징은 외견상 마키아벨리를 공격하면서도 내심 그 교의의 정치적 유용성을 받아들이고 있는 양면성에 있다. 당시의 저술가들은 마키아벨리적 국가이성이 종교와 도덕을 도외시한다고 비난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국가이성 그 자체를 완전히 거부할 수 없었으며, 오히려 그것에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한 ‘진정한’ 국가이성의 개념을 통해 정치와 도덕 간의 상충적 요소들을 조화시키려 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경직된 그리스도교 윤리를 새로운 정치 상황의 변화에 맞추어 적절히 변용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것이 각별한 점은 가톨릭 신앙과 양심이라는 전통적 가치를 옹호하는 것이 오히려 국가이익의 증진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 데 있다. 마키아벨리가 정치와 종교 및 도덕이 결코 화합할 수 없다고 했다면, 보테로는 후자가 전자에 유용하다고 주장으로써 통치자가 종교를 버리지 않고도 정치 이익을 도모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준 것이다.

현대의 시점에서 볼 때, 『국가이성론』에서 좀 더 주목할 만한 측면은 더욱 규모가 크고 근대적인 영역 국가가 처한 새로운 문제, 즉 조세, 관료 제도, 통상, 산업, 법의 집행, 식량 공급, 도시 계획 등에 관해 체계적으로 고찰한 데 있다. 『국가이성론』은 당시의 다른 어떤 저술보다도 봉건적이고 전제적인 전통 세습국가가 행정 및 중앙집권에 힘을 쏟으면서 동시에 관직의 세습 및 매관매직을 서서히 줄여가는 근대적 국가로 이행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그는 특히 세금 문제를 중시하고 있는데, 군주가 국가 재원을 공공사업에 투여하고, 상품에 대한 간접세보다는 수입에 대한 직접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무역 및 상업을 다방면으로 원조함으로써 국부를 증대할 수 있다는 중상주의적 면모도 보이고 있다(이 점에서는 특히 장 보댕의 영향을 받았다). 그가 1588년에 『도시의 위대함과 장대함의 원인에 대하여』--서양에서 도시와 인구에 관한 거의 최초의 과학적 이론으로, 자연환경과 경제적 자원 및 인구 증가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정밀하게 분석한 저술--를 간행하고, 이후 줄곧 그것을 『국가이성론』과 함께 묶어 발간한 것도 이 때문이다. 마키아벨리가 르네상스 소국의 참주를 위한 권력 창출과 보존의 기술에 초점을 두었다면, 보테로는 근대적 영역 국가를 경영하는 “행정의 기술”을 기술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보테로는 정치와 도덕 간의 관계라는 문제에서는 결코 마키아벨리의 날카로움에 필적할 수 없겠지만, 근대 국가의 경영이라는 새로운 측면에 주목하고 그 미래적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는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곽차섭 부산대·사학

부산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서강대학교 사학과에서 “마키아벨리의 역사 사상”과 “바로크시대 마키아벨리즘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와 UCLA, 캐나다 UBC 방문학자로 연구했다. 문화사학회와 서양사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이탈리아사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관심 분야는 르네상스 이탈리아 지성사, 미시문화사 및 미술사이다. 저서로 『마키아벨리즘과 근대 국가의 이념』, 『조선 청년 안토니오 코레아, 루벤스를 만나다』, 편저 및 편역으로 『미시사란 무엇인가』, 『역사 속의 소수자들』(공편), 『다시, 미시사란 무엇인가』, 『마키아벨리와 에로스』가 있으며, 역서로는 『역사학과 사회 이론』(피터 버크), 『이탈리아 민족부흥운동사』(루이지 살바토렐리) 외 다수의 저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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