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시각의 준거: 수평의식의 논리 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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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시각의 준거: 수평의식의 논리 ➁
  • 고성빈 논설위원/제주대학교·정치학
  • 승인 2024.01.06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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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빈 교수의 〈동아시아 담론〉

 

미야지마 히로시의 동아시아시각: 봉건제론 비판

일본의 비판적 지성이자 역사학자인 미야지마는 일본에서 드물게 일본과 중국, 한국의 역사를 상호교류(필자의 개념으로는 ‘상호학습효과’)의 시각에서 수평적으로 비교하여 설명을 시도한다. 그의 역사론은 일본 중심의 동아시아 역사관을 표방하는 니시지마 사다오의 ‘동아시아세계론’과는 다른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니시지마는 일본에 서서 동아시아를 쳐다보는 태도로 중국을 상대화하고 일본을 중화로 인식하려는 시도가 은연중에 깔려 있어서 수평의식으로 바라보는 동아시아론과는 달리 일본 중심의 동아시아 구상으로 읽힌다(《일본의 고대사 인식: ‘동아시아세계론’과 일본》; 《古代 東アジア世界と日本》). 이러한 동아시아관은 서세동점기에 아세아일체론과 동아시아연대를 외치면서도 내면에는 일본 주도의 동아시아를 구축하려는 패권주의적 정서가 여전히 숨을 쉬고 있다. 

이러한 일본 중심주의적 동아시아관을 탈피하려는 미야지마는 사회경제사적으로 3국의 도작법과 소농사회의 성립, 지배계급과 신분제도의 특성, 족보의 위상 측면에 나타나는 한중일의 상호교류와 관계사를 중시하고 논하였다(《한중일 비교통사》). 그는 중국의 대국주의 역사관과 일본의 우익적인 식민주의 역사관에 대해 직접적인 비판을 가하기보다, ‘동아시아시각’에서 한중일의 사회경제사를 서술하면서 균형 잡힌 수평의식으로 역사론을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역사론은 동아시아의 문명과 근대화 서열의식을 해체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특히 러일전쟁 이후에 활발해진 일본의 ‘봉건제론’에서는 서구 봉건제의 특성을 일본도 중세에 가지고 있었다는 논리를 펴는데, 이는 중세 봉건제가 없었던 한국, 중국을 후진으로 규정하는 작위적 논리라고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일본의 역사관을 비판한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봉건제론’에서는 중세 일본은 서구와 비슷한 봉건제가 있었으며, 반면 한국과 중국에는 봉건제가 없어서 후진이라는 주장을 펼친다(후쿠다 도쿠조福田德三, 〈韓國の經濟組織と經濟單位〉, 《內外論叢》1905-7; 이시모다 쇼오石母田正, 《中世的世界の形成》岩波書店, 1946). 미야지마는 이 논법을 ‘탈아입구 사조’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하고, 또한 한-중보다는 일본이 선진인 서구와 가깝다는 ‘일본의 근대화 우등생론’과 서구중심의 역사론(서구의 발전이 세계사 전개의 보편이라는)을 맹목적으로 추수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비판한다. 게다가 일본의 봉건제론을 따라 조선에도 서구적 근대의 씨앗이 있었다는 ‘조선 봉건제론’(백남운, 《조선사회경제사》; 《조선봉건사회경제사 상》)도 등장하였다(미야지마, 84-99면). 물론 이는 일본의 식민사관 비판과 맑스주의 역사론의 전개라는 목적상 일본과는 다르지만, 서구중심주의 역사관이라는 맥락에서 비판받을 수 있다. 

어쨌든지 동아시아의 봉건제론은 미야지마의 비판이 아니라도, 대단히 비논리적이고 작위적인 역사관이다. 심지어 그 주장은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을 스스로 내면화한 셀프-오리엔탈리즘(self-orientalism)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상식적인 세계사의 전개에 따르면, 유럽 중세의 봉건제는 근대의 국왕 중심의 국가주의(민족주의) 발전 이전에 있었던 후진적 단계였다. 유럽에서는 봉건제의 탈피와 계몽주의 사상의 발전이 거의 동시에 진행되면서 근대적 민족국가로의 발전이 본격화한다. 중국과 한국에서 “유교화-정치발전”으로 봉건제가 아닌 군현제(*혹은 봉건제와 군현제의 혼합형인 군국제郡國制)가 역사상 우세했던 것은 오히려 유럽과 일본보다 앞선 제도적 선진성을 나타냈던 증거이다. 19세기 유럽이 동아시아 유교국가를 앞서게 된 것은 봉건제의 유무가 아니라, 다른 원인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세계체제론자의 ‘대분기론’ 참조). 유교화-정치발전”의 역사적 명암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논한다. 

종합하면, 일본의 봉건제론은 서구적인 역사발전이 곧 동아시아가 모방해야 할 표준이라는 서구중심주의와 오리엔탈리즘을 내면화하고 있다. 러일전쟁 이후 등장한 봉건제론에 나타난 일본의 우월의식은 역사상 특정 시기 특정 상황에서 나타난 일시적인 현상(봉건제)을 작위적으로 독해한 것이다. 

일본의 이러한 순수한 학문적 논리가 아닌 작위적 역사론은 사상사론에서도 식민지근대화론을 수긍하는 논리-정서 구조를 일반화하였다. 오구라 기조의 《조선사상사》에서는 이런 경향이 잘 나타나 있다(* 저자는 ‘한국’이 아닌 ‘조선’으로 제목을 달았다. 고전시대 중국과 한국은 일본을 ‘왜국’으로 호칭하였는데, 21세기에 《왜국사상사》를 저술하면 일인들이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침략사를 사회적 진화론을 적용하여 합목적적으로 보거나 혹은 서세동점의 침략을 맞은 동아시아를 일본이 구원한다는 작위적인 논리도 개발하였다. 일본은 서구 제국주의를 모방하여 동아시아를 파괴했던 역사를 망각하고, 오히려 그것을 우월성의 증거로 삼고 자부하는 작위적 논리-정서구조를 내재화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미야지마의 동아시아 역사론은 일본의 작위적인 역사론을 성찰하고 수평의식으로 동아시아의 사회경제적인 교류사를 정리한 것으로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미야지마 히로시 宮嶋博史 (1948 ~ )
                                               미야지마 히로시 宮嶋博史 (1948 ~ )

이언 모리스: 사회발전지수 변동과 동서양 우열관계의 유동성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에서 모리스(Ian Morris)는 동서양이 장기 역사에서 ‘사회발전지수’의 변동을 통해 서로 우열관계를 교환해 왔다고 논증한다. 동아시아 내부가 아닌 동서양 발전의 거시적 인과론을 인용하는 이유는 그의 논지가 동아시아의 국가주의적인 서열론을 넘어 ‘상호학습효과에 의한 혼성근대화’를 통해 국가발전 수준의 우열관계는 시대에 따라 유동적이라는 논리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즉, 인류사를 장기적으로 보면, 동서양 문명의 우열관계성은 주기적으로 유동해왔다. 물론 이것은 반드시 직접적인 지배관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모리스는 서양의 우월적 발전동력이 고정적이라는 논리와 동서양 어느 한 세계가 애초부터 우세하다는 견해를 반대한다. 구체적으로 서구가 우세한 국면이 유사 이래 결정적이라는 “장기 고착론”(제레드 다이아몬드, 칼 비트포겔, 막스 베버)과 그렇지 않다는 “단기 우연론”(앙드레 군더 프랑크, 케네스 포메란츠, 잭 골드스톤)을 전부 반대하였다. 동서양에 공통으로 적용하는 “사회발전지수”를 설정하고 그것의 변동을 근거로 동서양의 우월적 위상이 장기적으로 시대에 따라 유동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의 논리에 의하면 22세기가 되면 동아시아가 서구의 우세국면을 앞지른다.

구체적으로, 동서양의 지배관계의 교호적 변화는 사회발전지수의 변동에 따른다. 사회발전지수에 따르면 동서양이 항상 상대보다 앞섰던 것은 아니다. 저자가 고안한 ‘사회발전지수’는 문명 발전 수준을 수치로 환산한 것인데, 동양과 서양이 각각 진보하거나 후퇴하는 양상은 물론 둘 사이의 경쟁 구도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과학적인 분석 틀이다. 사회발전지수를 산출하기 위해 선별된 네 가지 항목은 ‘에너지 획득’ ‘조직화/도시성’ ‘전쟁 수행 능력’ ‘정보기술’이다. 이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항목은 에너지 획득이다. 인간은 에너지를 섭취하고 소비하지 않으면 죽기 때문이다. 한참 오래전의 사회발전지수를 상상해보면, 조직화나 전쟁 수행 능력, 정보기술 점수는 모두 0점에 수렴할 테지만 에너지 획득은 결코 그럴 수 없다. 또한 서양의 지배를 현실로 만든 산업혁명이 에너지 혁명이었다는 점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조직화는 한마디로 중앙집권화와 제도 구축 능력을 뜻하며, 정보기술은 쏟아지는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고 처리하는 소통 능력과 관계된다. 이런 특징들을 파괴적 힘(* 저자는 폭력성으로 추진했다는 서술은 피하고 있다)으로 돌린 17~8세기경 서양인의 능력이 오늘날을 서양의 시대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전쟁 수행 능력도 사회발전지수에 있어 중요한 항목임을 알 수 있다.

이언 모리스(Ian Morris)와 그의 저서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br>
          이언 모리스(Ian Morris)와 그의 저서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전반적으론, 사회발전지수를 기준으로 보면 송대 이래 18세기 중반까지는 동양이 서양을 앞섰다. 그러나 송대 중국은 기본적으로 농업경제 근대성의 한계에 있었다. 석탄을 사용한 제철을 했지만, 농기구와 기본적인 생활용품의 생산에 그쳤고, 증기기관과 전함, 방직기계의 발명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리고 명청대에 이르러서도 영국에서 이룩한 증기기관을 이용한 산업자본주의에 다다르지는 못했다. 반면에 서양은 16세기 해상진출과 모험자본주의 발전을 전개하면서 서서히 동아시아를 앞서기 시작하더니 18세기 중반 영국의 산업혁명으로 완전한 우세를 점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동서양은 서로 교차적으로 사회발전지수의 증감을 겪어왔고,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은 당시까지 후진인 서양이 선진인 동양을 앞서는 결절점이었다. 서양의 세계체제론은 이러한 점을 논증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논지대로라면 22세기에 이르러서는 동아시아가 ‘사회발전지수’에서 서구를 앞지르게 된다. 오늘날 미-중 충돌의 결말이 그때쯤 되면 중국의 세계패권과 동아시아의 우세로 나타날지 두고 볼 일이다. 


동아시아시각의 화룡점정: 생각의 습관 고치기

위에서는 필자가 제시한 5항목으로 구성된 동아시아시각의 정의를 지지하는 연구를 예시하였다. 이들의 논리는 모두 21세기 새로운 동아시아관의 창출과 맞물려 있다. 즉, 19~20세기 서구적 근대의 시각에서 본 동아시아가 아니라, 21세기 탈근대적 문제의식의 시대에 부상한 동아시아관을 표방하고 있다. 따라서, 탈서구중심주의와 탈동서이원론의 지향은 당연한 전제이다. 

사회발전지수의 변동에 따라 동서양의 우열관계는 고정적이 아닌 유동적이라는 모리스의 연구는 동아시아에도 적용할 수 있다. 조동일은 차등을 차이로 규정하고 대등한 동아시아문명론을 역설하고 있다. 미야지마 히로시는 일본의 작위적인 역사관과 식민사학을 해체하려는 목적에서 일본의 ‘봉건제론’을 재검토 하고 있다. 이전에 내가 (〈동아시아시각을 찾아서〉)에서 제시한 한국의 “실증적 민족주의사학”은 고대 동아시아 역사를 현재의 중국과 일본이 어떻게 작위적으로 전용하고 있는가를 폭로하고 있다. 반대로 한국은 특유의 타율이성으로 인해 ‘반도사관’을 내면화하여 중일의 역사왜곡을 옆에서 묵인하거나 심지어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잘못된 역사관은 국가주의를 초탈한 동아시아시각에서 비판을 거쳐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이다. 바로 그 비판의 준거는 위에서 제시한 5항목의 공통분모인 수평의식이다. 

이러한 작업은 단순히 주관적 관념론이나 인문학적 상상이 아니다. 역사에서 구체적인 근거를 발견하여 수평의식이 상식화된 새로운 동아시아를 건설하려는 미래주의적 조망을 활용한 동아시아구상이다. 

나의 동아시아시각에 대한 사유는 비판이론의 동아시아 버전이다. 비판의 준거는 ‘수평의식’이며, 그러한 지향을 향해서 동아시아는 생성을 통하여 재해석과 재탄생을 지속해야 한다. 그것을 이루기 위한 방법론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은 ‘생각의 습관’을 고치는 것이다. 칸트는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의 인식론을 수립했다. 근대가 서양과 국가 중심이라면 탈근대적 문제의식은 탈서구와 탈식민, 탈국가와 자기 주체의 각성일 것이다. 비판의 준거로서의 동아시아 수평의식은 탈근대적 문제의식에서 발원하였다. 수평의식은 생각의 습관을 바꾸어야 이룰 수 있다. 

생각의 습관을 바꾸면서 도달하는 최종 단계는 탈서구중심주의와 탈동서이원론적 사유체계의 완성이다. 즉, 동서양 모두에서 역사적 경험을 통한 ‘상호학습효과’를 극대화하면서 생존을 위해 ‘혼성 근대화와 발전’의 길은 필수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중국에 진출한 제수이트가 유럽에 소개한 유교사상의 합리주의적 자연관과 천(天)사상은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유럽의 자연법사상’을 발전시키는 데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미국독립 선언서에 나타난 ‘천부인권사상’(1776)과 프랑스혁명의 ‘인권선언’(1789)은 동서양 상호학습효과에 의한 혼성 근대화의 결과이다. 황태연은 이것을 ‘서구의 유교적 근대화’로 주장하였다(《유교적 근대의 일반이론》).

명청 시대 대양진출과 국제교역에 소극적이던 중국이 미국에 질세라 화성에 탐사선을 안착(2021년)시켰다. 유교국가 한국과 일본이 우주궤도에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다. 모험자본주의의 폭력으로 식민지를 착취했던 서양이 이제는 과거 피식민 지역에 자연법과 유교적 도덕에 근거한 인권을 외치면서 평화의 사도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이렇게 그 근원에서 동서양의 경계를 정하기 힘든 ‘문화와 과학의 혼성 근대화론’이 지구촌 변화를 조율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사상사적 ‘수평의식’에서 발원한 ‘동서양 상호학습효과에 의한 혼성 근대화론’은 서구중심주의와 동서이원론적 사유를 모두 극복할 수 있다. 이 개념은 동서양 간, 또한 동아시아 내부의 상호교류(문화와 지식, 정치와 경제영역을 포함)를 통하여 전개되는 근대화와 발전을 설명할 수 있다. 근대화와 발전은 정지된 게 아닌 유동적으로 생성되는 것이며, 따라서 시대 흐름에 따라 동서양의 문화와 지식, 담론은 ‘상호교류를 통한 취사선택을 거쳐, 수용과 거부, 적응과 창달’을 이루면서 끊임없이 ‘혼성 근대화와 발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고성빈 논설위원/제주대학교·정치학

런던대학(SOAS)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했으며, 제주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동아시아 사상과 역사논쟁에 흥미를 가지고 현재 동아시아의 사상사적 문제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 근현대사 역사의 현장』(공저), 『동아시아 담론의 논리와 지향: 비판이론의 탐색』이 있으며, 그 외 동아시아담론, 중국, 일본, 티베트에 관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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