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UL M! SOÜ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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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UL M! SOÜL?
  • 조원형 편집기획위원/서울대·언어학
  • 승인 2024.01.0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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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형 칼럼]

2024년 새해를 맞아 서울 광화문 광장을 찾았다. 그런데 광장 한가운데에 서울특별시에서 새로 만든 ‘SEOUL MY SOUL’ 슬로건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이 슬로건은 보면 볼수록 고개를 젓게 만든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디자인이 너무 조잡하다. ‘SEOUL’의 ‘O’ 자리에는 하트를, ‘MY’의 ‘Y’ 자리에는 느낌표를 그려 넣고 ‘SOUL’의 ‘U’는 ‘Ü‘로 바꾸어서 웃는 얼굴처럼 보이게 만들어 놓았는데, 이처럼 지나치게 많은 메시지를 단 한 개의 슬로건에 욱여넣다 보니 도대체 무슨 메시지를 드러내려는 것인지 파악하기 어렵게 되어 버렸다. 차라리 한가운데의 하트만 남기고 다른 글자들은 모두 깔끔하게 통일된 글꼴을 썼더라면 그나마 조금은 더 나았을 것이다.

둘째, 슬로건의 의미 자체도 조잡하다. 이 슬로건은 그저 ‘Seoul’과 ‘soul’의 발음 유사성을 활용한 말놀이(언어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soul’이라는 단어를 꼭 쓰고자 했다면 차라리 오래 전에 ‘Hi Seoul’과 함께 썼던 ‘SOUL OF ASIA’라는 슬로건을 다시 살리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중국 측에서 이 구호에 반발한다는 이유로 ‘SOUL OF ASIA’ 슬로건을 쓰지 않기로 했다는 이야기가 들리는데, 서울이 아시아를 대표하는 도시 가운데 하나라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의 반발은 근거 없고 무례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이 반발에 굳이 동요하기보다 오히려 ‘SOUL OF ASIA’를 서울의 브랜드로 계속 꿋꿋하게 밀고 나갔더라면 세계인에게 더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한편 서울특별시에서는 이 영어 슬로건과 함께 ‘마음이 모이면 서울이 됩니다’라는 한국어 슬로건도 내세우고 있는데 이 한국어 구문과 ‘SEOUL MY SOUL’이 서로 쉽게 연상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영어 슬로건에 애당초 별 의미가 없으니 그 어떤 한국어 슬로건을 대응시켜 놓는다 해도 공감이 가는 작품을 만들어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셋째, 도시 슬로건이 너무 자주 바뀌는 것 또한 문제이다. 서울특별시에서는 2002년부터 2015년까지 ‘Hi Seoul’이라는 슬로건을 써 오다가 2015년에 ‘I SEOUL U’라는 새 슬로건을 만든 바 있다. 그러다가 채 10년도 지나지 않아서 또 새 슬로건을 만든 것이다. 이렇게 도시 슬로건을 자주 바꾸는 것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도 긍정적인 영향보다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쉽다.

하지만 위 ‘셋째’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첫째’와 ‘둘째’ 문제점이 너무나 큰 만큼 이 슬로건만은 다른 것으로 바꾸는 편이 장기적으로 볼 때 오히려 나은 길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어느 모로 보나 나쁜 공공 디자인의 사례로 거론될 것이 뻔한 ‘SEOUL MY SOUL’, 아니 ‘SE♡UL M! SOÜL’은 불행 중 다행으로 아직 널리 사용되지 않았고 국제적으로도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이 슬로건은 하루빨리 폐기하고 제대로 된 새 슬로건을 만들어서 오랫동안 사용했으면 한다. 서울은 2천 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도시인 만큼 이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시에 걸맞은 슬로건을 제대로 만들어서 이 시대의 새로운 문화유산으로 정립해 나가야 할 것이다.

 

조원형 편집기획위원/서울대·언어학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에서 언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만하임 라이프니츠 독일어연구원 방문학자,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등을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로 일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천주가사에 대한 텍스트언어학적 연구”, “텍스트언어학에 기반한 ‘쉬운 언어(Leichte Sprache)’ 텍스트 구성 시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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